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K팝 열전]①가식과 내숭의 디버블링(de-bubbling)-포미닛 '현아'

입력 2011-05-15 12: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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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 없는 도발적 이미지로 무대를 장악한 젊은 카리스마
●"춤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가장 확실한 한류스타

큐브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

《이제는 세계로 무대를 넓힌 케이팝스타들에 대한 가십성 뉴스가 넘실거린다. 그러나 가십만으로는 우리가 소비하는 스타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이들의 음악에 대한 해석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음악평론가들은 아이돌 문화에 대해 인색하기 때문이다. 팬덤이 좌지우지하는 아이돌 문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방법은 사라졌다. 이제는 그들이 표출해 내는 문화현상에 대한 각자의 주관적인 해석이 오히려 유용한 시대가 됐다. 케이팝 아이돌에 대한 색다른 시선…》

무대 위 '여신(女神)의 계보'가 시작된 지도 적잖은 시간이 흘렀다. 스무 살을 전후해 데뷔무대를 갖던 아름다운 전통은 2001년 '보아'를 기점으로 십대 중반으로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어느새 이들 10대 소년, 소녀들이 한국가요계의 주류세력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문화적 충돌이 발생한다. 이들은 '뮤지션'인가 아닌가? 자율성을 지닌 '예술가'인가 혹은 '훈련된 기능인'인가? 심지어 이들은 '여성'인가 '청소년'인가라는 질문도 가능하다. 모든 것이 모호해 한마디로 규정하기 쉽지 않은 질문들이다.

적게는 네댓 명, 많게는 십여 명이 짝을 이뤄 사관학교 생도보다도 절도 있는 군무(群舞)를 펼쳐보이자 기성세대들은 그 생경한 광경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조카나 자식뻘 되는 아이들의 치열한 노력에 대한 기특함도 배어있지만, 사실 이들의 율동의 틈바귀에서 비집고 새어나오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당혹감도 상당부분 차지하기 때문이다.

'현아'…. 지난해까지만 해도 "포미닛(4minute)의 현아"라고 불렸다. 너무 흔한 이름과 인상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녀는 소비하기에 무척 까다로운 텍스트다. 무엇보다 '현아'를 인지하기까지가 쉽지 않다. 100여개를 헤아릴 정도로 범람하는 걸 그룹 속에서 '포미닛'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인식한 이후, 다섯 명의 멤버(남지현 허가윤 전지윤 권소현 등) 가운데 그녀를 '발견'해야 한다. 접근비용이 만만치 않게 높다는 얘기다. 더구나 '포미닛'은 한국 걸 그룹 역사에서 신기원을 이룩한 아이돌이 아니다. 2009년 데뷔한 3년차 걸 그룹으로 아직은 이뤄야 할 것이 훨씬 많은 '가능성의 그룹'일 뿐이다.


■ 춤꾼 '현아'가 내비치는 도발성의 미학

그녀가 논쟁적인 아티스트라는 점은 잘 알려졌다.

놀라운 점은 한번 현아를 발견한 사람이라면 독특한 그녀의 '포스'에 쉽게 함락된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애프터스쿨'의 '유이'같은 꿀벅지를 지닌 것도 아니고, '카라'의 '구하라'가 지닌 귀여움, 또는 '소녀시대'의 '태연'이 내뿜는 가창력과 무관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녀의 마력은 케이팝 진영에서 독특한 위상을 차지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순전히 '현아'의 매력은 그녀의 격정적인 춤사위에서 분출하는 파워 넘치는 에너지 탓이다.

물론 춤을 잘 추는 여성 아이돌은 흔하다. 오히려 못 추는 것이 뉴스가 될 정도다. 그러나 현아의 춤은 단순히 "잘 춘다"는 범주를 넘어선다. 내로라하는 춤꾼들조차도 "이 어린 나이에 어떻게 저런 춤을 소화할 수 있지"라고 감탄할 정도로, 그녀의 춤은 현란하고 맛깔스럽다. 말 그대로 '아이돌 최고의 춤꾼'이다.

포미닛 현아. SBS 가요대전 리허설에서 가수 현아가 화려한 공연을 펼치고 있다.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현아'를 앞세운 '포미닛'은 데뷔 초기부터 파워풀한 댄스 팝으로 경쟁우위를 추구했다. 데뷔작 '핫 이슈(Hot Issue)'와 '뮤지크(Muzik)'부터 이들의 지향 점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자동차로 치면 스포츠카에 비슷한 압도적인 엔진출력과 철지난 복고풍 감수성을 내세워, 대다수 걸 그룹들의 달짝지근한 화음과 정면으로 맞부딪친다는 것이다.

특히 '현아'는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독보적인 현란함과 유연함을 선보였다. 내숭과 가식 없는 몸짓으로 무대를 장악한 것이다.

내숭과 가식은 케이팝 걸 그룹이 가져야할 가장 확실한 미덕이었다. 이들은 음악성이 부족해도 '있는 척'해야 했고 귀여운 척, 섹시한 척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타의 걸 그룹들이 춤과 노래 그리고 패션을 통해 귀엽고 깜찍한 매력을 뽐내기에 정신이 없는 사이 오로지 '현아'만큼은 '도발적'인 포즈와 날것 그대로의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이 대목에 감동한 이들은 '현아'의 지지자로, 그렇지 못한 이들은 '안티'로 갈라지게 된 것이다.


■ '관음증'보다 더 강한 현아의 춤사위

여기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 그녀의 에너지는 10녀 소녀들이 흔히 갖고 있는 '밝은 세상'의 그것과는 상당한 거리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1992년생인 '현아'는 지난해까지 고등학교 재학생으로 법적인 미성년자였다.

결국 수많은 연예 칼럼니스트들이 그녀의 이미지를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분명 그녀에게서 여인의 '아우라'가 묻어났음에도 감히 미성년자를 '섹슈얼' 이미지로 설명한다는 것은 결례를 넘어선 범죄였기 때문이다. (기획사도 그 점을 인지했는지 데뷔 초기는 '끼 넘치는 아이돌'로 설정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학교에 출석시켰다.)

그럼에도 그녀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단순 섹시함을 위해 섹시를 팔지 않았다는 점이다.

10대 소녀가 표현해 내는 '섹시함'은 늘씬한 몸을 앞세운 '나인뮤지스'를 위시한 급조된 섹시돌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제껏 케이팝 걸 그룹들은 남성들의 관음증을 교묘하게 공략해온 것이 사실이다. 실제 일본의 공중파 TV카메라까지 노골적으로 '소녀시대'의 다리에 초점을 맞췄고, 이는 우리나라 미디어 역시도 피해가지 못한 엄연한 현실이었다.

'현아'는 이런 관행을 피하지 않고 보다 정면으로 돌파한 것이다. 이미 10대 중반에 JYP를 통해 '원더걸스' 초기멤버로 활약할 정도로 자질을 인정받은 그녀는 확실한 자신의 '춤' 실력을 앞세워 무대에 오른 것이다.

그녀의 섹시한 의상이나 표정 역시도 오로지 댄스를 위한 과정이었다. 결국 무대 위 여성의 몸에 집중하던 시청자들은 어느 순간 무대 위 현아의 춤에 집중하게 되는 식으로 그녀에게 호응한 것이다.

물론 그녀의 '분출하는 끼'는 기성세대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즈, 때론 몸의 굴곡을 고스란히 노출하는 의상, 좌중을 휘어잡는 격렬한 골반춤, 마지막으로 현란한 눈빛까지…. 그녀의 이미지는 섹시함이 주류가 된 대중문화에서도 쉽게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위태로운 경계선을 오갔다.

그녀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춤을 잘 추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확실하게 현아에 대한 양극단의 평가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는 가수(보컬)에 대한 이해와 평가에 비해 '춤'에 대한 인식은 낮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반전이 존재한다. 허리가 꺾일 것 같은 격렬한 팝핀 댄스를 추면서도 무대가 끝나고 나면 다소곳한 표정과 여느 10대와 같은 순수한 표정과 인사말로 마무리 한다. 보면 볼수록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아이돌이 바로 '현아'인 셈이다.

이 같은 대중의 수요와 본인의 끼가 발산한 지점이 올해 4월 그녀가 성년으로 진입하면서 발표한 첫 정규앨범 속에 수록된 '거울아, 거울아'란 노래다. 그러나 이 곡은 전략상 실패한 노래로 규정지을 수 있다.

이 노래의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보수적인 평론가들의 공분(公憤)을 사기에 충분했다. 무대 위에서 골반 춤을 췄지만 힙합 이미지가 강했던 전작의 행태에서 성적인 행위로 오해할 수 있는 안무를 포함시켜 언론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은 것이다.

기획사 측에서는 소녀에서 성인으로 가는 전환점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지만, 이는 '현아'를 잘못 이해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이미 현아는 오래전부터 섹시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미닛 1년 간의 공백 끝에 첫 정규앨범 ‘포미닛츠 레프트’를 발표한 포미닛. 앨범을 출시하자마자 화려한 춤부터 강렬한 노래까지 화제를 뿌리고 있다. 왼쪽부터 전지윤 남지현 김현아 허가윤 권소현. 큐브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



■ '섹시함'에 대한 편견을 지우면 아티스트가 보인다

오히려 '포미닛'과 현아의 매력을 돋보인 노래는 '하트 투 하트(Heart To Heart'였다. 여전히 가요차트에서 주목을 받지 않은 노래이지만 대다수 평론가들도 순박한 리듬을 갖고 발랄함과 성숙미를 동시에 선보이는 '포미닛'의 능력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격렬한 춤을 함께하는 걸 그룹이 라이브 무대를 선보인 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현재 수많은 한류스타 가운데 '포미닛'은 가장 성실한 무대 매너를 선보이는 걸 그룹으로 각인됐다. 태국과 일본에서 열린 수많은 콘서트를 라이브로 소화한 이들에 대한 팬들의 인식은 날로 좋아진 것이다.

더구나 '현아'는 대학축제에서 가장 선호하는 가수 가운데 하나다. 많은 대학생 팬들은 이제 대학 1학년생인 그녀에게 '체인지'를 연호한다. 2010년 발표한 솔로곡 '체인지'와 함께하는 파격적 댄스는 그녀의 매력을 제대로 분출하는 퍼포먼스로 손꼽힌다. 보다 아름답고 섹시하게 춤을 추는 것이 지상 과제인양, 현아는 무대에 오른 이상 최선의 춤을 선보이는 데 집중한다.

그녀에게 '가식'과 '내숭'이란 결단코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 걸 그룹에 만연한 '가식'이라는 미덕은 현아 앞에서 그 거품이 확연하게 가라앉는다. "가식과 내숭의 디버블링(de-bubbling)"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춤꾼 '현아'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언젠가 토크쇼에 출연한 그는 "춤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표현으로 방청객들의 박수를 받은 적이 있다. 남자 춤꾼의 성공사례는 이미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과 이주노에서 경험한 적이 있다. 아직 여성 춤꾼의 거대한 성공을 목격한 적은 없다. 우리가 '현아'의 미래에 대해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인 셈이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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