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cm 암 잘라내고 11년 투병… “의지 강하면 완치”[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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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김범수·류민희 교수-위암 정영필 씨
소화불량-체중감소 후 위암 진단… 위-주변 장기 절제하는 대수술
항암치료 중 전이, 2차 투병 시작… 수술 5년 만에 암 완전히 사라져
3년 전 항암치료 종료, 사실상 완치… 정기 검진으로 위암 조기 발견 최선

위암 3기 말 판정을 받은 정영필 씨(가운데)는 대형 수술과 항암-방사선치료를 모두 이겨내고 완치를 앞두고 있다. 수술을 집도한 
김범수 서울아산병원 위장관외과 교수(왼쪽)와 항암치료를 담당한 류민희 종양내과 교수는 정 씨의 투병 의지가 암을 이겨내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위암 3기 말 판정을 받은 정영필 씨(가운데)는 대형 수술과 항암-방사선치료를 모두 이겨내고 완치를 앞두고 있다. 수술을 집도한 김범수 서울아산병원 위장관외과 교수(왼쪽)와 항암치료를 담당한 류민희 종양내과 교수는 정 씨의 투병 의지가 암을 이겨내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경기 구리에서 축산업을 하는 정영필 씨(61)는 50대가 될 때까지만 해도 건강에 자신이 있었다. 무엇을 먹든 잘 소화해 냈고, 아침마다 화장실에도 꼬박꼬박 갔다.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느낀 적은 별로 없었다.

2012년 하반기에 갑자기 소화불량 증세가 나타났다. 먹는 것도 시원찮았다. 체중도 3개월 사이에 7kg이 빠졌다. 큰 병에 걸린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그해 7월, 평생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동네병원 의사는 위암이라고 했다. 정 씨는 “하늘이 노랗게 변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정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 16cm 초대형 위암 3기 말 진단
급히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겼다. 검사 결과 위암 3기 말, 혹은 4기로 추정됐다. 종양의 크기는 16cm로, 의료진마저 깜짝 놀랄 정도로 컸다. 암 덩어리는 위장의 70% 정도를 덮었으며 주변 장기인 간, 췌장, 횡격막, 식도까지 침범한 상태였다. 그나마 전이가 되지 않은 점은 다행이었다.

다만 왼쪽 콩팥 위쪽의 부신에서 암의 전이가 의심됐다. 추가로 양전자단층촬영(PET)-CT 검사를 진행했고, 전이가 없음을 확인했다. 정 씨는 최종적으로 진행성 위암 3기 말로 진단됐다.

항암치료를 먼저 진행해 종양을 줄인 후 수술할 것이냐, 곧바로 수술을 시행할 것이냐를 놓고 의료진 사이에 토론이 벌어졌다. 김범수 위장관외과 교수는 수술이 옳다 여겼다. 암 덩어리가 크지만 흩어져 있지 않아 뿌리째 들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항암치료를 먼저 하면 종양이 여러 덩이로 쪼개질 수도 있고, 그때는 통째로 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수술이 100% 성공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었다. 절제해야 할 장기들이 너무 많았다. 수술 시간도 꽤 길어질 것이고, 환자의 체력이 수술을 견뎌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수술 후 장기 절제 합병증 우려도 컸다.

그래도 수술이 최선이었다. 김 교수는 정 씨에게 수술 과정과 모든 ‘가능성’에 대해 설명했다. 정 씨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극도로 어려운 수술인데도 해 준다는 게 오히려 감사했다”고 말했다.

● 수술 후 1년 만에 암 전이

2012년 8월, 정 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위암의 경우 대체로 복강경 수술을 많이 한다. 하지만 정 씨는 조금 다른 상황이었다. 종양이 워낙 큰 데다 주변 장기까지 침투해 있었기에 직접 배를 열어야 했다. 수술은 김 교수가 집도했다.

위는 통째로 들어냈다. 간, 췌장, 비장, 왼쪽 부신, 식도의 일부까지 절제했다. 이런 수술의 경우 보통 7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실력파로 소문이 나 있는 김 교수도 3시간 정도 걸렸다. 김 교수는 “지금껏 했던 모든 수술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정 씨는 약 40일 동안 입원했다. 회복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퇴원하고 한 달 정도가 지난 10월 말, 정 씨는 항암치료에 돌입했다. 류민희 종양내과 교수가 담당했다.

류 교수는 1년 일정으로 항암치료를 한 뒤 이후 3개월마다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통해 경과를 확인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약 5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정 씨는 6차 항암치료를 끝냈다. 결과를 보기 위해 2013년 4월 CT 검사를 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제거한 부신 부위, 대동맥과 왼쪽 콩팥 사이에서 혹이 발견된 것이다. 혹의 크기는 7mm 정도. 너무 작아서 아직 암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 경과를 더 지켜보기로 했다.

7월에 다시 CT 검사를 했다. 혹은 21mm로 커져 있었다. 류 교수는 위장이 아닌 다른 장기가 있던 부위에 암이 발생했기에 전이된 것으로 판단했다. 진행성 위암에서 전이성 위암으로 병명이 바뀐 것. 다행히 전이된 다른 부위는 없었다.

전이성 위암의 경우 다시 배를 여는 수술을 하지는 않는다. 영상장비를 통해 암의 재발과 전이를 확인하면 방사선-항암치료를 하는 게 표준 치료법이다. 암과의 두 번째 싸움이 시작됐다.

● 수술 5년 만에 암 완전히 사라져
먼저 집중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5주 동안 주말 이틀을 빼고 매일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그 결과 종양은 절반 크기로 작아졌다. 다른 부위로 추가 전이된 것 같지도 않았다. 류 교수는 암이 어느 정도 조절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추가 조치 없이 경과를 관찰하기로 했다. 다행히 3개월, 6개월이 지나도 종양은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2014년 4월 검사에서 종양이 다시 약간 커진 게 확인됐다. 종양이 다시 자라는 게 아닐까. 그런 걱정은 현실이 돼 버렸다. 5월 다시 검사해 보니 또 커졌다. 류 교수는 항암제 내성 등을 우려해 다른 항암제로 바꿔 이틀씩 2주 간격으로 12주 동안 항암치료를 했다. 이후 종양은 성장을 멈췄다.

2014년 12월, 류 교수는 다시 항암제를 바꿨다. 종전 치료제보다 효과가 좋은 면역항암제였다. 이 면역항암제를 2주 주기로 장기간 투여했다. 그로부터 2년 6개월이 지난 2017년 7월, CT 검사에서 암 덩어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류 교수는 완치를 확신했다. 하지만 혹시 암이 남아 있을지 몰라 항암치료를 중단하지는 않았다.

2020년 3월, 류 교수는 항암치료를 끝냈다. 미세한 암도 보이지 않고 전이 확률도 낮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아직 완치는 아니다. 완치 판정은 항암치료를 끝내고 5년이 지나는 2025년 3월 내린다. 정 씨는 3개월, 6개월 주기로 검사를 하고 있다.

● 강한 투병 의지가 완치 원동력

정 씨는 11년째 암과 싸우고 있다. 여러 장기를 절제하는 힘겨운 수술을 이겨냈다. 암이 다시 생겨났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집중 방사선치료는 물론 6년 넘게 항암치료를 견뎌냈다. 그 결과 완치를 앞두고 있다.

성공적인 투병은 정 씨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1년 동안 정 씨는 치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의료진을 전폭적으로 믿었다. 김 교수와 류 교수도 “정 씨의 투병 의지가 상당히 강했기에 좋은 결과를 본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정 씨는 11년 전까지만 해도 운동과 담을 쌓았었다. 암 수술이 끝나고 난 후부터는 매일 한 시간씩 걸었다. 이 걷기 운동은 정 씨의 건강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많은 환자들이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힘들어한다. 정 씨는 이를 이겨내기 위해 식사를 반드시 챙겨 먹었다. 정 씨는 “뭐든지 먹으려고 했는데, 그 때문인지 치료가 수월했다”며 웃었다.

위장이 없으니 음식을 먹기도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한 숟가락을 넘기는 것도 힘들었다. 위장을 절제한 대부분의 환자는 3개월 동안 미음을 먹다가 이후 반 그릇으로 늘리며, 1년 후에야 3분의 2그릇까지 늘린다. 정 씨는 이 용량도 일찍 늘렸다. 지금은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물론 오랜 치료의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간간이 구역질 증세가 나타난다. 손과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기도 한다. 모두 항암제 부작용이다. 정 씨는 이 또한 웃어넘긴다. 게다가 수술 후에 사용하는 항암제의 용량이 비교적 적은 편이라 부작용이 덜한 편이다.

김 교수는 “정 씨는 성공적인 케이스”라면서도 “더 좋은 방법은 미리 대처하는 것”이라고 했다. 건강검진을 빠뜨리지 말라는 뜻이다. 김 교수는 “조기 진단만 되면 수술이 수월하기에 암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 2년에 한 번은 위내시경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

류 교수는 과학적 치료를 믿을 것을 환자들에게 당부했다.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요법 혹은 민간요법을 따르는 환자들이 간혹 있는데,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 정 씨도 이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정 씨는 “의사를 믿고 따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게 치료에 더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16cm 암#위암#사실상 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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