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개막D-50]너는메달을위해…나는너를위해뛴다!

입력 2008-06-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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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 개막 D-50. 태극전사들의 요람인 태릉의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진다. 태릉 뿐이랴. 해외 전지훈련 중인 종목도, 국제대회에 출전 중인 선수들도 오직 하나, 베이징올림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대한체육회가 내건 목표는 금메달 10개와 10위권 유지.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더욱 진하고 굵은 땀방울을 쏟아야 한다. 물론 스포트라이트는 베이징으로 향하는 태극전사들의 몫이다. 하지만 이들이 메달을 딸 수 있도록 뒤에서 돕는 숨은 일꾼들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다. 소위 ‘훈련 파트너’가 그 주인공들. 훈련 파트너의 신분도 일일 훈련수당 3만원을 받는 어엿한 국가대표다. 스포트라이트도 함성도 없지만 이들에게도 꿈이 있다. 복싱 이옥성(27·보은군청)도, 유도 왕기춘(20·용인대)도 한때는 파트너였다. 메달 유망주들은 이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영화배우 황정민의 밥상소감 처럼 대표선수들은 베이징의 영광을 함께 나눌 것이다. <스포츠동아>는 D-50을 맞아 동료의 메달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이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4년뒤엔 우리 잔치” 2인자들의 합창 한국레슬링의 가장 강력한 메달 후보는 그레코로만형 55kg급의 박은철(27·주택공사)과 그레코로만형 60kg급의 정지현(25·삼성생명). 박은철은 2001년 대표팀에 첫발을 들인 이후 2005년까지 임대원의 그늘에 가려 2진이었다. “잘 돼도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아요. 잘 안되면 욕은 같이 먹습니다.” 박은철은 훈련파트너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파트너 최규진(23·국군체육부대)은 2007년 전국체전 1위를 차지한 샛별. 다만 박은철에게는 3전 전패다. 하지만 국내 최고수와 매일 몸을 부대낄 수 있다는 것은 큰 자산. “2년 뒤 아시안게임 대표선발전에서는 (박)은철이 형을 꼭 한 번 이겨보고 싶다”는 포부가 대단하다. 박은철은 “(최)규진이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면서 “나를 보고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한시도 흐트러질 수가 없다”고 했다. 정지현의 파트너 김건회(25·삼성생명)는 정지현과 10년 지기다. 김건회는 “중학교 때 체전 경기도대표로 만났을 때는 내가 (정)지현이에게 레슬링을 가르쳤다”며 웃었다. 외모도 닮아 함께 다닐 때면 “형제냐?”는 질문도 받는다. 정지현의 어머니조차 착각할 정도. 소속팀까지 같아 매일 살을 맞대지만 정작 공식경기에서 맞붙은 것은 한 번 뿐. 5년 전, 김건회가 3-4로 패했다. 김건회는 2005년 핀란드 반타컵과 2007년 헝가리그랑프리를 석권한 실력파. 대표 경력도 4년이나 된다. 지금은 정지현에 가려 국내 2인자이지만 올림픽 이후에는 1인자가 되겠다는 각오가 대단했다. 4년 전, 아무도 정지현의 금메달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김건회의 생각은 달랐다. “매일 붙어 보는 사람은 안다”고 했다.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를 물었더니 “4년 전 보다 더 강해졌다”면서 “이번에도 정지현”이라고 했다. 정지현은 “친구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을 텐데 단 한번도 내색하지 않아 고맙다”며 김건회의 어깨를 감쌌다. “왜 저를….”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김건회의 첫 마디였다. “사람인데 왜 마음 상할 때가 없겠냐”는 김건회, 잠시 뒤 정지현의 몸을 풀어주고, 수건으로 정지현의 땀을 식혀주고 있었다. “2012년에는 저도 꼭 올림픽 무대에 설 겁니다.” 몸 뿐 만 아니라 표정과 어조까지 다부졌다. 금메달은 결코 혼자 따는 것이 아니다. “함께 쏘면 집중력 UP” 윈윈 합훈 격투기에만 파트너가 있는 것은 아니다. ‘철저히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사격에도 있다. 베이징올림픽에 나서는 사격선수는 총 14명. 하지만 대표팀 명단은 총 40명이다. 사격대표팀 변경수 총감독은 “혼자서만 총을 쏜다면 얼마나 지루하겠냐?”고 되물었다. 파트너들은 대표선발전에서 간발의 차로 베이징행 티켓을 놓친 선수들. 25m 권총 권오근 코치는 “본인 속은 쓰리기도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들 모두 ‘윈(win)-윈’이다. 변 총감독은 “여럿이서 쏘면 집중력이 더 좋아진다”면서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들은 선발전에서 이긴 선수들에게 지면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한다”고 했다. 반대로, 선발전에서 진 선수들은 올림픽 출전선수를 이김으로써 허탈감에서 벗어나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변 감독은 “앞으로 있을 사격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 대표선수도 현 대표팀 가운데서 80%가 나올 것”이라며 “(비용문제가 있지만) 한국 사격의 미래를 보고 (거대) 선수단을 꾸렸다”고 했다. 친구로…적으로…‘태권 V’ 의기투합 “언니 덕에 태릉에 들어가서 좋았죠. 처음에는 모든 게 신기했어요.” 현미진(19)과 노은실(19)은 한국 태권도의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는 여자 -57kg 임수정(22·이상 경희대)의 파트너. 임수정과는 대학 선·후배 사이로, 평소에도 임수정을 잘 따랐다. 파트너 선발 과정에서도 임수정이 이들을 적극 추천했다. 현미진이 2007년 전국체전(-55kg급) 1위. 노은실이 2008년 세계대학선수권 선발전(-63kg)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실력을 갖춘 것은 물론이다. 태릉은 이들에게 별천지였다. 식사 때마다 화려한 음식에 놀랐고, 물리치료실도 달랐다. 노은실은 “평소 부상이 잦았는데 치료시설이 잘 돼 있어 좋았다”고 했다. 임수정의 강력한 라이벌 다이애나 로페스(미국)는 임수정보다 키가 크다. 긴 다리에서 나오는 현미진의 발차기는 로페스를 겨냥한 연습으로 안성맞춤. 노은실은 남자 선수들처럼 화려한 발기술을 자랑한다. 문대성 처럼 KO 경기도 종종 펼친다. 임수정은 “(노)은실에게 발차기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한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2009년 세계선수권 대표에 도전하는 현미진과 2008년 세계대학선수권 우승을 노리는 노은실에게도 대표팀 훈련은 보약이다. 대표팀은 2일부터 14일까지 태백에서 고지대 훈련을 했다. 지구력을 키우기 위해 7.5km 산악달리기는 필수. 비바람이 몰아쳐 지척간도 잘 보이지 않았다. 약간 처진 임수정은 생소한 코스 때문에 길을 잃었다. “태백에 호랑이와 곰이 있다”는 노은실의 농담도 진담처럼 떠올랐다. 정신까지 혼미해지려던 순간, 노은실을 만나 본궤도에 재진입할 수 있었다. ‘가장 힘들 때 곁에 있어주는 것’이야말로 이들의 자매 애다. 임수정은 “(현)미진이, (노)은실이는 내 친구이자 적이고, 때로는 나를 감싸주는 어머니”라면서 “올림픽에서도 함께 뛴다는 생각으로 매트에 서겠다”고 했다. “아시아 신기록도 3인1조 합작품” “다 (배)준모와 (피)승엽이 덕분입니다.” 4월18일, 제80회 동아수영대회 자유형 400m에서 아시아기록을 새로 쓴 박태환(19·단국대)은 모든 공을 동료들에게 돌렸다. 배준모(19·서울시청)와 피승엽(18·충북체고)은 박태환의 훈련파트너. 노민상 감독은 “(배)준모는 스피드가 좋아 앞에서 끌어주고, (피)승엽이는 지구력이 좋아 뒤에서 추격하는 힘이 좋다”고 했다. 200m 훈련 때 배준모는 박태환보다 6초, 피승엽은 3초 가량 먼저 출발한다. 두 선수 모두 올림픽 B기준기록을 넘었다. 박태환이 없었다면 베이징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도 있었다. 배준모는 “솔직히 아쉬움도 있었지만 어느새 다 잊었다”면서 “박태환과 훈련하는 것이 내 기록향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배준모는 박태환과 동갑내기로 룸메이트. “박태환의 성격이 깔끔해 같이 방을 쓰는 게 편하다”고 했다. 배준모의 몫까지 청소를 해줄 때도 있다. 얼마 전에는 박태환이 게임CD를 선물하며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피승엽은 “(박)태환이 형은 역시 세계적인 선수라 다르다”면서 “몸이 안 좋을 때는 오버페이스 하지 않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전력을 다해 기량을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고 많이 배운다”고 했다. 영법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박태환은 “동료들과 함께 훈련을 하면 외롭지 않아 도움이 된다”며 웃었다. 이들의 목표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계영 800m(200m×4)에서 꼭 금메달을 따겠다는 각오다. 박태환과 호흡을 맞춰 황금계주를 펼칠 것이다. 이들은 박태환과 외박까지 똑같이 받는다.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처럼 맹훈련이다. 배준모는 “(박)태환이 메달을 따오면 우리도 보람이 있을 것”이라며 “끝까지 몸 관리를 잘 해 한국수영의 위상을 높여 달라”고 당부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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