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를 연주한 듯한 글들…해금연주자 천지윤의 ‘단정한 자유’ [신간]

입력 2022-02-10 17:22: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단정한 자유
(천지윤 저 | 토일렛프레스)


꼭 해금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글에서 소리가 난다. 마치 문자를 ‘연주’한 것 같은 글이다.

해금연주자가 썼지만 음악 에세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음악 연극 미술 철학의 경계를 넘어 자신을 실험해 보았던 젊은 날, 곡을 앞에 두고 구성과 해석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음악인의 초상, 연주차 방문한 이국의 도시들에 대한 정서, 순례처럼 떠난 여행, 아침의 서재, 꾸준한 운동, 엄마와의 대화에 대한 작가의 문장들은 참으로 정연하고 단정하다. 천지윤이 쓰고, 연주한 글이다.

천지윤을 해금연주자로만 묶어두는 것은 부당할 듯하다. 그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든다. 명사를 초청해 자신이 꾸린 서재에서 인터뷰를 하는 콘텐츠도 있다. 대학에서 제자들도 가르친다.

그래서일까. 책 속의 글들은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까지 짚지만 어렵지 않게 읽힌다. 도서관 안에, 논문 속에 갇혀 있는 글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정하지만 자유롭다. 출판사의 서평을 빌리자면 천지윤의 젊음, 실험과 변주, 시선과 감각에 대한 유려하고 고유한 글들이다.

책은 크게 세 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 파트는 ‘만나다. 해금 그리고 예술’, 두 번째 파트는 ‘순례길’, 세 번째 파트는 ‘해금과 무엇’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각 파트의 소제목들만 내리읽어 보아도 이 책의 1/3쯤은 읽은 듯한 기분이 든다. 송현민 월간 객석 편집장은 추천의 글에서 “이 책은 그녀만의 술법이 담긴 ‘천지윤 사용설명서’처럼 다가온다”라고 썼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천지윤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 1/3쯤은 ‘상상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천지윤은 “서재의 아침 풍경처럼 단순하고, 맑고, 청명한 시간들을 앞으로도 누리고 싶다. 이 책에 그런 마음들이 서려 있기를. 그 마음이 독자 분들께 전달되기를 바라본다”라고 했다.

“나는 이 음반이 아이 친구 엄마에게 ‘집안일 마치고 커피 타임에 편안하게 들어보세요’라고 선물할 수 있는 것이기를 바랬다 … 그러한 일상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흔히 마주치는 많은 엄마나 아빠가 된 사람들의 것이기도 했다. 고되고 기쁜, 그들의 일상에 스밀 수 있는 농도이기를 바랬다.”

이 문장은 이 책의 세 번째 파트 중 ‘여름은 오래남아’ 편에 나온다. 이 소제목은 2017년 7월 출시됐던 천지윤의 음반 제목과 동일하다. 아마도 내가 그의 연주를 처음 들었던 음반이었을 것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