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아침편지] ‘신발광’엄마! 제가더많이사드릴테니걱정마세요

입력 2009-07-14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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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친정엄마는 당뇨로 고생을 하고 계시는지라 신발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당뇨도 당뇨지만, 모양내기를 좋아하셔서 신발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엄마는 신발장을 새롭게 만들었으니 구경 오라면서 자랑을 하셨습니다. 신발장을 들여다보니 어쩌면 그렇게 신발이 많은지… 아버지 신발은 딱 다섯 켤레가 전부였고, 나머지는 모두 엄마 신발이었습니다.

순간 어릴 때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의 수첩 같은 것에, 버스표와 비상금 몇 천원을 끼워 넣고 다니셨는데, 어느 날 외삼촌이 놀러 오셔서 아버지와 약주를 하시다가 무슨 내기를 하셨는지, 수첩도 아닌 다른 곳에서 꼬깃꼬깃 1000원 짜리를 꺼내셨습니다.

외삼촌은 “야야, 네 아버지 쌈짓돈 나온다, 저거 어디 좀팽이 같아서 쓰겄냐?”라고 하시는데 왠지 제가 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용돈을 모으고, 모아서 아버지께 지갑을 사드렸죠. 아버지는 그 지갑을 제가 시집을 갈 때까지 계속 사용하셨습니다.

평소 근검절약이 몸이 밴 아버지의 신발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도 같은데, 신발장 가득한 엄마의 신발을 보고 있자니 아버지가 측은하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얼마 전, 아버지께 효도신발을 사드렸습니다.

기분 좋게 신발을 사드리고 얼마나 지났을까요, 두 분이 뭔가를 놓고 티격태격 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아니, 누구 맘대로 그러는 거야? 내가 아끼고 아껴서 신느라고, 흙이라도 묻으면 잘 털어서 넣어둔 신발인데, 그걸 왜 당신이 함부로 신어!”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니, 엄마는 “아니, 당신이 안 신는 거 같은 신발 좀 꺼내 신은 게 뭐 그리 죄유?”라며 대답하셨습니다.

두 분을 보니까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저는 엄마가 기분 상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뭐라도 사드리면 금세 다 잊어버리는 분이라는 걸 알기에 새 가방을 사드리려고 모시고 나갔습니다.



하지만 엄마 눈에는 역시나 신발이 먼저였는지,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신발을 살피시더라고요.

엄마 성격에 꼭 맞는 꽃문양이 수가 새겨진 구두였습니다.

엄마는 신발을 신자마자 “흙 묻은 네 아버지 신발 신고 다녔다간 백화점에서 명함이나 내밀겠냐? 그래도 요런 놈으로다가 하나 신어줘야 사모님 소리가 나오지 않겠어?”하시며 거울 앞에 서계시는데, 언제 찜하셨는지 매장에 진열된 가방도 하나 들고 같이 비춰보고 계셨습니다.

결국 엄마는 푹신거리는 새 신발에 가방을 메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요, 엄마의 신발장은 좀 더 빡빡해지겠지만, 그래도 그것으로 인해 엄마가 더 유쾌하게 사실 수 있다면 딸로서 더 바랄게 없습니다.

원주시 단구동|김은정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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