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 눈물젖은건빵을드셔보셨나요?

입력 2009-01-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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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7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제 고향은 전남 신안의 ‘압해도’라는 섬인데, 꽤 큰 섬이긴 해도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물자가 부족한 곳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희 학교는 급식시범 학교로 정해져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무료급식으로 건빵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 당 20개씩 받았고, 매일 3교시가 끝나면 급식창고에서 가져왔습니다. 그 날 당번이 건빵 한 포대를 받아 칠판 밑에 갖다 놓으면, 아이들은 수업 내내 그 포대자루만 보느라고 수업에 집중을 못 했습니다. 포대와 가까이 앉은 아이들은 그 구수한 냄새에 코를 벌름 벌름거리고, 멀리 있는 애들은 그 포대자루를 보며 침을 꼴깍꼴깍 삼켰습니다. 보다 못한 선생님이 칠판을 탁탁 치며, “다들 어딜 보는 거야! 여기 집중해!!” 하고 소리치면 깜짝 놀라 칠판을 보지만, 다시 포대자루로 눈동자가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 당시 건빵은 요즘 파는 것보다 4배정도 더 컸고, 맛도 훨씬 구수했습니다. 4교시 수업이 끝나면 서로 먼저 받으려고 재빨리 포대 앞에 달려가 한 줄로 줄을 섰습니다. 그리고 자기 몫의 건빵을 받은 아이들은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온 애들은 그런 애들을 피해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도시락을 나눠먹습니다. 저는 도시락을 싸와도 그 친구들 틈에 끼어 같이 앉지 못 했습니다. 도시락을 펴 보면 언제나 밥은 잡곡밥, 반찬은 장아찌, 아니면 깍두기였습니다. 그나마도 들고 오면서 죄다 섞여 밥에 반찬국물이 벌겋게 물들고, 도시락도 뒤범벅이 되어 친구들 앞에 꺼내놓기 부끄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안 먹을 수도 없으니 뚜껑으로 살짝 가리고 밥을 먹곤 했습니다. 어떤 애들은 제가 맛있는 반찬 싸와서 그러는 줄 알고, 뚜껑을 확 낚아채서 저를 울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왜 그렇게 돌아서면 배가 고팠는지, 동생들 주려고 따로 챙겨둔 건빵에도 자꾸만 손이 갔습니다. 안 먹어야지, 안 먹어야지 하다가도 너무 먹고 싶을 땐 딱 한 개 꺼내 먹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아껴먹느라고 생쥐처럼 삭삭삭 앞니로 긁어먹곤 했습니다. 그것도 애들한테 안 뺏기려고 화장실 같은데 숨어서 먹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게 아주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날 육지에서 아주 높은 분들이 학교로 오신다고 했는데, 점심도 못 먹고 청소부터 했습니다. 1분단을 맡아 책상을 밀고 있었는데, 그 때 뭔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세상에나 도시락이 엎어져서, 하얀 쌀밥이 먼지 가득한 바닥에 쏟아져버렸습니다. 책상을 보니 새침데기 부잣집 딸 경미 자리였습니다. 어쩌면 좋을지 눈앞이 캄캄하고 당황하고 있는데, 멀리서 경미가 씩씩거리며 오더니 저를 확 밀쳤습니다. 그리고 하얀 쌀밥은 그냥 두고, 도시락 통만 챙겨 자기 가방에 넣더니 저를 무섭게 노려보고 갔습니다. 평소 잘 먹지 못 한 쌀밥인데, 지저분한 먼지를 씻어서라도 먹고 싶었지만, 반애들이 모두 쳐다보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어찌나 아깝던지 청소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돼도, 밥이 안 넘어갔습니다. 하얀 쌀밥을 그냥 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과 경미가 점심을 굶을 거란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거무스름한 내 도시락을 갖다 줄 수도 없고, 내 건빵을 주겠다고 하면 비웃을 게 뻔하고 저는 그 아이 쪽으론 고개도 못 돌리고 교실을 빠져나오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그 기억은 너무나 생생한데, 요즘 아이들은 잘 이해하지 못 하겠죠? 가끔은 아낄 줄 모르는 아이들 모습에 씁쓸해질 때가 있답니다. 서울 강서 | 최은숙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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