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의 너클볼

입력 2022-03-25 0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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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의 한방이 난적 이란을 무너뜨렸다. 손흥민은 3월 24일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의 ‘2022 카타르 월드컵축구 아시아 최종예선’ 9차전 이란과의 홈 경기에서 전반 추가시간 대포알 같은 선제골을 터뜨렸다. 이를 신호로 한국은 후반 김영권의 골을 보태 이란에 2-0으로 완승했다.

이날 손흥민이 때린 슛은 너클볼이었다. 현재 세계 축구에서 너클볼의 대가는 단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의 무회전 너클 슛(110㎞)은 어디로 갈지 예측하기 힘들다. 골대 부근에서 좌우상하 수시로 유령처럼 움직인다. 골키퍼가 도무지 방향을 잡지 못해 애를 먹는다. 호날두는 축구공 배꼽 아래를 발가락으로 강하게 밀어 찬다. 이날 손흥민의 너클 슛도 직선으로 강하게 날아가다가 키퍼 앞에서 갑자기 뚝 떨어졌다. 그 바람에 이란의 골키퍼는 볼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손흥민의 우상은 호날두다. 플레이 스타일도 호날두와 닮았다. 손흥민은 “슈팅이 너무 잘 맞았다. 골키퍼가 막을 만한 골이었는데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겸손한 말이다. 하지만 너클슛은 월드클래스 골키퍼가 아니라면 결코 쉽게 잡을만한 볼이 아니다.

너클볼은 흔히 야구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더 빠르고, 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시속 160㎞에 가까운 투수들이 즐비하다. 그런 공을 담장 너머로 펑펑 쳐내는 금강역사들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모두 근육질에 범강장달이다. 그런 메이저리그에서 너클볼은 느릿느릿 한가롭다. 시속 60~70마일(약 97~110㎞)에 불과하다. 맹물처럼 밋밋하다. 너무 느려 터져서 헛웃음마저 나온다. 헌데 어럽쇼! 천하의 고수들이 그 공에 속수무책 나가떨어진다. 눈 뻔히 뜬 채 귀신에 홀린 것처럼 당한다.

2012시즌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의 투수 R.A.디키는 그 공 하나로 삼진을 230개나 잡아냈다. 당당히 내셔널리그 1위. 승수(20승), 평균자책점(2.73)도 각각 2위. 디키는 그해 너클볼 투수 사상 처음으로 사이영상을 품에 안았다. 미국 야구기자협회 32명의 선거인단 투표에서 27명으로부터 1위로 뽑히는 등 총 209점을 얻어 LA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96점)를 가볍게 제쳤다.

디키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스티븐 라이트와 함께 메이저리그에 딱 둘뿐인 현역 너클볼 투수였다. 디키는 2012시즌 직구인 패스트볼(14%)과 너클볼(86%) 딱 두 가지만 섞어서 던졌다. 타자들은 알고도 헛방치기 일쑤였다. 디키의 평균구속은 다른 너크볼 투수보다 빠른 75¤76마일이다. 여기에 가끔 평균구속 83¤84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을 섞는다. 그렇게 그는 공기를 지배했다.


그렇다. 야구에서 너클볼은 나비처럼 나풀나풀 날아간다. 한여름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처럼 팔랑팔랑 춤추며 간다. 흐느적흐느적 ‘강호의 취권’이다. 재즈다. 과연 나비가 족집게로 잡힐까?

축구의 너클슛은 호날두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시속 100㎞가 넘을 정도로 빠르다. 그렇게 강하고 빠르게 날아가다가 홀연히 흔적을 지운다. 한순간 골키퍼는 멘붕에 빠진다.

원래 Knuckle(너클)은 ‘손가락 관절’을 뜻한다. 손가락을 구부려 공을 잡는다. 검지 중지 약지의 손톱 끝으로 튕기듯 밀어 던진다. 손목으로 채지 않는다. 축구에서도 축구공 배꼽 아래를 발가락으로 강하게 밀어 찬다. 그래서 무회전이다. 타자에게 맞아도 반발력이 없어 멀리 나가지 않는다. 무회전공은 타자 앞에서 제멋대로 천방지축 변한다. 공기 흐름에 따라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던지는 투수도, 받는 포수도 알 수 없다. 산전수전 겪은 캐처도 툭하면 놓친다. 그래서 너클볼 투수가 등판할 때 포수는 대형 소프트볼용 미트를 쓴다. 아예 전담 포수가 따로 있다. 축구 골키퍼도 마찬가지다.

야구에서 너클볼은 ‘늙은 투수의 공’이다. 속도와 힘에 대한 욕망을 지워야 가능하다. 강한 어깨도 필요 없다. 너클볼 투수 처음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호이트 윌헴은 마흔아홉까지 던졌다. 너클볼로만 통산 318승(평균자책점 3.35)을 올린 필 니크로도 마흔여덟에 은퇴했다.

축구의 너클 슛은 발의 힘이 엄청나게 강해야 때릴 수 있다. 오직 발가락의 힘만으로 공의 중심 아래를 밀어 차야 한다. 그만큼 차돌 허벅지와 강철 허리가 받쳐 줘야 한다. 나이 먹은 골잡이는 버겁기 마련이다. 올 호날두의 나이는 서른일곱. 골잡이로서 환갑 지난 지 한참이다. 그런데도 너클슛을 수시로 잘만 때린다. 그가 메시와 함께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이유다. 손흥민은 이제 겨우 서른. 하기에 따라 앞으로도 5년 정도는 너클 슛을 펑펑 날릴 수 있다. 이란팀의 골그물을 수시로 출렁일 수 있다.

대가리를 꼿꼿이 치켜든 독 오른 뱀 앞에
개구리 홀로 얼어붙은 듯이 가부좌를 틀고 있다
비늘 돋친 이 독한 세상마저 잊어버리려는 듯
투명한 눈을 반쯤 내려감은 채
마른번개 널름거리는 캄캄한 아가리 속 꿈틀거리는
욕망이여,온몸 징그러운 무늬의 삶이여
예서 길이 끝나는 구나 벼랑 끝에 서고 보니
길 없는 깊은 세상이 더 가까워 보이는 구나


-<송찬호 ‘門 앞에서’ 부분>

김화성 전 동아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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