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홍콩 명물 제니 베이커리와 한국의 그랜드 코리아 세일

입력 2015-09-18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빅토리아 피크에서 본 홍콩 빌딩숲

홍콩 도심 번화가에 있는 지하철 셩완역. 이곳에서 2∼3분쯤 걸어가면 작은 골목이 있다. 이곳에선 아침마다 진풍경이 펼쳐진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점포들 사이의 좁은 길에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지 주민들도 있지만 대부분 홍콩을 방문한 관광객들이다. 커다란 여행용 캐리어를 옆에 두고 줄을 선 사람도 쉽게 볼 수 있다. 이곳에 있는 ‘제니 베이커리’란 지역 제과점의 쿠키를 사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제니 베이커리’의 쿠키는 홍콩을 여행한 한국 관광객들에게 ‘마약쿠키’로 불리는 인기 쇼핑 품목이다.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높아 1인당 판매량을 제한하는 데도 오전에 문을 열면 오후 2시나 3시쯤 다 팔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과자 한 통 사기 위해 오전부터 후텁지근한 홍콩에서 길게는 1시간 이상 줄을 서는 수고를 감수한다. 이 시간에 줄을 서려면 잠을 설치고 나왔을 텐데도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긴 기다림으로 인한 짜증보다는 설렘이 가득하다. 외국여행의 쇼핑이 주는 아기자기한 환상과 기대, 만족감을 이곳에서 느끼는 것이다.

쇼핑투어의 강국으로 불리는 홍콩에는 제니 베이커리처럼 관광객의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형성하는 ‘강소 아이템’들이 많다. 세일이나 할인쿠폰을 제공하는 요란한 마케팅이나 광고도 없고 화려한 매장이나 관광객에 대한 환대도 없다. 하지만 이것을 사야 홍콩을 다녀왔다고 주위에 자랑할 수 있는 ‘머스트 바이’(must buy) 품목들로 여행객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메르스 사태로 호된 시련을 겪은 관광산업을 살리기 위해 지금 범정부차원에서 세일즈 프로모션 ‘그랜드 코리아 세일’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공항부터 외국인 방문객을 미소로 맞이하자는 환대 캠페인이 벌어지고, 명동이나 동대문 같은 주요 쇼핑가에서는 관광객 대상의 각종 이벤트가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거창한 이벤트에 비해 외국인 방문객들이 한국에서 쇼핑을 하면서 여행의 추억과 이야기거리를 마음에 담고 갈 우리의 브랜드와 아이템은 그다지 눈에 띠지 않는다. 그들이 장시간 줄을 서 기다리는 고생을 감수하면서도 꼭 사가고 싶은 ‘한국의 제니 베이커리는 과연 있을까’ 홍콩 셩완역의 아침 풍경을 떠올리며 자문해 본다.

김재범 전문기자 oldfiel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