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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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움의 한 줄
감정을 지웠다고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그 감정이 나를 찾아왔다.

● “넌 너 살자고 은호를 잊었잖아”…솜이는 왜 생겨났나
● 감정이 인격이 될 수 있을까, 심리학이 말하는 ‘사념체’
● 솜이의 소멸은 트라우마와 용서의 심리학
한지민은 사라졌다. 이해숙이 끝내 자신을 용서했기 때문이다.
JTBC ‘천국보다 아름다운’ 11회에서 드러난 ‘솜이’(한지민)의 정체는 충격적이었다. 그는 실제 존재가 아니었다. 아들 은호를 잃은 뒤, 주인공 이해숙(김혜자)이 감당하지 못한 죄책감과 슬픔이 만들어낸 감정의 형상, 다시 말해 ‘사념체’였다.

그 존재는 살아남기 위해 도려낸 감정이 인격화된 결과였다. 이 설정은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 정신의학적 사실과 맞닿아 있다.

심리학에서는 극심한 트라우마 이후 특정 기억이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지우는 현상을 ‘해리성 기억상실’이라 부른다. 이는 뇌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정보를 의식에서 분리해 버리는 반응으로, 실제 임상에서 종종 관찰된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에서는 이 분리가 더욱 심화되어 독립적인 인격처럼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주로 어린 시절 심각한 외상과 연결되어 있으며, 각 인격은 고유의 감정, 기억, 말투를 갖는다 .

● 감정이 살아 움직일 때…현실에서도 가능한가
드라마에서 솜이는 말한다. “기억을 잃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네 기억이 아니야.” 이 말은 본질을 꿰뚫는다. 실제로 트라우마 생존자는 ‘기억’보다는 ‘감정’을 먼저 억제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은 의식 깊숙이 봉인되며, 이후 특정 상황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다. 솜이는 그 억압된 감정이 의인화된 형태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감정의 인격화’와도 관련된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억압된 감정이나 기억을 ‘그림자(Shadow)’라고 불렀다. 외면한 감정은 반드시 다른 방식으로, 다른 얼굴로 돌아온다. 솜이는 그 그림자였다. 이해숙이 외면한 죄책감이자 슬픔이며, 동시에 자기 자신을 향한 고발이었다.

솜이는 말한다. “넌 너 살자고 은호를 잊었잖아.” 이것은 단지 대사가 아니라, 이해숙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자책감 그 자체였다.

● 소멸은 죽음이 아니라, 정화였다
드라마는 말한다. “솜이는 해숙의 이해와 사랑을 통해 정화되는 형태로 소멸되어야 한다.”
이것은 상징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실제적인 심리치료의 원리를 반영한다. 트라우마 치료에서 가장 어려운 과정은 바로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다. 상실과 고통을 억누른 채 살아온 사람들은 그 감정을 직면하는 순간, 다시 무너질까 두려워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 회복의 시작이다.

드라마 속 ‘잿빛 지옥’은 자기혐오와 자책감이 만든 내면의 감옥이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내면화된 죄책감’의 시각적 은유다. 이 감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감정을 직면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해숙은 결국 자신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를 받아들였고, 그로 인해 솜이는 사라졌다. 그리고 아들 은호도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환생길에 올랐다.

그 순간, 해숙은 비로소 자신을 용서한 것이다. 감정은 사라졌고, 고통은 정화됐다. 트라우마는 치유의 과정을 통해만 ‘소멸’할 수 있다는 진리를 드라마는 말없이 보여준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그 과정을 감각적이고 절제된 방식으로 그려냈다.
슬픔이 너무 깊으면 감정은 형체를 갖고 살아 움직인다. 그 감정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다시 나로 돌아올 수 있다.

솜이는 사라졌고, 해숙은 울었다. 그리고 천국은, 그렇게 조용히 문을 닫기 시작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