[스토리 발리볼] 3%의 확률을 뚫은 대한항공의 행운

입력 2021-04-18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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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을 앞두고 많은 이들은 대한항공이 2020~2021시즌 V리그 우승에 가장 가깝다고 했다.
공격~수비~연결 등 배구에서 필요한 모든 부분을 다 채워줄 멤버구성에 풍부한 가동 인원까지 갖춘 팀. 이들이 함께 다져온 시간까지 더해져 ‘절대 1강’이라고 불렀다.

대한항공은 예상대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단기전에는 기세와 행운이라는 변수가 있었다. 이미 3번의 챔피언결정전에서 이 부분을 채우지 못했던 기억도 있었다.

1차전에서 대한항공은 0-3 완패를 당했다. 패인은 단순했다, 우리카드보다 무려 16개 많았던 25개의 범실이 문제였다. 산틸리 감독이 택한 ‘고위험 고수익’의 효율이 떨어졌다. 3차전까지 계속 상대보다 범실이 많았고 한창 때의 매끄러운 플레이마저 보이지 않았다. 시리즈 전적 1승2패. 남자부 챔프전에서 먼저 2승을 따낸 팀의 우승확률은 무려 97%였다.

대한항공에게 필요했던 행운은 무심결에 찾아왔다. 첫 번째는 2차전 5세트였다. 무려 3차례 네트의 행운이 손짓을 했다. 우리카드가 11-10으로 앞선 상황에서 알렉스의 서브가 네트를 맞고 우리카드의 실점. 11-11에서 요스바니의 서브는 네트를 스친 뒤 대한항공 득점. 14-13에서 진성태의 서브도 네트를 맞고 방향을 틀었다. 이 바람에 우리카드의 리시브가 흔들렸고 랠리 끝에 나경복의 공격범실이 나왔다. 대한항공이 시리즈 1승을 만회했다.

3차전. 1세트 24-22로 앞섰지만 대한항공은 마무리하지 못했다. 알렉스의 원맨쇼가 이어지면서 세트를 내줬다. 기세를 탄 우리카드는 알렉스의 무시무시한 서브로 또 3-0 승리를 따냈다. 1세트 뒤 산틸리 감독의 이해 못할 행동과, 시즌 초반부터 꾸준히 들렸던 감독과 선수들 사이의 완벽하지 않은 화학적 결합을 감안한다면 위기였다.

하지만 행운은 대한항공 편에 있었다. 4차전 1세트 시작하자마자 챔프전 MVP가 유력했던 알렉스가 배탈로 빠졌다. 신영철 감독조차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한창 기세가 좋았던 우리카드는 알렉스의 공백을 실감하며 0-3으로 패했다. 창단 8년 만의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기회도 신영철 감독의 3번째 챔프전 우승도전의 꿈도 그 순간 사라졌다. 복통 때문에.

운명의 5차전. 두 팀은 3세트까지 계속 듀스 공방을 펼쳤다. 3세트 우리카드는 12-7로 앞선 5점 차이를 지켜내지 못했다. 이를 고비로 팽팽하던 균형이 깨졌다. 알렉스가 트리플크라운을 기록했지만 그 것으로는 부족했다. 처음 챔프전에 오른 세터 하승우가 선택의 실수를 거듭했고 대한항공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한선수가 흔들리던 3세트 도중에 유광우가 흐름을 바꿨고 임동혁~곽승석~요스바니가 중요한 순간마다 교체로 투입돼 우리카드의 추격을 뿌리쳤다. 탄탄한 멤버구성의 힘이 마침내 발휘됐다. 행운이 도와줬지만 결국 우승을 쟁취한 것은 대한항공 구성원 모두의 땀과 이번에는 반드시 우승하겠다는 간절함이었다.

이로써 산틸리 감독은 남자부 통합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외국인감독으로 남았고 대한항공은 3%의 낮은 확률을 뚫어냈다. ‘3전4기’의 완성이었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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