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들과 함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 있었습니다. 시대가 70년대쯤인 것 같은데, 화면 속에 예전에 저희가 ‘곤로’라고 불렀던 석유화로가 나왔습니다.
“아이고∼ 참 오랜만에 보네. 옛날에 저거 쓰느라 냄비도 엄청 태웠는데, 옛날엔 징글징글 참 고생스럽게도 살았지” 이러면서 중얼거렸습니다. 그랬더니 초등학생인 막내 아들이 “엄마 저게 뭐예요? 가스레인지 같은 거예요?”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어머, 너 저거 모르니? 저거 우리 집에 있었잖아∼” 하다가, ‘아차차! 막내 태어났을 때는 가스레인지 쓰고 있었지’했습니다.
제 나이 스물세 살, 그 때 저희 부부는 작은 방 한 칸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부엌엔 문제의 그 석유화로가 있었고, 한쪽 옆에는 연탄아궁이가 있었습니다. 그 위에 조그만 찬장도 있었고, 방에는 큰 창문 하나, 방문 하나가 있었는데, 위풍이 어찌나 심했는지 모릅니다.
부엌에는 연탄아궁이며, 석유화로며 위험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할 수 없이 포대기로 큰 애를 업고, 저는 구부정한 자세로 저녁준비를 했습니다.
집에 석유화로가 하나뿐이니까 먼저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밥이 다 되면 뜸 들이는 사이에 김치찌개 냄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석유화로를 쓸 때는 불꽃 나오는 곳과 냄비의 위치를 잘 맞춰야지 안 그러면 검은 그을음 때문에 냄비바닥이 새카맣게 변해버리곤 했습니다. 그거 신경 써가며 김치찌개 올리고,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으면, 밥이 식을까봐, 남편 밥만 따로 떠서 아랫목 이불 속에 넣어두었습니다.
그 때쯤 남편이 퇴근해서 들어오면 저희 부부는 반찬도 따로 두지 않고, 밥에 김치찌개 하나만 놓고도 참 맛있게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그러다 큰 애가 세 살이 됐을 때, 저희 부부는 남편 회사에서 나온 보너스로 가스레인지를 샀습니다. 그을음도 안 나고, 냄비 까매질 걱정도 없고, 스위치만 돌리면 바로 불이 붙는 가스레인지를 보니 정말 신기하고, 너무 편했습니다.
사람들 자동차 사면 매일 세차하는 것처럼, 저도 가스레인지를 닦고닦고 또 닦고 매일 한 번씩 닦았습니다. 그렇게 가스레인지 하나만 봐도 신기하고 좋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컴퓨터로 책도 사고, 옷도 사고, 노래도 다운받아 듣는다고 하는데, 저는 겨우 한글 프로그램 이용해 사연 쓰고, 애들이 가르쳐 줘서 고스톱 게임만 할 줄 압니다.
휴대전화도 애들은 최신 유행곡으로 벨소리나 전화 연결음을 바꾸지만, 저는 그런 거 할 줄 몰라서 항상 애들한테 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전화기로 사진 찍는 것도 중학생 딸한테 배워서 가끔 찍어보는 정도입니다. 세상은 좋아져서 몸은 편한데, 이상하게 마음은 뭐랄까 주눅이 든다고 할까요? 저는 잘 할 줄 모르는데, 애들은 척척 해내는 걸 보면 제가 자꾸 뒤쳐지는 것 같아 속상할 때도 많습니다.
반대로 우리 애들은 제가 추억하는 물건들을 보면서 ‘그게 뭐예요?’ 하고 자주 물어보니 마치 애들과 제가 딴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더 자주 생길까봐 걱정스런 마음도 듭니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나는 그저 과거에만 머물러 있고 문득 그런 사실이 서글퍼집니다. 갑자기 우리 아이들과 제가 공유할 수 있는 문화가 줄어든다는 사실이 슬프게만 느껴집니다.
충남 아산 | 박성미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