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이의 축복 코리아둘레길
(이화규 저 | 나무발전소)
걷기의 시대다. 하지만 걷는다고 다 같은 걸음은 아니다. 누군가는 매일 아침 출근길을 걷고, 누군가는 걷는다는 이유만으로 세계를 바꾼다. 이화규는 후자다. 그가 쓴 신간 ‘걷는 이의 축복 코리아둘레길’(나무발전소)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이 책은 4520km에 달하는 코리아둘레길 전 구간을 ‘그랜드슬램’으로 완보한 이가 자신의 발과 감각, 그리고 내면의 움직임을 기록한 생태적·인문적 보고서다.

이화규는 국내에서 단 41명뿐인 ‘코리아둘레길 완보자’ 중 하나다. 그리고 그 완보자 중 이 책을 처음 쓴 인물이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이동이 아니다. 그는 ‘왼발 다음에 오른발을 놓는 행위만으로도 감각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달리기, 자동차, 속도. 모두가 앞서 나가려는 시대에서 이화규는 느림을 택했다. 그 느림은 챌린지가 아닌 치유였고, 경쟁이 아닌 여정이었다.

이화규 제공

이화규 제공


● 코리아둘레길, 한국판 산티아고가 되기까지
코리아둘레길은 부산 오륙도에서 시작해 전남 해남 땅끝탑, 인천 강화 평화전망대,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를 잇는 ‘입구(口)’ 모양의 초장거리 트레킹 코스다. 2016년 동해안 해파랑길 개통을 시작으로 남해의 남파랑길, 서해의 서해랑길, 그리고 2024년 완성된 DMZ평화의길까지, 총 4520km의 세계 최장 트레킹 코스가 대한민국 땅 위에 탄생했다. 그 자체로 산티아고, 존 뮤어 트레일, 안나푸르나 트레킹과 견줄 만한 위용을 갖췄다.

이화규는 이 길을 단순히 ‘길’로 보지 않았다. 그는 걷는 내내 자연의 시인이 되어 풀꽃과 나무, 사람과 카페, 맛집까지 ‘길 위의 오아시스’처럼 마주한 것들을 기록했다. 경기둘레길과 DMZ평화의길을 중심으로 쓴 이 책은 걷는 자의 철학, 생태적 감각, 그리고 우리가 잊고 있던 느림의 미학을 되살려낸다.

● 산책이 복음서가 되는 책
이화규는 여행자이자 순례자다. 그는 이미 75일 동안 산티아고 카미노의 3개 코스를 완주했고, 시안부터 로마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직접 걸어본 이력이 있다. 하지만 이번 책은 ‘산티아고에 가기 위해 걷는 길’이 아니라, ‘산티아고를 다녀온 사람이 우리 땅을 걸으며 쓴 기록’이다. 주철환 노래채집가의 말처럼, 이 책은 걷는 자의 복음서다.

책에는 QR코드를 통해 들을 수 있는 오디오 콘텐츠, 길 위에 어울리는 시구, 식생(식물 분류) 정보 등 ‘다층적 읽기’의 요소가 풍부하다. 문학, 생태, 인문, 여행, 명상. 모든 것이 걷기라는 키워드로 하나로 엮인다.

둘레길은 단지 ‘가는 길’이 아니다. 누군가 그 길을 걸을 때, 누군가는 그 길을 만든다. 그리고 어떤 이는 그 길을 기록해 남긴다. 이화규의 신간은 바로 그 기록이다. 걷고 싶은 이들에게 길의 서사와 감동, 그리고 아름다움을 건넨다. 느리지만 가장 확실한 여행이자, 우리의 땅을 다시 사랑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