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 FTX가 유동성 위기로 흔들리면서 암호화폐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10일 비트코인 가격은 2300만 원대가 무너졌다가 이후 소폭 반등했다. 2300만 원대에 비트코인 가격이 표기된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지원센터 전광판. 사진 | 뉴시스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 FTX가 유동성 위기로 흔들리면서 암호화폐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10일 비트코인 가격은 2300만 원대가 무너졌다가 이후 소폭 반등했다. 2300만 원대에 비트코인 가격이 표기된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지원센터 전광판. 사진 | 뉴시스


‘FTX 거래소 사태’에 암호화폐 시장 폭락 위기

알라메다·FTX의 재정적 우려 제기
FTT 급락…투자자 뱅크런 본격화
바이낸스, FTX 인수 밝혔지만 철회
2달러 대까지 하락…시장 불신 커져
암호화폐 시장의 심상치 않은 폭락세가 투자자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이번에는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 FTX가 유동성 위기가 원인이다. 10일 오전 9시 기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은 24시간 전보다 약 14% 내린 2290만 원대에 거래됐고, 이후 소폭 반등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2200만 원대로 떨어진 것은 2020년 12월 이후 약 2년 만이다. 알트코인의 대표주자인 이더리움 역시 같은 시간 업비트에서 약 16% 급락한 160만 원대에 가격을 형성했다.


●FTX, 유동성 위기가 원인

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최근 코인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US가 FTX 계열사인 알라메다의 재무제표를 입수해 알라메다의 자산 대부분이 FTX가 발행한 코인 ‘FTX 토큰(이하 FTT)’으로 채워져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FTX와 알라메다는 모두 미국 암호화폐 업계의 거물 샘 뱅크먼 프리드가 만든 회사다.

보도는 FTX와 알라메다가 재정적으로 취약하다는 우려로 이어졌고, 이에 뱅크먼 프리드는 “근거 없는 루머”라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자오창펑 바이낸스 CEO가 “최근 밝혀진 사실로 인해 장부에 남아있는 FTT를 청산하기로 했다. 이는 루나 사태에서 배운 위험 관리”라며 ‘보유 FTT 청산’ 입장을 밝힌 것이 치명타가 됐다.

이후 FTT의 가격이 급락했고, FTX에서 투자자들이 예금 지급 불능 상태를 우려해 자금을 인출하는 뱅크런 현상이 본격화 됐다. 결국 FTX는 백기를 들고 바이낸스에 도움을 요청했고, 바이낸스는 9일(한국시간) 시장 패닉 현상을 막기 위해 FTX를 인수하겠다고 밝혔지만 하루 만인 10일 인수 의사를 번복하면서 시장의 공포심만 키웠다. 바이낸스는 “FTX의 고객들이 유동성을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었지만, 이 문제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거나 도울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섰다”며 “FTX의 인수를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상황이 이러하자 9일 24시간 전 대비 약 70% 가량 떨어져 5달러대에 머물었던 FTT는 이날 24시간 전보다 60% 가량 급락한 2달러대까지 떨어졌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원에서도 FTT 가격은 7일 3만1000원에서, 10일 오후 4시 기준 3990원까지 떨어졌다. 이에 FTT를 거래지원 중인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은 일제히 거래 주의문을 공지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중국계 거래소(바이낸스)와 미국계 거래소(FTX)의 대결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바이낸스의 창업자 자오창펑은 중국 출신 캐나다 이민자이고,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 프리드는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또 FTX를 위기에 몰아넣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바이낸스인 것도 신빙성을 더해준다. 향후 미국 정부가 나서 중국이 암호화폐 시장을 독점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고민 깊어지는 투자자들

암호화폐 가격 하락에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4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면서 미 증시가 급락했지만, 비트코인은 2800만 원대 횡보세를 이어가면서 암호화폐 시장의 낙관적 전망이 일고 있던 터라 충격은 더욱 크다.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 한 투자자는 “최근 비트코인의 횡보세를 매수 기회로 인식해 과감히 투자했는데, 또 다른 악재를 만났다”며 “루나 사태와 이번에 FTX를 거치면서 암호화폐 시장 자체의 불신이 커졌다”고 아쉬워했다. 문제는 FTT에 직접 투자한 이들로 “FTT가 신뢰를 잃은 만큼 루나처럼 소멸할 것” 등의 글을 올리며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반면 “암호화폐는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여전히 긍정의 목소리를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한 투자자는 “암호화폐 시장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고, 경쟁력 있는 암호화폐 및 관련 업체만 살아남는 옥석가리기가 가속화될 것”이라며 “일단 옥석가리기에 성공하면 다시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정욱 기자 jj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