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가 같은 팀, 흥국생명 박혜진과 맹모삼천지교 [스토리 발리볼]

입력 2021-10-26 09: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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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박혜진

흥국생명에게 2021년은 배구단 창단 50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1971년 해체된 동일방직을 인수해 실업배구 태광산업 여자배구단이 탄생했다. 최천식 인하대 감독의 어머니(박춘강씨)가 라이트로 활약했던 동일방직은 여자 실업배구 1호 팀이었다.

1972년부터 실업무대에 등장한 태광산업에서 2005년 11월 프로배구단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로 이름이 바뀌는 동안 모녀가 같은 팀의 유니폼을 입는 흥미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주인공은 2021~2022시즌 흥국생명의 주전 세터 박혜진(19)과 태광산업의 레전드 센터 남순옥 씨(52)다. 어머니는 1987년 당시로는 거금인 8000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다. 데뷔하자마자 신인상을 받는 등 1980~1990년대 여자배구를 대표한 스타였다.

박혜진은 어머니의 좋은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박태환(26·한국전력)까지 남매를 프로배구선수로 키워낸 어머니의 열정은 대단했다. 어릴 때부터 밤 9시가 되기 전에 남매를 일찍 잠자리에 들게 했다. 키가 큰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성장에 중요한 시간에 잠을 자야 한다고 믿었다. 키에 도움이 된다는 식품은 물론이고 약을 구해다 먹였다.

사진제공 | 박혜진


어머니는 좋은 환경에서 배구를 하도록 팀 선택도 까다로웠다. 이 바람에 박혜진은 전학을 많이 다녔다. 광주 치평초등학교에서 시작해 안산 서초등학교 중앙여중 일신여중 경해여중 원곡고 선명여고를 다녔다. 그야말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였다. 현행 규정상 학생선수가 타 도시로 전학을 가면 일정기간 대회에 출전할 수 없지만 그런 손해도 감수했다. 선수경력에 비해 박혜진의 실전경험이 많지 않은 이유다.

2019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점찍어둔 안예림을 바로 앞 순번에서 도로공사에게 빼앗긴 박미희 감독은 다음해 박혜진을 1라운드 5순위로 뽑았다. 보통 신인 세터가 프로팀에 들어오면 몇 년간은 선배의 경기와 훈련모습부터 지켜봐야 하는데 박혜진은 운이 좋았다. 주전 이다영이 시즌 도중에 출전하지 못하자 코트를 밟았다. 세컨드 세터 김다솔의 보조였다. 10경기 27세트 출전, 공격, 서브, 블로킹 각각 1개, 3득점, 38개의 세트가 전부였다.

흥국생명 박혜진. 스포츠동아DB


팀의 주력선수 4명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흥국생명은 이번 시즌 강제로 리빌딩에 나섰다.
새로운 팀의 뼈대는 세터다. 구단은 박혜진의 성장가능성을 믿고 대뜸 주전 자리를 맡겼다. 아직은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3차례 선발출장에서 지난 시즌의 기록을 모두 뛰어넘었다. 어머니 덕분에 가지게 된 배구에 최적화 된 몸이 큰 도움을 줬다. 신장 177cm의 세터가 유난히 긴 팔로 점프 패스를 하면 상대팀 블로커는 턱을 들고 움직여야 한다. 블로킹이 따라가기 어렵다. 현대건설 강성형 감독은 그래서 박혜진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다.

물론 아직 경기를 읽는 시야나 속공 기술, 대담성 등은 시간과 경험이 해결해야 한다. 21일 IBK기업은행을 이긴 뒤 수훈선수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쏟았던 이유다. 눈물 없이 편하게 크는 세터는 없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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