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가 익숙한 이정후 어깨 위 짐 3개, 0.344 이상의 책임감 [최익래의 피에스타]

입력 2021-11-02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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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이정후. 스포츠동아DB

어린 시절부터 무게가 익숙했다. 한국야구 최고 타자였던 아버지의 무게를 견뎌야 했던 그는 프로팀 입단 후 중심타자로서 무게감까지 견디고 있다. 이제 막 5년차 선수지만 KBO리그의 발전, 그리고 흥행까지 신경 쓰고 있다. 이정후(23·키움 히어로즈)니까 가능하다.

2019년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당시 3년차였던 이정후에게 아버지 이종범(현 LG 트윈스 코치)에 대해 물었다. 그는 “요즘 야구를 보는 젊은 친구들은 아버지를 잘 모른다”며 웃었다. 데뷔 시즌인 2017년부터 펄펄 나며 신인상을 수상한 뒤 한국야구의 대표선수로 빠르게 성장했으니 편하게 웃으며 얘기할 수 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이종범의 존재는 야구선수 아들에게 하나의 벽이었다.

최근 KBO리그에도 ‘야구인 2세’는 흔해졌다. 아마추어까지 범위를 넓히면 ‘누구누구 아들’은 이제 흔한 표현이다. 이들 모두 ‘일반인 아들’보다 훨씬 더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 선수출신 아버지와 비교되는 것은 기본. 실력으로 자리를 꿰차도 ‘아버지 후광효과’라는 주위의 질투를 견뎌야 한다. 사소한 행동 하나가 자신은 물론 아버지의 얼굴에도 먹칠을 하기 때문에 몇 배로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하물며 아버지가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이정후는 어땠을까. 하지만 그는 그 같은 부담을 스스로의 힘으로 지우고 있다. 정규시즌 5년간 656경기에서 타율 0.341을 기록하며 5년 연속 3할을 달성했다. 올해까지 2932타석이니 내년 시즌 68타석만 채워도 3000타석 이상 소화한 KBO리그 전체 선수들을 기준으로 통산 타율 1위에 오르게 된다. 그는 올 시즌 타격왕에 올라 세계 유일의 ‘부자 타격왕’이 된 뒤 “아버지가 내 덕에 또 매스컴을 타게 됐다”며 웃었다.

키움 이정후. 스포츠동아DB


가을에도 아버지의 존재감 이상이다. 이종범은 포스트시즌(PS) 통산 42경기에서 타율 0.255, 4홈런, 17타점에 그쳤다. 정규시즌의 어마어마한 흐름을 잇지 못했다. 반면 이정후는 지난해까지 PS 15경기에서 타율 0.344, 10타점, 13득점을 기록했다.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는 WC 1차전, 3타수 무안타로 침묵하던 이정후는 가장 극적인 순간 스타로 떠올랐다. 집중견제가 쏟아지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 모두 마찬가지. 이정후는 그 중압감마저 넘는 중이다.

PS 성적보다 더 중요한 가치. 이정후는 한국야구의 책임감까지 스스로 짊어졌다. “세대교체가 제대로 이뤄져야 리그가 더욱 강해진다. 언제까지 선배님들이 하실 수는 없다. 결국 선배들이 하셨던 것을 우리가 이어받아야 한다. 누가 되면 안 된다. 젊은 선수들이 투타에 걸쳐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정후니까 가능한 이야기다.

‘한국야구 수준이 떨어졌다’. 돌이켜보면 원년부터 나왔던 이야기다. 2021년에도 이러한 비판은 여전하다. 2021년, 이정후는 한국야구의 수준을 논하는 이들에게 확실한 반례였다. 가을까지 짊어진 세 개의 무게감. 이정후는 그 왕관을 즐기고 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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