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광고비는 없다”는 한마디에 드러난 한울원자력본부의 민낯

나영조 대구경북취재본부장

최근 한수원 한울원자력본부에 출입처 등록 문의를 하던 중, 황당한 말을 들었다. 홍보팀 관계자는 “등록하려는 언론사가 너무 많다. 보도자료 내달라고 말한 적이 없다. 대구경북권 기자분들이 전화와서 광고달라하는데 그런 말은 안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광고를 요청한 적도 없었건만, 마치 사전에 돈을 요구할 것이라 지레짐작하며 선을 긋는 태도였다. 기자로서 공공기관의 활동을 국민에게 알리려는 정당한 문의조차 ‘홍보비’ 잣대로 재단하는 모습은, 언론을 홍보 창구쯤으로 여기는 왜곡된 인식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건 빙산의 일각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부 조직문화와 안전불감증이다. 지난해 8월, 한울원자력본부 소속 20대 직원 A씨가 사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선 유서가 나왔고,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직장 내 괴롭힘과 공황장애에 시달렸다는 동료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사망 직후 일부 간부들이 분향소 철거를 지시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진실 여부를 떠나, 이런 의혹이 제기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조직의 민낯은 드러났다.

한울원자력본부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원자력 시설을 관리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내부 구성원의 정신 건강이 방치되고, 문제 제기도 자유롭지 않은 분위기라면 심각한 구조적 위험이다. 기술적 문제 역시 반복되고 있다. 과거 한울 5호기에선 제어계통 부품 결함으로 냉각재 펌프가 멈추는 사고가 있었다. 제작·시공·부품의 근본적 하자였지만, 이후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이 이뤄졌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물론 한울원자력본부는 최근 지진 상황을 가정한 방사선 비상 대응 훈련을 진행하며 대응력을 키우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훈련이 정교해도, 조직의 기본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실전에서 그 효과는 장담할 수 없다. ‘갑질’, ‘책임 전가’, ‘광고비 운운’하는 태도 속엔 공공기관으로서의 책무와 시민을 향한 존중이 빠져 있다. 한울원자력본부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안전은 시스템만이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조직에서 진정한 안전은 기대할 수 없다. 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울진 ㅣ나영조 스포츠동아 기자 locald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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