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용·왕영은의행복한아침편지]반평생을꿈꿔온소원

입력 2008-04-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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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애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근처에 사시는 친정엄마를 찾아갔습니다. 부업으로 하는 일거리가 많이 들어와 바쁘다고 하셔서 도와드리러 갔습니다. 엄마와 함께 거실에서 뉴스를 틀어놓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엄마의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뉴스가 들렸습니다. 사실 저의 친정엄마의 아버지, 바로 제 외할아버지가 6.25 한국전쟁 전사자신데, 뉴스 내용은 바로 ‘DNA로 6.25 전사자 가족 찾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친정엄마는 항상 외할아버지 얘기를 자주 하셨습니다. 일제시대 때 끌려가셔서 태평양 전쟁을 치렀는데 다행히도 살아 돌아오셨지만, 한국전쟁 때 다시 나가신 겁니다. 그 뒤로 한 번도 못 만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항상 외할아버지를 그리워하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외할아버지가 태평양 전쟁에서 돌아오셨을 때 엄마의 나이가 4살, 작은 외삼촌이 2살 때였습니다. 그 때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남자들은 모두 전쟁터에 보낸다는 소문이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는 산 속으로 들어가 숨어 지내셨는데, 잠시 아이들과 할머니를 보러 마을로 내려 오셨다가 징병이 돼서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시던 저희 엄마는 그저 “저 사람들은 참 좋겠다. 남편도 찾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언제 찾을까”라는 말만 하시고는 한숨을 쉬셨습니다. 저는 엄마가 너무도 걱정을 하시기에 유해발굴단에 전화를 걸어서 물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낙동강 전투에 가셨다는 말만 들었는데,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요?” 그러자 유해발굴단에서는 “낙동강 부근에서도 유골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찾고는 있습니다만 유골들이 워낙 오래 돼 DNA 검사를 하고 판단을 하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좀 더 기다려 보십시오. 찾는 즉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렇게 뉴스를 보고난 뒤 엄마는 영 일이 손에 안 잡히시는지 멍하게 앉아서는 그저 “저 사람들은 좋겠다. 좋겠다” 이 말만 되풀이 하셨습니다. 사실 저희 엄마가 이렇게 조바심을 내시는 이유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꼭 외할아버지의 유골이라도 찾았으면 하고 바랐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여전히 외할머니의 소원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가족들은 얼마 전 국군병원에 가서 다같이 피도 뽑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면 DNA가 일치하는 유골을 빨리 찾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전화만 기다리시고 사시는 우리 엄마에게 하루빨리 외할아버지를 찾았다는 전화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인천 부평 | 이서경 행복한 아침, 정한용 왕영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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