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아침편지] 5남매도시락싸던울엄마…그정성,이제야알겠어요

입력 2009-08-24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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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아들이 학교 급식실 내부에 긴급공사를 해야 한다면서 일주일간 급식 대신 도시락을 지참하라는 알림장을 가져왔습니다.사실 도시락이라고 해봤자 소풍갈 때 몇 번 김밥 싸준 게 다인데, 도시락 크기는 어떤 걸로 해야 할지, 반찬은 몇 가지나 싸줘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부랴부랴 장 봐와서 몇 가지 밑반찬을 만들어 놓고, 다음날 아침 다른 때보다 일찍 일어나서 멸치 볶음에 오이무침, 김, 소시지, 이렇게 네 가지 반찬을 챙겨서 얼음물과 함께 도시락을 싸 줬습니다. 그리곤 학교를 다녀온 아들에게 “도시락 다 먹었어?”하고 물었습니다. “진짜 맛있게 먹었어요! 친구들이 전부다 맛있다고 했어요.맨날 이렇게 먹었으면 좋겠어요”라면서 밝게 웃어 줬습니다.

이렇게 좋아하는 아들을 보니까 안심이 됐습니다. 문득 유년시절, 엄마가 싸주시던 도시락이 떠올랐습니다.

엄마는 우리 5남매의 도시락을 하루도 빠짐없이 싸주셨는데, 요즘처럼 제대로 된 밀폐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노란 양은 도시락 통에 밥을 싸주셨습니다. 그렇다 보니 김치처럼 국물이 있는 반찬을 싸가지고 가는 날엔 여지없이 국물이 흘러서 책이며 가방을 버리곤 했죠.

당시 제 위 언니와 오빠는 야간자율학습까지 했기 때문에 엄마는 모두 7개의 도시락을 싸야 했는데, 아침이면 한숨으로 도시락을 싸셨던 것 같습니다. 그건 아마도 도시락 반찬 때문이었을 테지요.

매일 같은 반찬을 싸주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매일 다른 반찬을 싸줄 형편은 안 되거든요. 그런데 철없던 저는 이런 엄마의 속사정은 알지도 못하고, 엄마가 넣어주는 도시락 반찬에 따라 그날 기분이 좌지우지 되곤 했습니다.

만약 계란 옷을 입은 분홍색 소시지가 등장하는 날에는 친구들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도시락을 풀어 헤쳤다가도, 신 김치 냄새가 폴폴 나는 날이면 괜히 의기소침해져서 친구들 앞에서 도시락 뚜껑 열기를 주저했었죠.

그래서 어쩔 땐 괜히 “엄만 왜 맨날 김치를 싸줘서 국물이 흐르게 해… 냄새나고 책 다 버렸잖아. 김치 말고 국물 없는 반찬 좀 싸주면 안돼?” 하고 성질을 부리면 엄마는 “이것아, 이것도 없어서 못 먹는 애들이 널렸어. 배부른 소리 하고 있을 거면 내일부턴 도시락이고 뭐고 없어. 점심 굶어!”라면서 제 등을 찰싹 때리셨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심통이 통했는지 다음 날이면 엄마는 소시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계란을 얇게 부쳐서 도시락 밥 밑에 살짝 깔아주시곤 했죠. 아무튼 5일간 아들의 도시락을 챙겨주다 보니, 도시락 싸는 일이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할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도시락을 싸주시던 엄마의 정성을 알게 됐죠. 지금도 옛날을 생각하니 하교 길에 텅 빈 양은 도시락 속 숟가락이 달그락거리던 소리가 아련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언제 한번 엄마를 위한 맛있는 도시락 싸서 가까운 곳으로 소풍이라도 다녀와야겠습니다.

From. 지은경 |대전 중구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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