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상화 “이제 경쟁 없이 쉬고 싶다, 레전드로 기억되길”(종합)

입력 2019-05-16 1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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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속 여제’ 이상화가 16일 서울 중구 더프라자호텔에서 가진 은퇴식 및 기자간담회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동아닷컴]

‘빙상 여제’ 이상화가 눈물의 은퇴 소감을 전했다.

이상화는 16일(목) 오후 서울 더 플라자호텔에서 은퇴식 및 기자 간담회를 열고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이날 이상화는 “스케이트 선수로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다. 15살 때 처음 국가대표 선수가 된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때 팀 막내로 참가했다. 빙판 위에서 넘어지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한 게 엊그제 같은데 17년이 됐다. 선수나 여자로서 많은 나이가 됐다. 17년 전 어린 나이였지만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다.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 올림픽 금메달, 세계 기록 보유를 하자고 마음을 먹었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분에 넘치는 국민들의 응원 덕분에 목표를 모두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목표를 이룬 후에도 국민께 받은 사랑에 힘입어 다음 도전을 이어 갔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 다르게 무릎이 문제였다.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 이런 몸 상태로는 최고의 기량을 보여드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수술을 통해 해결하려 했지만 선수 생활을 할 수 없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약물치료를 하며 나 자신과 싸움을 했지만 몸은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경기를 위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해서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워서 은퇴를 결정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민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으로 기억할 수 있는 위치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싶다. 항상 빙상 여제라 불리던 최고의 모습만을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스케이트 선수로서의 생활은 마감하지만 국민들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게 개인적으로 노력하겠다. 이 순간이 지나고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되지만 다른 일도 열심히 해보려 한다. 그동안 국민 여러분과 함께 라서 행복했다. 그동안 주신 많은 사랑과 응원을 평생 잊지 않고 살겠다. 그동안 감사했다”며 눈물을 보였다.

은퇴를 공식 선언한 이상화는 “사실 3월 말쯤에 은퇴식이 잡혀 있었다. 막상 은퇴를 하고 은퇴식을 치르려고 하니 너무 아쉽고 미련이 남아서 좀 더 해보자는 생각으로 재활을 했다. 하지만 나의 몸 상태는 나만 알고 있다. 예전의 몸 상태까지 올리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금 은퇴를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치열한 선수 생활을 마친 이상화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30살이 될 때까지 앞만 보고 달렸다. 이제는 누구와도 경쟁하고 싶지 않고 여유롭게 살고 싶다”며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선수 생활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세계 신기록을 세운 소치 동계올림픽을 꼽았다. 이상화는 “소치 올림픽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세계 신기록을 세웠고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 올림픽 금메달을 못 딸 수 있다는 징크스가 있지만 이겨내고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개인적으로 깔끔한 레이스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지금까지 딴 올림픽 메달의 의미도 하나씩 짚었다. 이상화는 “밴쿠버 올림픽 메달은 첫 메달이었다. 그때 3위 안에만 들자는 목표로 나갔는데 깜짝 금메달을 땄다. 소치 올림픽은 세계 신기록을 세웠고, 좋은 성적으로 2연패를 한 내 자신에게 엄청난 칭찬을 해주고 싶다. 평창 때도 3연패라는 타이틀의 무게를 이겨내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부상이 4년 전보다 커지고 있었다. 우리나라라서 긴장된 것도 있었다. 평창 은메달 색도 굉장히 예쁘더라”고 전했다.

라이벌 고다이라 나오에 대해서도 “지난주 금요일에 은퇴한다고 알린 뒤 나오가 깜짝 놀라면서 잘못된 뉴스가 아니냐고 메시지로 물어봤다. 상황을 보자고 하며 일단락 시켰지만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서 알리게 됐다. 나오와는 중학교 때부터 친해졌다. 우정이 깊다. 아직 나오는 현역이다.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너무 욕심내지 말고 하던대로 했으면 좋겠다. 나가노에 놀러가겠다고 얘기했다. 조만간 찾아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이상화는 “은퇴를 올해 결정해서 아직 미래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차근차근 세우겠다. 내가 은퇴함으로써 스피드스케이팅이 비인기 종목으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도자 의향은 있지만 더 생각을 정리해봐야 할 것 같다”며 미래에 대한 계획을 전했다.

이상화는 은퇴 후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레전드. 살아있는 레전드로 남고 싶다고 평창 올림픽 이후 얘기했다. 아직 변하지 않았다. 스피드스케이팅에 이상화라는 선수가 있었고 그의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고 기억되고 싶다. 항상 노력했고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선수였다고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또 “베이징 올림픽을 갔다면 부담감 속에 떨 것 같다. 내가 항상 1등만 하던 이미지였던 것 같다. 2등을 하면 죄를 짓는 것 같아서 평창 때도 힘들었다. 준비 과정이 지금보다는 더 어려울 것 같다. 평창을 이렇게 준비했는데 결과가 은메달이라서 더 힘들 것 같았다. 해설 위원이나 코치로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아직 자신이 보유한 세계 신기록에 대해 이상화는 “영원히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기록은 언제나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선수들의 기량이 많이 올라왔다. 36초대 진입은 쉬워졌다.그래도 1년 정도는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선수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부분으로는 “마인드 컨트롤이 힘들었다. 어떻게 주변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겠나. 많이 힘들었고 부담이 많았다. 꼭 1등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계속 식단 조절을 해야 했다. 남들이 1개 할 때 2개를 해야 했다. 그런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포스트 이상화로 지목하고 싶은 선수로는 “김민선 선수를 추천하고 싶다. 나이는 어리지만 정신력이 좋은 선수다. 12살 어린 선수가 나한테 떨지 말라고 하는 게 대견스러웠다. 신체 조건이 좋다. 500m뿐 아니라 1000m까지 연습해서 최강자로 거듭나는 걸 보고 싶다”며 응원했다.

또 이상화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로 “하루에 운동 4번을 하다 보니 힘들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계속해서 짜인 스케줄대로 운동을 했다. 그런 패턴을 내려놓고 싶다. 오후 3시가 되면 운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는데 이제는 평화롭게 산책하며 지내고 싶다. 앞으로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지 고민할 계획이다. 잠을 편하게 자고 싶다. 알람을 끄고 편하게 잘 생각이다. 선수 이상화는 사라졌으니 일반인 이상화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는 “평창 동계올림픽 전이 가장 힘들었다. 링크에 나가면 선수들이 받는 느낌이 있다. 독일에서 최고 기록을 세우고 평창으로 넘어갔는데 느낌이 달랐다. 메달을 못 따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 사실 4년 동안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다. 평창 올림픽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끝으로 이상화는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떠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무릎 부상으로 바로 운동을 할 수도 없었다. 이제 정말 수술을 해야 할 시점이 왔다. 몸 상태가 나아지면 다른 스포츠를 할 시점이 오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한편, 이상화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금메달,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금메달로 대회 2연패를 차지한 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여자 500m 은메달을 추가했다. 현재도 해당 종목 세계신기록 보유자로 남아있다.

소공동=동아닷컴 송치훈 기자 sch5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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