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 여행]백제역사유적지구를 가다 #1. 공주

입력 2015-09-25 1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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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투어 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를 가다 #1. 공주

지난 7월, 독일의 본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작은 나라, 잊혀진 고대왕국 백제가 2천여 년의 설움을 털고 세계인 앞에 모습을 드러내던 날. 가장 먼저 웃음을 터뜨린 건 백제의 두 번째 왕도, 웅진이 아니었을까.

백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지역이 백제의 후반기 도읍이었던 지금의 공주와 부여, 두 곳이다. 700년 백제 역사에서 마지막 200년도 채 못 되는 시간이 백제를 대표하게 된 건, 우리가 승자에 의해 기록된 패망의 역사를 기억하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또 당시의 백제가 그 어느 때 보다도 찬란한 꽃을 피워낸 시기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백제의 두 번째 수도 웅진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백제의 왕도로 기억되고 있다. 세기의 발굴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무령왕릉송산리7호분의 출현은 추측만 무성하던 고대왕국의 존재를 입증하고 백제의 위대함을 만천하에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고, 인근의 공산성이 백제의 왕성이자 웅진시기 왕궁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발굴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송산리고분군과 공산성은 웅진이라는 이름의 대명사가 된지 이미 오래, 그럼에도 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것 같아 늘 안타깝기만 하던 마음은 모두 지우고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고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오랜만에 백제의 땅으로 떠났다. 웅진, 오늘의 공주가 그 첫 목적지이다.

TIP. 백제역사유적지구Baekje Historic Areas
2015년 7월 4일(토) 제 39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는 우리나라가 등재 신청한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하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 자연, 복합 목록 등재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정부간위원회인 세계유산위원회는 백제역사유적지구가 한국·중국·일본 동아시아 삼국 고대 왕국들 사이의 상호 교류 역사를 잘 보여준다는 점, 백제의 내세관·종교·건축기술·예술미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백제 역사와 문화의 특출한 증거라는 점 등을 높이 평가,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대상 지역은 공주·부여·익산 지역에 위치한 총 8개소이다.

- 공주(2개소):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 부여(4개소):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나성
- 익산(2개소): 왕궁리 유적, 미륵사지
고마나루Gomanaru에서 찾은 웅진백제의 시작
공주의 태동지이자 웅진백제의 관문 역할을 하던 금강변 나루터 일대는 공주의 옛 이름이기도 한 고마나루로 불린다. 공주 땅에 들어서 제일 먼저 그곳을 찾았다. 선대왕인 개로왕의 죽음과 도읍이었던 한성의 함락, 죽어서도 잊지 못할 비극을 뒤로한 채 웅진으로 향하던 문주왕과 백제의 백성들이 길고 고단했던 여정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백제의 희망을 꿈꾸며 발을 디뎠던 곳, 한 사람의 인생과 한 국가의 운명을 다시금 걸어야 했던 곳, 바로 그곳이 고마나루터라고 생각했다. 웅진 백제로의 여행을 시작하기에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서기 475년 시작된 웅진백제 64년간의 세월이 다시 눈앞에서 피어오르는 것 같다.
백제를 지나 고려 현종과 조선 인조의 가슴 시린 발걸음을 받아주었던 고마나루는 기나긴 날들의 기억을 모두 지운 듯 말을 잊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물길을 찾지 않고, 나루는 흘러가는 세월만 금강에 실어 보낼 뿐이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며 1500년 전의 일을 떠올리려 애쓰던 노력은 나만의 고집은 아니었나보다. 곧은 자세로 나루터 앞에 선 한 아주머니는 누군가를, 또 무언가를 기원하기 위해 하염없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마치 내가 떠올리려던 그때를 함께 떠올리며 새로운 백제의 앞날에 축복을 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TIP. 고마나루의 전설과 곰사당
백제가 곰을 신성시하며 원시 종교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곰 설화가 고마나루에 전해온다.
“아득히 먼 옛날 나루 인근의 연미산에 살던 암곰이 나무하러 온 한 나그네를 잡아 부부의 연을 맺고 두 명의 자식을 두었다. 하지만 인간 세상을 그리워하던 남편은 결국 동굴을 빠져나와 도망치게 되고 이것을 비관한 암곰은 자식들과 함께 금강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나루터 주변에 있는 곰사당은 죽은 암곰과 자식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제를 지내는 사당으로 앞마당의 웅신단비에 곰과 인간에 얽힌 전설이 적혀있다. 울창한 솔숲이 어우러져 신묘한 기운을 자아내며 특히 이른 아침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마치 전설 속 한 장면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공주한옥마을에서 상상하는 백제인의 삶
고마나루 솔밭을 뒤로하고 백제큰길을 지나 국립공주박물관을 향해 걸었다. 박물관이 가까워지자 먼저 한옥마을이 공주를 찾은 손님을 맞이한다. 널찍한 앞마당을 수놓은 연꽃 군락 뒤로 기와지붕과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평안한 모습이 넉넉해 잠시 휴식을 떠올렸다. ‘어디서 묵어갈까’ 고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갈 길 바쁜 여행자는 한 끼 식사로 허기를 달래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혀 가는데 만족하기로 한다. 대를 이어 내려오는 공주의 향토음식 공주국밥과 지역 특산품 알밤을 재료로 만든 음식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운치 있는 한옥집에 앉아 맛보는 그 고장의 음식들이 늘 그렇듯, 국밥 한 그릇으로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은 재료 본연의 풍미와 담백함으로 공주의 맛을 그득하게 전해준다.
한옥마을 속으로 잠시 들어갔다. 골목골목을 따라 이어지는 집들의 풍경이 끊임없이 발걸음을 잡는다. 전통의 고즈넉함과 현대의 달달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지나가는 이에게 정겨운 손을 내미는 풍경들. 굳게 닫힌 방문 앞에 가지런히 놓인 고무신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조심조심 내딛다가도 또 다른 창호문에 걸린 앙증맞은 캐릭터의 그림 앞에서는 허허 소리 내어 웃게 되는 동네. 공주한옥마을은 여느 숙박업소에서 느끼기 어려운 사람의 온기가 스며있어 잠시 누군가의 삶을 상상하게 만드는 그런 곳이 되었다. 이곳에 처음 터를 잡고 마을을 가꾸었을 백제인들. 어쩌면 그들도 지금의 이 마을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소박한 삶의 행복을 누리지 않았을까. 집의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이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 같은 백제인들의 삶이 눈에 선하다.

A 충남 공주시 관광단지길12(웅진동)
T 041-840-8900
http://hanok.gongju.go.kr

TIP. 함께 둘러볼만한 곳
공주한옥마을과 국립공주박물관 사이에는 조선시대의 유적들도 남아있어 오가는 길에 잠시 둘러보기 좋다. 또한 국궁장도 함께 위치하고 있어 특별한 체험도 즐겨볼 수 있다.

충청감영 복원지
조선 초기 충주에 설치되었던 충주감영은 1602년 선조 35년에 공주 공산성으로 이전되었다. 1653년 충청도 관찰사 강백년이 봉황산 아래로 감영을 대대적으로 이전하였고 조선 후기의 감영 건물은 49동 481칸에 이르렀다. 1932년 대전으로 도청이 이전되면서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의 건물이 철거되었고 지금은 선화당과 포정사 문루, 동헌 등의 건물만이 이전하여 복원되어 있다. 보물 261호 금영측우기의 모조품이 전시되어 있다.

관풍정
활쏘기의 전통과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충청남도를 대표하는 국궁장. 1635년 ‘이괄의 난’ 당시 공주로 피난 온 인조대왕이 인근 공산성의 쌍수정에 머물렀는데, 난리가 평정되어 환궁할 때 이곳에 선비들의 심신을 연마할 수 있는 사정射亭, 활 쏘는 사람들이 무예 수련을 위하여 활터에 세운 정자을 만들도록 명하면서 건립되었다. 관풍정은 궁도에 관심 있는 시민들을 위하여 연중 궁도장을 개방하며 궁도 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 한 번 들른다면 국궁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공주박물관이 얘기하는 무령왕의 모든 기록
관풍정에서 시원하게 활 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으니 소나기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아 얼른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공주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입구의 관람객들은 종종걸음으로 급히 실내로 들어갔지만, 박물관 앞마당 야외전시장의 색 바랜 낡은 불상들은 초연하게 비를 맞으며 박물관을 지키고 서 있다. 그 모습은 마치 박물관이 존재하는 이유를 대변하는 것만 같다. 온갖 부침과 험난한 세상사를 다 겪은 세월의 잔해들이 이 곳 박물관에 둥지를 틀고 앉아 역사의 진실을 이야기하려는 모습. 공주박물관은 세상에 드러난 웅진백제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다.
공주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무령왕. 1층을 가득 메운 무령왕릉의 출토품들 앞에서 가장 먼저 무령왕의 흉상이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그 다음은 무령왕의 영혼을 수호하기 위해 무덤 안을 지키고 있던 석수石獸와 묘지석墓誌石이다. 무덤의 주인이 ‘영동대장군 사마왕’임을 또렷한 문자로 지금의 후손들에게 알려준 묘지석의 기록은 1500년간 지하에 잠들어있던 백제를 환생시킨 장본인이었다. 묘지석이 전하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소름이 돋을 만큼 경이롭지만 무덤 속에서 함께 나온 갖가지 출토품 하나하나의 면모는 1500년의 세월을 무색하게 하는 황홀함이다. 특히 당시 백제의 국제적 위상을 보여주는 일본산 금송으로 만든 나무관, 동남아에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는 색색의 유리구슬과 중국의 오수전 등은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무령왕릉의 가치와 품격을 보란 듯이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웅진에서 펼쳐진 무령왕의 백제는 그 어느 때 보다 더 힘차게 활활 타올랐던 것 같다.

A 충남 공주시 관광단지길 34(웅진동 360번지)
T 041-850-6300
관람시간. 평일 오전 9시 ~ 오후 6시 / 토,일,공휴일 오전 9시 ~ 오후 7시
http://gongju.museum.go.kr

송산리 고분군에 잠든 백제왕족의 영혼
공주박물관의 자연학습장을 걷다가 우연히 이정표 하나를 발견했다. 다음 목적지가 이곳에서 멀지 않다는 소식. 한적한 숲길을 따라 얼마쯤 걸었을까, 눈앞에 이색적인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송에서 몇 번쯤 봐왔던 장면이었지만 실제로 마주한 그것은 예상외로 아름다웠고, 커다란 초록 봉분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무덤을 하나의 작품으로 뒤바꿔놓았다. 군데군데 봉긋하게 솟아오른 몇 개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 우리에게 무령왕릉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송산리 고분군이다. 정상에 서서 펼쳐지는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공주 시내가 고분을 둘러싸고 있고 그 너머로 금강의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있다. 한눈에 이 모든 풍경을 담을 수 있는 곳에 잠들어 있는 이들은 웅진백제의 왕과 왕족들. 죽어서도 자신들의 나라와 백성을 살피려는 군주의 마음이 송산리 고분군을 이곳에 자리 잡게 한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본래 17기의 무덤이 있었지만 지금은 7기의 무덤만 복원되어 있고 그 중 7호분인 무령왕릉만이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나머지 무덤들은 발견되었을 당시, 도굴로 인하여 이미 모든 부장품들이 사라졌고 그 주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1년 7월 8일 기적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무령왕릉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대 대사건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라 조금은 긴장된 발걸음으로 무령왕릉의 앞에 섰다. 하지만 무령왕릉의 입구는 보존상의 문제로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판으로 가로막힌 채 1500년의 세월을 감추고 있는 중. 아쉬움은 모형전시관에서 달래야했다. 무령왕릉과 5,6호분을 그대로 재현해 복원한 전시관을 돌아보며 간절히 바래본다. 더 위대한 백제의 시간이 또다시 우리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길.

A 충남 공주시 금성동 산 5-1
T 041-856-0331

TIP. 웅진백제역사관
송산리고분군 옆에 위치한 웅진백제역사관은 백제 역사문화콘텐츠와 IT시스템을 활용한 교육, 홍보, 체험이 가능한 전시관이다. 송산리고분군을 찾아온 사람들이 보다 쉽고 흥미롭게 백제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조성된 이곳은 3개의 전시실과 전시홀, 영상실로 구성되어 있다. 입구의 무령왕릉 안내소에는 안내원과 문화관광해설사가 상주하고 있다.

공산성, 웅진백제를 지키다
공산성 입구에 닿았다. 언덕 위에 길게 띠를 두른 고풍스러운 성벽과 늠름한 모습의 금서루錦西樓는 웅진을 지켰던 고대 백제의 왕성으로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서둘러 성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간, 성곽길을 한 바퀴 돌며 이곳에 남아있는 백제 최후의 슬픔을 떠올린다.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은 나당연합군이 쳐들어오자 당시 수도인 사비성을 탈출해 군사적 요충지였던 이곳 공산성에서 최후의 일전을 준비했다. 하지만 며칠 후 의자왕은 이곳에서 나당연합군에게 석연찮은 항복을 했고 백제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최근 이곳 공산성에서 당시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다양한 유적들이 발굴되며 백제의 마지막에 대한 해석이 빠르게 뒤바뀌고 있다. 660년 백제가 멸망하던 시기의 것임을 말해주는 명문이 새겨진 갑옷과 마갑, 대도, 화살촉 등의 전쟁 유물들은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의자왕의 백제가 항복이 아닌 항전으로 최후를 맞았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임에 틀림없다.
어느새 어둠이 공주의 도심 깊숙한 곳까지 내려앉았다. 공산성의 성벽에 앉아 가녀린 불빛으로 옷을 갈아입은 공주의 밤을 바라본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은 홀로 어둠 속에 앉아있는 여행자의 마음마저 편안하게 만든다. 그것은 누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삶과 터전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곳 공산성이 바로 웅진과 백제를 최후의 순간까지 지키려 했던 것처럼, 그렇게.

A 충남 공주시 웅진로 280
T 041-840-2265
관람 시간. 8:30 ~ 17:30까지 매표. 이외 시간은 무료 관람 가능

제 61회 백제문화제
“백제 다시 태어나다”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대백제가 그 후손들의 터전인 대한민국 충청남도에서 제 61회 백제문화제로 새롭게 펼쳐진다.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서사적 축제인 이번 문화제는 1400년 전 대백제의 부활이라는 테마를 통해 다양한 행사가 9월 26일(토)부터 10월 04일(일)까지 9일간 공주시와 부여군 일원에서 펼쳐지게 된다. 특히 올해는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뜻 깊은 해로 그 어느 때 보다 700년 동안 찬란했던 대백제의 역사와 정신을 우리의 가슴 속에서 뜨겁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공식명칭 : 제 61회 백제문화제
- 주제 : 백제 다시 태어나다
- 개최장소 : 충청남도 공주시, 부여군 일원
- 개최기간 : 2015. 9. 26(토) ~ 10. 4(일), 9일간
- 문의 : (재)백제문화제추진위원회 (041-635-6980, http://www.baekje.org)

제공 : 모두투어(www.modetour.com, 1544-5252), TRAVEL MAGAZINE G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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