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이야기가 있는 마을] 옥황상제 일곱 딸들의 피부병 치유한 ‘두리샘’

입력 2017-11-0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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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라버려 터만 남은 두리샘. 예전엔 겨울에 따뜻한 물이 솟아 마을사람들이 편리하게 살아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고흥|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12. 중촌마을 ‘두리샘 설화’


보름달 뜬 밤에만 허했다는 신비의 샘물
윗샘은 상수원 역할, 아랫샘에선 빨래를
지하서 올라온 샘이라 계절마다 온도차
30∼40년전까지도 마을 사람들 식수로

오랜 세월 척박했던 땅. 그만큼 사람들의 세상살이에 대한 의지는 강했다. 강하고 질긴 태도와 능력으로써만 세상은 살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이야기는 쌓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산한 삶을 이어가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밝고 슬프고 아름답고 비극적이어서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 설화는 그렇게 오래도록 쌓여 전해져오고 있다.

전남 고흥군을 다시 찾는 이유다. 지난해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고흥의 이곳저곳 땅을 밟으며 다양한 이들을 만난 스포츠동아는 올해에도 그곳으로 간다. 사람들이 전하는 오랜 삶의 또렷한 흔적을 확인해가며 그 깊은 울림을 함께 나누려 한다. 매달 두 차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샘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을 주고, 강과 바다를 이루는 근원이 된다. 고흥군에는 마을마다 크고 작은 샘이 있다. 예부터 사람들은 사시사철 샘에서 솟아나는 물로 삶을 일구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대부분의 샘은 더 이상 마을 사람들의 식수원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었다. 그래도 샘은 여전히 마르지 않고 물길을 유지하고 있다.



● 몸과 마음을 치유해준 두리샘

고흥읍 고소리 중촌마을은 뒤로는 산, 앞으로는 논과 밭의 평지로 이뤄져 있다.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두리샘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물이 솟아나 오래 전부터 마을 사람들의 삶을 도왔다.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살아온 강덕원(82) 씨는 두리샘에 얽힌 추억이 많다.

“내가 젊을 때, 그러니까 30∼40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여자들이 두리샘 물을 길러다 음식도 하고 식수로도 먹었지. 여름에는 샘 주변에 모여 시원하게 씻기도 했고. 만약 샘이 없었다면 우리 마을 사람들은 살아가기가 어려웠을 것이야.”

사람들이 의지하는 곳에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기 마련이다. 두리샘에는 하늘나라 옥황상제와 그의 일곱 명의 딸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옥황상제의 딸들은 어느 날부터 피부에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극심한 가려움에 밤잠을 설쳤고, 유능하다는 의원을 찾아봐도 병을 낫게 할 치료법은 오리무중. 옥황상제와 딸들의 시름이 깊어질 무렵, 한 노파가 나타나서 말했다.

“그 병은 약으로는 나을 수 없어요. 신비한 샘물로 몸을 씻어야 합니다.”

옥황상제는 대체 그 샘물이 어디에 있느냐고 노파에게 되물었다.

“저 아래, 땅의 세상에 인간들은 미처 모르는 신비한 샘물이 있습니다.”

마침 계절은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던 한 겨울. 옥황상제와 딸들은 샘을 찾아 나섰다. 오랜 시간 끝에 땅의 세상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샘으로 가는 길을 정해져 있었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만 샘으로 가는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보름달이 뜨길 기다리던 딸들은 두레박을 타고 땅의 샘으로 가 물에 몸을 담갔다. 거짓말처럼 자신들을 괴롭힌 피부의 병이 말끔히 사라졌다.

하지만 지나치면 안하느니 못하다. 욕심은 또 다른 화를 부르는 법. 일곱 딸 중 유독 욕심이 많은 막내는 언니들보다 더 빨리 몸이 낫기를 바랐다. 샘에서 목욕을 하면 더 예뻐질 거라고 믿었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만 샘에 갈 수 있고, 동이 트기 전에 하늘로 돌아와야 한다는 약속이 있었지만 이를 무시한 채 혼자 샘을 다녀온 막내의 행동은 금방 들통 나고 말았다.

화가 난 옥황상제는 “샘물은 땅과 하늘 세상이 서로 욕심 없이 조화를 이뤄 생긴 신비한 물이지만 막내가 욕심을 부렸으니 더 이상 하늘의 사람들은 샘으로 갈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 때부터 딸들은 샘을 이용할 수 없었다. 샘은 오직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몫이 됐다. 피부병을 앓던 많은 이들이 샘으로 찾아왔다. 그 물에 목욕을 하면 말끔히 나았다. 아파한 많은 이들을 치유하며 신비한 효험을 보인 곳, 바로 두리샘이다.


● ‘신비한 물’ 사실은…

중촌마을 두리샘은 윗샘과 아랫샘으로 나뉘어 있다. 마을 중턱에 있는 윗샘이 오랜 기간 상수원 역할을 했다면 마을 입구 근처에 있는 아랫샘은 빨래터로 사용됐고, 때때로 농사에 필요한 물을 제공하기도 했다. 지금은 수풀에 싸여 형체만 겨우 남았지만, 그 주변은 여전히 촉촉한 물의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중촌마을 일대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두리샘에 얽힌 추억 하나씩은 있다. 마을에서 농사일에 한창이던 주민 박일권(48) 씨도 그렇다. 그는 마을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아랫샘의 위치를 정확히 짚어내며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두리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고흥군에는 마을마다 샘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두리샘도 그 중 하나이고. 다만 윗샘과 아랫샘으로 나뉘어 있어서 사람들이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설화에서 두리샘은 병을 치료하는 물이자,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물이라고 전해져 내려온다. 무엇보다 여름에는 차갑고 겨울에는 따뜻한 물을 내뿜는다는 전설은 두리샘을 더욱 신비롭게 한다.

박일권 씨는 “지하에서 올라온 샘물이어서 여름과 겨울의 물 온도가 차이가 나는 것 아니겠느냐. 수도관이 놓이고부터는 샘물을 이용하지 않아서인지 요즘에는 거의 말라버려 안타깝기도 하다”고 했다.


※설화 참조 및 인용: ‘두리샘 이야기’ 김미승, ‘고흥군 설화 동화’ 중


■ 설화


사람들 사이에 오랜 시간 구전(口傳)돼 내려오는 이야기. 신화와 전설, 민담을 포괄한다. 일정한 서사의 구조를 갖춰 민간의 생활사와 풍습, 권선징악의 가치 등을 담은 이야기다.

고흥|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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