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아침편지]“살림꾼남편님,잔소리그만…나도19년차주부란말이야”

입력 2009-07-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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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남편은 저와 다르게 무척 꼼꼼한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꼼꼼하다 못해 깔끔이 몸에 밴 사람이죠. 그래서 제가 이불을 아무렇게나 개서 장롱 속에 넣어놓거나, 속옷이며 양말들을 나름 정리해서 서랍장에 넣어두면, 아무 말 없이 다 꺼내서 차곡차곡 잘 개서 넣어주는 사람입니다.

근데요, 그동안은 아무 말도 안하고 힘든 내색 한 번 없이 잘해주던 사람이 요즘 따라 좀 이상해진 거 있죠?

며칠 전, 저는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를 듣고 양파 한 자루와 감자 한 박스를 미리 사서 뒷 베란다에 뒀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물건들이 여기저기 쌓여있어서 그런지 둘 자리가 없더라구요.

제가 정리를 다하고 일어났더니, 남편이 다했냐고 물어보더라구요. 그래서 다했다고, 잘하지 않았냐고 하니까, “당신 지금 그게 다했다고 그러는 거야? 이리 나와서 내가 하는 거 봐봐.” 이러는 겁니다. 전 괜히 심통이 나서, “뭘 또 한다는 거야, 다 했다니까 그러네.”하고 남편을 말렸는데요, 이미 남편은 제대로 각을 잡아서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사람 심리라는게 남편이 제 일을 도와주는 건 좋은데 너무 일일이 참견을 하니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더라구요. 그래서 거실로 나가 TV를 보고 있었는데, 한 시간 쯤 지났을까? 남편이 부르길래 가봤지요.

아주 깔끔하게 정리가 잘 돼 있는 게, 전에는 지나갈 틈도 없이 비좁고 복잡했던 베란다가 한결 넓어보이는 게, 옛날에 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러브하우스’에서 집이라도 고쳐주고 간 줄 알았습니다.

남편은 기세등등해서 “어때, 넓어지고 좋지? 여기는 빨래비누랑 세제 넣어놨고, 여긴 그릇들 넣어 놨으니까 잘 찾아서 써∼”하고 당부까지 하더라구요

그래서 심드렁하게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빨래를 갰습니다. 그런데 소파에 앉아 TV를 보던 남편이 “어허, 수건 줘봐. 내가 수건 개는 방법 가르쳐 줄게, 잘 따라해봐∼” 이러는 게 아니겠어요? 아니, 19년 차 주부한테 ‘수건 개는 법’을 알려준다뇨? 나 원 참,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얼마나 제가 한심해 보였으면 그런 걸 다 가르쳐 준다고 했을까 싶었는데, 제대로 각 잡아서 갠 남편의 수건과, 아무렇게나 막 접어놓은 제가 갠 수건을 보니까 뭐라고 큰소리도 못 치겠더라구요. 하지만 아무리 남편이 갠 수건이 예뻐도, 남편이 한 대로 따라하면 지는 기분이 들어서 끝까지 제 맘대로 수건을 갰습니다.

그런데요. 정말이지, 그동안 아무 말 않던 남편이 왜 그러는 걸까요?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걸까요? 여보, 그냥 잔소리 안 하고 좀 도와주면 안 될까? 나 아무리 모자라도, 그래도 나, 19년차 주부란 말이야∼

전남 순천시|김미선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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