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자의 인증샷] ‘소름가창’ 박은태도 “이 노래만큼은 두렵다”

입력 2011-11-25 13: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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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워요. 더 잘 하고 싶은데 ….”

뮤지컬배우 박은태는 요즘 ‘햄릿’으로 살고 있다. 남자 배우라면 누구나 오르고 싶은 나무가 ‘햄릿’이다. 2008년 ‘햄릿’ 때는 여주인공 ‘오필리어’의 오빠인 ‘레어티즈’ 역이었다. 이번 햄릿은 박은태에게 3년 만의 금의환향인 셈이다.

2010년 2월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조성모가 개막 직전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대타로 ‘모차르트’가 된 이후 박은태는 그야말로 초고속으로 상승했다.

‘모차르트’가 배우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면, 그해 연말 ‘피맛골연가’의 ‘김생’ 역은 성공의 도약대가 됐다. 맑고 힘찬 고음, 어딘지 모를 중성적인 매력은 그를 단숨에 ‘제2의 류정한’으로 끌어올려 놓았다.

이번 ‘햄릿’ 공연에서 박은태는 아역배우 출신 김수용과 더블 캐스팅이다. 김수용은 ‘햄릿의 전설’로 불릴 정도로 뮤지컬 ‘햄릿’에 관한 한 최고의 베테랑. 지치지 않는 그의 성대에 대해 주변에서는 ‘티타늄 성대’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을 정도다. 그런데 박은태도 만만치 않다. 김수용의 ‘티타늄 성대’에 밀리지 않는다.


“전 타고났다고 생각 안 해요. ‘노트르담 드 파리’, ‘모차르트’ 때 두 번이나 성대결절을 겪었는걸요. ‘레어티스’할 때는 거의 4개월 내내 목이 상할까봐 두려워한 기억만 납니다.”

하지만 이제 박은태는 “내 목을 조금씩 믿게 됐다”라고 했다. 지금까지 무대에서 ‘소리’에만 집중했다면 슬슬 연기에 대한 여유를 벌고 있다. 연기력을 키우기 위해 올해 출연했던 첫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그는 게이역이었다)’의 ‘약발’이 슬슬 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방송이나 영화를 해 볼 마음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닥치고 10년”이라고 했다. “10년은 해봐야 어디 가서 ‘뮤지컬 배우입니다’하고 명함을 내밀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였다. 다만 방송이든 뭐든 다른 장르의 일을 하게 되면 제대로 하고 싶다고 했다. 뮤지컬을 쉬더라도, 신인의 자세로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를 비쳤다.

“저는 지금도 ‘주연상’이 아닌 ‘신인상’ 후보지만, 그런 만큼 하나씩 쌓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쌓여가는 이 느낌이 참 좋습니다.”

12월 17일까지 ‘햄릿’을 쌓는 박은태는 그 위에 내년 2월부터 한국 초연되는 유럽 뮤지컬 ‘엘리자벳’의 ‘루케니’ 역을 얹을 예정이다. ‘신인상’ 후보 박은태를 보는 일도 올해가 마지막이 될 듯하다.



○ ‘양기자의 인증샷’에서만 볼 수 있는 못 다한 이야기 …


- 요즘 ‘햄릿’으로 사는 기분이 어떤지요?

더 잘 하고 싶죠. ‘모차르트’, ‘피맛골연가’ 하면서 영글어지는 느낌이에요. 한 번 작품을 할 때마다 더 찾아지고.

‘햄릿’은 다이어트까지 하면서 하다보니(5kg 감량) 힘이 들기는 하는데, 어쩐 일인지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때처럼 확 빠지지는 못하고 있어요. 노래에 치이기도 하고. 한 번 더 하고 싶어요. 지금은 … 스스로 부족해요.


- 이번 ‘햄릿’에서 예의 폭발적인 가창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한번 보아 주세요’하는 것이 느껴졌다면, 이제는 ‘이래도 놀라지 않을 테냐’하는 자신감이 느껴지는데요.

감사한 표현이시네요. 사실 무대에서 여유를 좀 잡은 거 같아요. 전에는 ‘어떻게 보일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면, 이제 조금은 연기적으로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긴 듯해요. 소리적으로도 마찬가지고요. 아예 소리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소리에 덜 집중하면서 오히려 자연스러워진 것도 있겠죠.

2008년 ‘레어티즈’ 때에는 정말 소리에만 매달렸어요. 거의 4개월을 혼자 버텨야 했으니까. 목을 다치지 않고 잘 마무리하는 게 최우선 목표였죠.

김승대 배우가 함께 ‘레어티즈’를 하다가 중간에 ‘햄릿’으로 가버려서 혼자였거든요. 지금은 목이 약간 단련도 됐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도 했고. 목이 나가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거죠. 목이 상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덜었어요.


- 평소 목 관리가 철저한 배우로 유명합니다.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이 목 관리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내일이 공연이면 빨리 자야하고, 평소에도 “내 목소리는 강성이라 놀아도 돼” 이런 게 없어요. 술자리가 있어도 “형님들, 죄송합니다”하고 빠지는 평이죠. ‘거미여인의 키스’ 때는 많이 마셨어요. 술을 좋아는 하거든요.

운동을 많이 해요. 주로 헬스죠. 개인적으로는 산에 올라가는 걸 좋아합니다. 남산코스를 가장 좋아해요. 남산 연습실에서 연습할 때는 자주 올라가요. 남산타워 찍고 내려오면 한 시간. 그 땀을 흘리는 시간이 너무 좋더라고요.



- 박은태 배우를 한양대 성악과 출신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더군요(실제로는 경영학과 졸업). 그런데 강변 가요제 출신이라면서요?

아는 분들이 별로 없어요. 전 뮤지컬 배우가 된 걸 팔자라고 생각하는데, 강변가요제 때도 그랬던 것 같아요. 사실 저 강변가요제 2차 예선에서 떨어졌었어요. 그때 심사위원이 이선희 선생이었죠.

한 달쯤 지났는데 연락이 왔더라고요. 제가 41등이래요. 3차 예선 합격자가 40명인데, 한 명이 불참한 모양이죠. “3차 예선 보러 올 수 있냐”고 하더라고요. 완전 땡큐죠.

그렇게 해서 3차 예선을 봤는데, 이상하게 제 앞 뒤 사람들이 잘 하는 사람들인데 ‘삑사리’를 내더라고요. 운 좋게 3차 예선을 통과했죠.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4차 예선에서 또 떨어졌어요. ‘내 운은 여기까지구나’ 했죠. 이틀 뒤에 또 연락이 왔어요. 패자부활전이 있다고. 결국 본선에 올라갔는데, 마음이 너무 편하더라고요. 번호도 1번이었어요. 어머니 아버지한테 나 TV 나오는 모습이나 보여드리자 하는 마음으로 나갔죠.

그런데 그날따라 잘 하던 분들이 많이 틀리시더라고요. ‘삑사리’도 많이 내고. 그래서 동상을 받았죠. 제 삶이 좀 그래요. 아시다시피 ‘모차르트’도 그렇고. 하하하!


- 뮤지컬 지망생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많이 해주는 편이에요. 가장 중요한 것은 “각오를 확실하게 했느냐”예요. 환해 보이는 모습만 보고, 간혹은 저 박은태를 보고 꿈을 키우는 분들이 계세요. 조승우, 홍광호 이런 분들 음원을 듣고 꿈을 키우기도 하고. 저도 그랬거든요.

“이거 아니면 안 돼…”하는 배수의 진을 치고 들어오는 건지 꼭 물어봐요. 이 세계가 행복해 보이지만 어둡고 힘든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실력이 있지만 오랫동안 빛을 못 보는 분들도 계시고요. 과연 당신들이 그렇게 되더라도 무대를 사랑할 수 있느냐는 거죠.

그것(화려함)만 바랐다면 저 또한 이 자리에 올 수 없었을 거예요. 강한 스포트라이트만 보면 안 됩니다. 어린 친구들한테 물어요. 지하철에서 모금함 들고 노래해도 만족할 수 있느냐고. 적어도 전 그런 각오로 들어왔거든요.

부모님께서 장사하시면서 많은 돈을 들여 저를 대학공부 시키셨고, 4학년 올라가서 친구들 토익공부할 때 전 다 접고 이쪽으로 들어왔어요. 이를 악 물고 가는 힘이 있으면, 뭐가 되도 될 겁니다.



- 가장 애착이 가는 뮤지컬 넘버가 있다면 어떤 곡일까요.

‘모차르트’의 ‘내 운명 피하고 싶어’와 ‘노트르담 드 파리’의 ‘대성당들의 시대’.

사실 애착이 간다라기 보다는 …. ‘대성당’은 절 가장 많이 알려준 곡이지만 가장 부르기 무서운 곡 중 하나예요. 표현하기에 어려운 곡이죠.

기본적으로 성악적 베이스가 많이 필요하고. 당시 이 노래를 불렀을 때가 성악 배운 지 2년 정도 되었을 시점이었어요. 소화하기 버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내 운명…’은 절 있게 해준 고마운 곡이죠. 두 곡의 공통점은 부르면서 너무 고통스러웠다는 겁니다. 지금 불러도 그 때 기억이 남아 있어요. 무대에서 떨면서 불렀던 …. 누가 불러달라고 하면, 이 곡들은 안 했으면 싶어요. 지금도.

- 트위터를 안 하는 이유가 있나요.

트위터로 소통을 하지 않는 이유는, 제 욕심 때문인 거죠. 스스로 여리고, 약하고, 상처도 많이 받고. 중요한 것은 의연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언젠가 (댓글이나 반응에 대해) 무대에서 신경을 쓰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됐어요.

차라리 그럴 것이면, 내가 최선을 다해서 무대에서 집중해서 팬들께 잘 보여드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죠. 100퍼센트를 보여드리는 것도 모자란 판에 집중력이 깨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소통이 중요한 배우의 의무이지만, 죄송하지만 접고, 그날그날 관객에게 최선의 모습을 보여 드리자 … 이것이 저의 현재 생각입니다.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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