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가 사람 잡으니 매뉴얼 손질…원칙 어긴 KBO리그 중단, 씁쓸한 뒷맛

입력 2021-07-13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스포츠동아DB

혹시 모를 경우까지 대비해 매뉴얼을 마련했다. 하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 일이 발생하자 급히 매뉴얼을 손질해 리그를 중단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초유의 KBO리그 중단. 매끄럽지 못했던 과정은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KBO는 12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전반기 잔여일정(30경기)의 연기를 결정했다. 최근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전국에서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난 가운데 지난주 NC 다이노스 3명, 두산 베어스 2명 등 선수 중 확진자가 잇달아 발생했다. 11일 긴급 실행위원회(단장회의)에서 어느 정도 조율을 거친 구단들은 이날 이사회에서 해당 안건을 최종 의결했다.

이러려고 매뉴얼 만들었나?

지금이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한 이후 최악의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확진자가 발생한 NC와 두산은 밀접접촉자가 쏟아지면서 기존 1군 멤버로는 경기를 치를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KBO는 올해 초 매뉴얼을 이미 만들어뒀다. 매뉴얼에 따르면, 역학조사 결과 구단 내 밀접접촉자 발생 시 ‘인원수와 상관없이 구단 대체선수들을 투입해 리그 일정 정상 진행’이 명시돼있다. 물론 ‘엔트리 등록 미달 등 구단 운영이 불가하거나 리그 정상 진행에 중대한 영향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 긴급 실행위·이사회 요청도 가능하다.

현 상황을 ‘리그 정상 진행에 중대한 영향이 있다’고 판단했으니 중단을 한 것이다. 매뉴얼은 정작 단 한 번의 실행도 없이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NC와 두산은 물론 과반수의 구단이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리그 중단을 찬성했다. 스스로 정한 매뉴얼을 스스로 파기하며 신뢰를 깼다. 롯데 자이언츠는 래리 서튼 감독의 밀접접촉자 분류, KT 위즈는 코칭스태프의 확진 속에서도 기존 일정을 소화했다. 최근 확진자가 발생한 두산과 NC는 꾸준히 경기가 취소된 데 반해 다른 팀들은 경기를 하던 중 지연개시 등의 해프닝까지 겪어야 했다. 매뉴얼을 지킨 구단만 오히려 손해 봤다.

대표팀 예비 엔트리에 포함된 이들은 이미 화이자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친 상황이다. 밀접접촉자가 아닌 능동감시자로 분류돼 출장할 수 있다. 군입대 선수를 제외하면 NC는 11명, 두산은 13명이 백신 접종을 마쳤다. 1군 엔트리에서 절반 수준의 공백이 불가피하지만, 매뉴얼은 720경기 전체를 완주하기 위해 시즌 전 KBO와 구단들이 합의한 결과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매뉴얼을 만들었지만, 혹시 모를 상황이 현실로 바뀌자 말을 바꾼 꼴이다.

구단의 역할, 구단의 의무, 구단의 권리

KBO의 코로나19 매뉴얼에 따르면, 선수단 내 유증상자 및 밀접접촉자 발생 시 대응은 구단의 역할이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대부분의 구단들은 선수의 밀접접촉이 의심되는 경우 이를 공개해왔다. 심지어 선수가 주민센터를 방문했거나, 유치원생 자녀의 교사가 확진돼 코로나19 검사가 필요하다는 등의 세세한 사례까지 있었다. 그러나 NC와 두산은 이사회가 끝난 직후 사과문을 내는 데 그쳤다. 특히 일부 사례에선 방역수칙 위반 의혹마저 제기되는 만큼 향후 도의적 책임을 떠나 징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소명은 구단의 의무다.

구단 내부적으로도 적잖은 동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단을 주장한 구단들은 코로나19 공포에서 선수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들고 나왔다. 여기에 일부 구단에선 경기의 수준과 질을 우려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군 선수들이 경기에 나서면 팬들에게 납득할 만한 수준의 경기를 보여주기 어렵다는 의미다. 2군 선수들 입장에선 동기부여 상실도 당연하다. 연거푸 경기가 취소되던 지난 주말, 2군 선수들이 매뉴얼에 따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며칠째 준비 중일 때 구단 수뇌부에선 이들이 출장할 경우 경기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고 의구심을 품고 있었던 꼴이다.

출범 이후 최초의 중단 선언. ‘바이러스에 대응한 선제적 조치’와 ‘스스로 합의한 매뉴얼을 무용지물로 만든 헛스윙’ 사이. 훗날 역사는 이 선택을 어떻게 기억할까.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