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색으로 단풍 들어야 아름다운데…우리는 어떤 때갈을 만들고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0일 20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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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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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어떤 색일까? 은행나무에겐 노랗고 소나무에게는 파랗고, 대부분의 나무들에겐 울긋불긋하다. 산에 있는 나무들은 대체로 울긋불긋한 색으로 온 산을 불태우며 가을을 겨울로 이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럽의 단풍은 우리와 상당히 다르다. 위도와 계절이 비슷한데도 세상을 불태우기보다 주로 노랗게 만든다. 북미 대륙의 단풍도 울긋불긋한데 유럽만 다르다. 왜 그럴까?

알다시피 단풍 색깔은 겨울이 오는 걸 감지한 나무가 잎으로 보내는 영양분과 수분을 차단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안토시아닌과 카로티노이드라는 두 색소가 잎 속에 있는데 안토시아닌이 많으면 붉은색이 나타나고, 카로티노이드가 많으면 노란색이 된다. 그러니까 유럽의 나무에는 대체로 안토시아닌이 없다는 얘기다.

2009년 핀란드 쿼피오대 연구에 따르면 안토시아닌은 3500만 년 전 쯤 나무들이 해충을 퇴치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자연에서 붉은색은 독성이 있다는 신호인데다, 이런 물질을 만들면 영양분이 적어져 진딧물 같은 녀석들에게 썩 좋은 먹잇감이 아닌 것으로 보여지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이때부터 울긋불긋한 단풍이 시작된 것이다. 실제로 진딧물을 대상으로 실험해 보니 녀석들은 붉은색보다 노란색 나무를 6배나 더 선호했다(영국 임페리얼대 연구). 왜 유럽 나무들은 이렇게 중요한 안토시아닌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잊을 만 하면 찾아온 빙하기 때문이었다. 온 세상을 얼음으로 만들어버리는 빙하기가 왔을 때 나무들은 씨앗을 이용해 따뜻한 남쪽 나라로 피신했다. 유럽 나무들 역시 그렇게 거대한 알프스 산맥을 넘었는데 불행하게도(?) 곤충들은 그렇지 못했다. 덕분에 빙하기가 지난 후 다시 북상했을 때 해충들이 사라져 버려 안토시아닌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가을을 노랗게 물들이는 ‘전통’을 지속할 수 있었다. 아시아와 북미의 나무들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해충들과 싸움을 하느라 해마다 가을을 붉게 물들여 왔고 말이다.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단풍의 색깔을 결정짓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의 얼굴과 행동에 어떤 색깔이 나타난다. 올 한 해 동안 이룬 성과가 누군가에게는 밝은 표정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타난다. 삶의 가을을 맞은 이들에게서도 마찬가지다. 그가 젊음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 수 있는 색깔이 그의 온 “에 배어있다. 나무가 잎으로 색깔을 표현한다면, 우리는 얼굴과 행동으로, 더 나아가 자신의 생각이나 작품 같은 것으로 그렇게 한다. 어떤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지가 그에 맞는 색깔이 되어 나타난다. 황동규 시인이 시집 ‘사는 기쁨’에서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의 때깔로 단풍 들거나 들고 있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그렇다. 사람은 자신의 때깔로 단풍이 들어야 아름답다. 오늘 우리가 보내는 하루하루가 우리 자신의 때깔을 만든다. 가을이 깊어간다. 나는 어떤 때깔을 만들고 있을까?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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