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자매가 전해준 그리스 현지 얘기들 [스토리 발리볼]

입력 2021-10-22 1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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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PAOK SNS

예상했던 대로였다.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가 그리스리그로 떠났지만 여전히 배구뉴스는 이들 소식이 빠지지 않는다. 특히 이다영이 그리스 도착 사흘 만인 21일 새벽에 치른 데뷔전은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하다시피하며 경기 결과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이후 모든 매스컴이 경쟁적으로 뉴스를 생산했다. 그날 배구뉴스 톱10 가운데 절반 이상은 쌍둥이 자매가 차지했다.

이런 뜨거운 관심이 불편했던지 지적한 기사도 있었다. 잘 생각해보면 쌍둥이 자매를 향한 매스컴의 집착과도 같은 관심은 벌써 9개월째다. 아무리 뉴스가 화제의 중심에 있는 인물을 위주로 한다고 해도 지금의 현상은 유난스럽다. 많은 V리그 관계자들은 이런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어찌됐건 쌍둥이 자매는 자신들이 원했던 방식은 아니지만 유럽무대에 데뷔했고 앞으로도 이들의 활약은 계속 뉴스를 탈 것으로 보인다. V리그의 딜레마다.

그리스 리그가 터키나 이탈리아 같은 빅 리그와는 시장규모와 선수들의 경쟁력에서 비교가 되겠지만 이번 시즌 현대건설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야스민이 뛰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만만하게 볼 수는 없다. V리그 정상권에 있던 자매가 선수로서 한창 전성기에 다다를 나이여서 그리스 리그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주는가를 지켜보면 V리그의 경쟁력과 다른 선수들의 해외진출 가능성도 여부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중 일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배구는 이들 자매를 품에 안지 못해서 많은 것을 놓쳤다. 다른 어떤 것보다 이 부분이 아쉽다.

사진출처 | PAOK SNS


자매는 그리스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16일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난장판과 같은 소동을 겪으며 비행기를 탔던 들은 터키를 경유해 그리스 테살로니키에 도착하면서 움츠려들었던 마음이 풀렸다. 가장 먼저 이들을 반긴 사람은 공항에서 일하는 보안요원이었다. 자매가 도착하자마자 보안요원들은 이들을 알아보고 다가와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환대했다. 자매가 들고 왔던 15개의 가방은 보안검색도 하지 않은 채 무사통과였다.

첫 날을 호텔에서 지낸 이들은 다음날 자신들을 위해 준비한 아파트를 확인했다. 자매에게 각각 한 채씩 준비된 아파트는 대리석이 깔려 있었고 새로운 가전제품과 침대 등 정성을 다해 준비했음이 한 눈에 확인됐다. 구단을 이들을 위해 아파트를 리뉴얼 했다. 주차장에는 이들을 위한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구단은 팀의 오랜 라이벌인 올림피아코스와의 경기에 이다영을 출전시켰다. 모두의 예상보다 빨랐지만 첫 훈련에서 이다영이 투입되면서 팀의 플레이가 확 달라지자 감독은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 선택은 충격적인 데뷔전으로 이어졌다. 쿠바 출신의 감독이 지휘하는 올림피아코스는 쿠바와 브라질, 독일의 대표선수가 뛰는 리그 최강팀이다.

사진출처 | PAOK SNS


우리 V리그와는 달리 관중들이 큰 북을 치고 큰 소리로 응원가를 함께 부르는 시끌벅적한 경기장에서 이다영은 팀에 3-0 승리를 안겼다. 그리스리그 최강팀의 연승을 깨는 결과에 PAOK는 더 이상 기쁠 수가 없었다. 자매의 영입을 위해 두 팔을 걷었던 사장은 물론이고 가족과 함께 경기를 지켜봤던 PAOK 회장은 경기 뒤 연신 축하인사를 받았다.

코스타스 아모리디스 사장은 현지에서 대현 전자제품 유통회사를 운영하는 기업가다. 그는 자매의 영입이 대한배구협회의 어깃장으로 막혀서 예정됐던 팀 훈련에 합류하지 못할 때 고민도 했지만 끝까지 믿고 기다려준 보상을 그날 승리로 받았다.

사장은 팀을 맡자마자 팀을 재정적으로 안정시킨 뒤 새로운 팀 문화를 만들고자 했다.
어린 그리스선수들과 쌍둥이 자매, 마야 등 외국인선수들이 함께 어우러져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 했다. 자매에게는 어린 선수들에게 좋은 롤 모델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이미 PAOK의 어린 선수들은 자매의 첫 훈련모습을 본 뒤 두 사람의 동작을 따라하며 배우려고 한다. 이들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자매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첫 연습을 함께 하며 어떤 수준의 선수인지를 확인했다. 아직 통역이 없어 자매와 선수들은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해가며 짧게 훈련을 했지만 더비전에서 완승을 거뒀다.

사진출처 | PAOK SNS


사장은 “이재영 선수는 팀에 귀한 존재이기에 충분히 준비해서 출전시킬 생각이다. 많이 아껴서 2월 플레이오프에 출전시키고 싶은데 그 전에 경기감각 유지 차원에서 쉬운 경기에 간간이 투입하는 것을 감독과 상의하고 있다”고 자매의 에이전트에게 설명했다.

자매는 이미 테살로니키에서 인기인이 됐다. 자매가 식당에 가면 서비스 요리가 나오고 길거리에서 이들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함께 사진을 찍고 PAOK를 외치고 간다. 이다영의 데뷔전 뒤 현지 매스컴의 인터뷰 요청도 쏟아지고 있다. 그리스에 도착한 뒤 점점 얼굴표정이 밝아진 이다영은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뒀던 말을 털어놓았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우리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과 계속된 비난, 나쁜 뉴스로 마음이 괴로웠다. 여기서는 내가 무엇을 하건 관심이 없다. 그저 선수로서 나를 알아보고 함께 사진을 찍고 응원을 해준다. 그런 자유가 새로 생겼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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