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함의미학-페르난도보테로전

입력 2009-07-26 14: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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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테로라는 이름은 몰라도 그가 그린 그림을 삶 속에서 한두 번쯤 마주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튜브에 바람을 넣은 듯 한껏 부풀린 인물들의 모습은 살빼기의 망령에 붙들려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묘한 안도감마저 안겨준다.

페르난도 보테로(1932~ )는 남미 콜롬비아 메델린 출신의 화가다.

그냥 화가 정도가 아니라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거대한 영향력을 지닌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에는 고향인 남미대륙을 배경으로 독재자, 댄서, 창녀, 투우사 등 다양한 군상이 등장한다. 앞서 언급했듯 보테로의 작품 인물들은 한결같이 펑퍼짐하게 살이 쪘다. 작고 통통한 입과 옆으로 째진 눈이 뚱뚱함을 더욱 부추긴다.

이러한 작풍은 보테로 특유의 유머감각과 남미의 정서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사람뿐이 아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과 정물, 심지어 옆에 놓인 바이올린조차 글래머스럽기 짝이 없다.

옛 거장들의 작품에서 소재를 종종 차용하는 것도 보테로의 특징 중 하나. 보테로의 ‘뚱보화법’에 걸려들면 어김없이 거장들의 명작들은 보테로화 하고 만다. 고대의 신화를 이용해 정치적 권위주의를 예리하게 고발하고, 현대의 일그러진 사회상을 풍자하는 것도 보테로의 능기다.

현재 그는 피카소, 샤갈, 미로에 이어 전 세계 옥션 작품판매 순위에서 4위를 기록하고 있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전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방학을 맞아 부모와 함께 전시장을 찾는 어린이 관객들이 크게 늘면서 전시장은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관람객들로 가득 찬다. 보테로전(展)을 미처 다녀오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전시회장 속을 살짝 보여드린다.

이번 보테로전은 총 5부로 나누어져 있다.

보테로전 중 악기, 캔버스에 유체.


1부는 ‘정물과 고전의 해석’이다.

보테로는 1954년 정물을 통해 양감을 강조하는 기법을 터득하게 됐다고 한다. 즉 이후 그가 보여준 독특한 화법은 정물화로부터 나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보테로는 평소 “나는 과일을 그리듯 인물을 그리고 싶다”라고 말하곤 했다.

마찬가지로 1950년대부터 보테로는 르네상스 거장들이 고대의 회화와 조각을 재응용 했듯 거장들의 작품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포장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 고야, 루벤스, 벨라스케스,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미술사를 주물럭댔던 신화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보테로 식으로 재구성했다.

작품을 보다가 “어? 이거 어디서 봤는데?”싶다면 그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보테로전 중 곡예사.


2부는 라틴의 삶.

보테로는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문화적 뿌리를 소개해 주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보인다. 라틴문화가 비록 유럽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지형, 인종, 역사 등 토착적 환경에 맞물려 독특한 개성을 갖게 되었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보테로란 유리창으로 내다 본 라틴의 모습은 어떨까.

보테로전 중 춤추는 사람들.


3부는 라틴 사람들이다.

보테로가 다큐멘터리적 성향을 지닌 작가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방이다. 사실을 기록하고 있지만 어쩐지 훈훈한 온기가 도는 것은 보테로가 라틴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땔감으로 넉넉히 넣어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뜻한 서정성과 삶에 대한 은유가 풍성하다.

보테로전 중 죽어가는 소의 그림.


4부는 투우와 서커스.

보테로에게 투우는 작품의 영감을 불어넣어 준 중요한 원천이었다. 그는 투우의 화려한 시작과 비극적 결말을 모두 그림으로 옮겼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삶과 죽음을 마주보고 있는 소와 투우사의 숙명적 관계였다.

서커스는 삶의 고단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웃음, 유흥, 기쁨이다. 어쩐지 서커스 시리즈에서는 비현실적인 화풍이 두드러지지만 화려한 색채와 움직임은 전형적인 보테로의 것이다.

보테로전 중 벨라스케즈를 따라서.


마지막 5부는 야외조각이다.

조각이라고 해서 회화와 다를 게 없어, 강조된 볼륨감은 여전하다. ‘고양이’, ‘앉아있는 여인’, ‘기대어 있는 여인’ 석 점의 작품이 위용도 당당하게 전시돼 있다.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7월 9일부터 8월 13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6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릴레이 강연회가 열린다. 라틴아메리카의 미술, 음악, 영화, 문학 등에 대해 유화열, 송기철, 전기순 등이 강의한다.

8월 6일부터 12일까지 씨네큐브 광화문(02-2002-7770)에서는 2009 라틴영화제가 개최된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2004)’,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1999)’, ‘시티 오브 갓(2002)’ 등이 상영되며 보테로전 입장권 소지자는 1000원 할인해 준다.

동아일보사, 국립현대미술관, MBC가 공동주최한 페르난도 보테로전은 오는 9월 17일까지 개최된다.

전시문의: 02-368-1414
홈페이지: http://botero.moca.go.kr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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