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읽는클림트의삶과사랑…클림트와여인,그환상과욕망

입력 2009-03-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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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는 일생토록 사생활에 대해 좀처럼 말을 하지 않은 신비주의 작가다. 그림을 통해 대중들에게 많은 얘기를 건넸을 뿐, 작품 제작 배경을 설명하지 않았다. 비밀스럽다. 그림에 등장하는 모델들의 표정, 몸짓은 신비롭고 관능적이며 지극히 화려하다. 클림트의 그림은 정적이면서 동시에 역동적인 반대되는 이미지들이 한 작품에 공존하며 모델의 매력을 십분 발휘한다. 특히 에로스가 강조된 3000여 점의 드로잉에는 여성들의 오묘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 남자 클림트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클림트는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의 그림에는 왜 그토록 수많은 여성이 등장할까? 2009 구스타프 클림트 한국전 ‘클림트의 황금빛 비밀’전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가상의 인물 탐구 소설 ‘클림트’를 추천한다. 클림트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상상하고, 그림을 더 풍부한 감성으로 관찰할 수 있다. ○클림트의 영원한 동반자?! 에밀리 플뢰게 “꽃이 없어 이것으로 대신 합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붉은 하트를 가득 담은 엽서를 에밀리 플뢰게에게 전한다. 빨간 하트가 꽃과 열매가 되어 달린 검은 줄기의 나무, 쉽게 해석되지 않는 기하학적인 문양 아래 글씨를 썼다. 꽃 대신 보낸다는 클림트의 그림이다. 엘리자베스 히키의 소설 ‘클림트’(예담)의 책장을 열면 바로 볼 수 있는 엽서다. 에밀리 플뢰게는 클림트에게 4백 여 통에 이르는 엽서와 편지 등을 받은 여자다. 클림트가 56세에 이르러 죽기 전, 마지막 발작을 할 때도 플뢰게의 이름을 불렀다. 독감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항상 플뢰게는 옆에 있었다. 이 때문에 ‘연인이다 아니다’가 논란이 분분한 대상이다. 사실 클림트가 플뢰게에게만 엽서를 보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리아 침머만이라는 여자에게는 더 길고 다정한 편지를 띄웠다. 그러나 소설 ‘클림트’는 클림트의 수많은 여자들 중 에밀리 플뢰게에 초점을 맞추고 둘의 관계를 시간 순으로 담았다. 소설 속 ‘나’는 바로 플뢰게다. 클림트보다 12살이 어렸고, 10대 때 그를 만나 26년 간 각별한 사이로 지냈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둘이 이렇다할 불꽃 튀는 스캔들도 없었다. 우정인지 사랑인지 묘하게 헷갈리는 관계였을 뿐이다. 그림 가정교사로 처음 만나 플뢰게가 중년의 의상디자이너가 되고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내내, 클림트는 플뢰게 옆에 있었다. 플뢰게 역시 평생 클림트 옆에서 예술적 활동을 하는 데에 안정감을 제공하는 동지로 살았다. ○정신적 관계인가? 육체적 관계인가? 클림트의 실제 사랑을 분석할 때 거칠게 정신적 관계와 육체적 관계로 따로 분리하는 게 대세다. 당시 오스트리아 빈은 매우 금욕적인 사회였고, 섹스와 자유로운 연애는 금기시됐다. 결혼은 금전관계였고, 부와 지위는 중요가치였다. 클림트는 비밀리에 우정과 섹스를 분리한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여럿 여자와 친분 관계를 이어나갔다. 플뢰게의 경우 실제로 평생 정신적 교분을 나눈 인물로 해석되는데, 허구의 소설에서는 단 두 번 육체적 관계를 맺는 장면이 나온다. 클림트의 동생이자 플뢰게의 형부가 죽은 뒤 화실에서, 플뢰게의 질투심이 폭발했을 때 카머 성에서다. 특히 클림트가 1908년에 남긴 ‘아터 호숫가의 카머 성’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플뢰게의 유일한 도발 장면이다. 둘은 여느 때처럼 아터 호숫가에서 배를 타며 휴식을 즐긴다. 클림트는 물 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고, 그런 그에게 플뢰게는 연인 관계를 추궁하기 시작한다. 미혼의 이 남자는 아주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아델레, 미치, 마리아 등의 여인들과 그들 사이에서 낳은 아들 얘기까지 한다. 이때 폭우가 쏟아지고 플뢰게는 배에서 뛰어내린다. 그리고 배 위로 다시 올라와 배를 뒤집어 엎어버린다. 물 속에 빠진 클림트가 보이지 않자 플뢰게는 클림트가 익사한 줄 알고 놀라 허둥지둥 다시 그를 구하고자 애쓴다. 물 위로 올라온 플뢰게와 클림트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를 맞으며 성으로 달려가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여자는 이내 곧 질투심과 분노가 정욕으로 변했다고 후회하며 그의 연인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를 남자로 사랑했다면 배가 뒤집혀 클림트가 사라졌을 때, 그를 구하지 않고 죽였을 것이란 생각이다. 플뢰게는 클림트에게 애증 관계가 아니었던 거다. 그저 조건 없는 사랑과 이해로만 일관했고 이 때문에 소울 메이트가 가능했단 얘기다. 둘은 그날 상황에 대해 다시 언급하지 않았고, 절대 공식적인 커플로 지내지 않는다. ○클림트의 로맨스를 상상하는 재미, 소설 ‘클림트’ 평생을 이어가는 남녀 관계가 존재할 수 있을까? 예술가의 사랑은 어떤 색채인가? 이에 대한 에피소드가 소설 안에는 끝없이 펼쳐진다. 책에서는 실제 클림트 그림 모델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알마 쉰들러 등 클림트의 여성 편력으로 고민한 플뢰게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알마 쉰들러가 산에서 떨어져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정도가 가장 강한 표현일 정도로 소설 분위기는 지극히 고요하다. 책은 비극적이고 가슴이 아릴 정도로까지 세밀히 감정 선을 설명하지 않았지만, 시원스레 밝혀진 게 없는 클림트의 애정 관계를 상상해 보기 좋다. 남자 클림트의 심리를 중심으로 한 소설에는 크리스티네 아이헬의 ‘클림트’(갤리온)도 있다. 클림트가 첫 눈에 반한 무희를 통해, 그가 모델들에게 어떤 식으로 영감을 받았는지를 그린 작품이다.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클림트의 심리가 두드러진다. 클림트가 미지의 여인, 팜 파탈 등 해석이 불가능한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자들을 발견하면서, 그 과정에서 몽환적인 작품을 그려가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히키와 크리스티네 아이헬의 소설에서는 공통으로 당대의 다른 인기 작가 ‘에곤 실레’가 자주 등장하는데, 클림트의 교우 관계를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클림트는 청년 에곤 실레의 그림 몇 편을 보고 바로 사랑하는 제자로 삼았다. 에곤 실레가 음란죄로 체포될 때도 그를 극진히 도와주게 된다. 인물의 매력 외에도, 엘리자베스 히키 소설은 플뢰게가 만드는 화려한 옷들과 빈 도시, 사교 파티,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등 많은 볼거리를 활자로 표현해 당시를 글로 만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책이 아닌 영상이 궁금한 독자들은 존 말코비치가 등장한 라울 루이즈 감독의 영화 ‘클림트’(2006)를 보고 전시장에 가도 2% 더 풍부하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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