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씹을수록 공감 커지는 ‘인간실격’ 내레이션

입력 2021-09-23 0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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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10주년 특별기획 ‘인간실격’(연출 허진호 박홍수 극본 김지혜)이 곱씹을수록 가슴 저릿한 내레이션으로 뭉클한 울림을 안기고 있다.

전도연이 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부정’의 변화를 밀도 높게 그리고 있다. 상실의 아픔으로 무너져내리는 부정의 모습은 깊은 공감을 선사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 부정의 일상은 공허하고 메말랐고,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했던, 이루 말할 수 없던 아픔은 그의 내레이션을 통해 더욱 극대화됐다. ‘인간실격’을 고독에 대한 이야기라고 밝힌 김지혜 작가는 내레이션에 부정의 감정을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이에 제작진이 묵직하게 치고 들어와 깊숙하게 스며드는 부정의 공감 내레이션을 되짚었다.


# 박지영 향한 저주의 기도 “나처럼 불행해지길, 숨 쉬는 모든 시간이 지옥이기를” (1회)

부정의 내레이션은 첫 장면부터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으로 시작하는 부정의 인사는 지독한 악연 아란(박지영 분)에게 띄우는 편지였다. 부정은 악성 댓글의 가해자로 경찰서 출석 요구서를 받아들었다. 그 누구도 부정의 심경을 이해하지도, 대신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 창숙(박인환 분)의 집으로 향하는 길, 아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메마른 눈빛 뒤로 원망 가득한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오늘 혹시 조금이라도 불행한 일이 있었다면 그건 저의 간절한 기도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날 때면 늘 간절히 기도합니다. 당신이 나처럼 불행해지기를, 숨 쉬는 모든 시간이 지옥이기를, 꼭 나처럼 그렇게 되기를”이라고 읊조리는 부정의 목소리는 그를 나락으로 밀어낸 아란과의 과거를 주목하게 했다.


# 류준열에게 보낸 첫 번째 메시지 “답장은…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4회)

부정은 인생의 내리막길 위에서 실패한 자신과 마주하며 삶의 이유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강재(류준열 분)와의 만남은 작은 변화를 일으켰다. 우연인 듯 필연적인 만남을 거듭한 두 사람은 약속대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낯선 타인에서 ‘사람 친구’로 관계를 발전시킨 것. 부정의 잔잔했던 일상에 일렁이는 파동은 심상치 않았다. ‘끝집’으로 연락처를 저장하고 한참이나 망설이던 부정은 용기 내 메시지를 보냈다. “그날은 감사했습니다”라고 운을 뗀 부정은 강재의 집 우편함에 손수건을 되돌려주며, “제 휴대폰 주소록에 가족도, 직장 동료도 아닌 사람의 연락처를 저장한 게 너무 오랜만이라 한 번쯤은 연락을 드리고 싶었습니다”라고 써 내려갔다. 그 짧은 문장 속에는 잠시 잊고 지낸 묘한 설렘도 묻어났다. 부정은 “답장은…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라면서도 오랫동안 강재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근히 꼭꼭 눌러 담은 부정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 전도연의 유서,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습니다” (6회)

꿈꿔온 삶과 멀어졌다는 현실을 자각한 부정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무엇이 이토록 두려운 걸까요”라는 자조 섞인 질문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뇌리에 깊이 각인된 이 내레이션에는 뜻밖의 반전이 숨어있었다. 바로 죽은 정우(나현우 분)가 지내던 고시원 방에서 찾아낸 부정의 자필 유서 중 일부였던 것. 동시에 ‘사랑하는 아버지’ 창숙에게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기도 했다. “전부 다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그중에 하나, 아니면 두 개쯤 손에 쥐고서 다른 가지지 못한 것들을 부러워하는 인생. 그게 마흔쯤의 모습이라고, 그게 아니면 안 된다고 믿고 있었던 것 같아요”라는 애달픈 고백과, “아버지… 나는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무것도 되지 못한 그 긴 시간 동안 내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 같아요. 나를 구하지 못해서, 나를 지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라는 마지막 인사는 가슴에 남아 자꾸만 곱씹게 되는 짙은 여운을 남겼다.

지난 방송에서 강재는 죽은 정우와 부정의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아란이 부정에게 선물한 사인 책과 초고 뭉치, 그리고 부정의 자필 유서까지 발견한 강재는 혼란스러웠다. 그는 부정의 유서 내용을 되뇌다 미뤄온 답장을 보냈다. 누군가 필요하면 연락을 하라는 강재의 메시지에 부정의 답장이 도착했다. 부정이 강재를 불러낸 이유, 그리고 이에 응한 강재의 진심은 무엇인지 이들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인간실격’ 7회는 25일 밤 10시 30분 방송된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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