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대표팀 최고참 곽윤기(33·고양시청)는 2022베이징동계올림픽 기간 내내 후배 선수들의 ‘스피커’ 역할을 도맡고 있다. 중국의 도를 넘은 편파판정을 비롯해 선수단 분위기, 레이스 전략 등을 설명하는 일은 모두 그의 몫이다. 취재진에게 “나보다 경기에 출전하지 않은 선수들을 많이 챙겨달라”고 신신당부하면서도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본인이 전면에 나선다.

대표팀 내에서 엄청난 지지를 받는다. 미담도 쏟아진다. “(곽윤기 선배가) 진천선수촌에 있을 때 훈련이 끝나고 코치님들이 떠난 뒤에도 연습을 도와줬다. 정말 열정적으로 도와줘서 후배들이 고마움을 느낀다.” 여자대표팀 맏언니 김아랑(27·고양시청)의 진심이다. 여러 국제대회를 경험했던 국가대표 출신 현역 선수도 “윤기 형이 베테랑으로서 구심점을 잘 잡아준다”고 말했다.

대회 기간 내내 리더의 자격을 몸소 입증하고 있는 곽윤기도 황대헌(23·강원도청), 이준서(22·한국체대), 김동욱(29·스포츠토토)과 레이스를 펼친 11일 남자 5000m 계주 준결선을 앞두고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의 입을 통해 거의 매일같이 쇼트트랙대표팀의 소식이 전해졌지만, 정작 스스로 레이스를 펼치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부담이 컸다. 기대했던 경기력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지 싶어 걱정도 많이 했다. 사실 엄청나게 긴장했다.” 5000m 계주 결선 진출을 확정한 직후 곽윤기의 한마디에는 그간의 마음고생이 녹아있었다.

그러나 곽윤기는 본인의 대회 첫 레이스에서 실력으로 모든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꿨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4차 대회 이 종목에서 막판 스퍼트로 금메달을 확정한 뒤 포효하던 그 장면이 이번 올림픽에서도 나왔다. 결승선까지 반 바퀴를 남겨두고 인코스로 네덜란드와 러시아를 추월해 1위로 골인했다. 그는 가슴을 두 번 두드리며 포효했다. “‘내가 왔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국민들은 환호했고, 현장에서도 감탄사가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곽윤기는 “앞선 주자 황대헌이 나를 잘 밀어준 게 8할 이상”이라며 후배를 치켜세웠다.

계주에서 곽윤기의 중요성은 ‘2번주자’라는 타이틀로 모두 설명된다. 쇼트트랙 계주의 2번째 주자는 마지막 2바퀴를 교체 없이 돌아야 한다. 마지막에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선수라는 의미다. 대표팀에서 그의 경험과 실력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 관중들의 일방적 응원을 한국 팬들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탔다”는 말에선 남다른 멘탈(정신력)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대회 5000m 계주는 남자쇼트트랙대표팀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종목이다. 곽윤기는 지난해 12월 스포츠동아와 인터뷰에서 “이번 올림픽은 정말로 내 쇼트트랙 인생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6일 베이징캐피털실내빙상장에서 펼쳐질 이 종목 결선은 그만큼 소중한 무대다.
한국쇼트트랙 남자 계주가 2010년 밴쿠버대회 은메달 이후 2014년 소치대회, 2018년 평창대회에선 모두 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한 만큼 자존심을 세우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밴쿠버대회 이 종목 은메달에 일조했던 곽윤기의 힘이 필요하다. 그는 “결선까지 며칠 남지 않았다. 준비 잘해서 금메달을 안겨드리면 정말 좋겠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힘든 분들께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베이징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