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아버지맏이노릇잘할게요

입력 2008-07-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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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버지께서 제일 기대를 많이 했던 맏아들입니다. 하지만 커갈수록 꼭 좋은 학교에 가야 한다는 당부며 기대들이 부담스럽기만 했습니다. 그 무거운 짐으로부터 벗어나고만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쁜 짓도 많이 하고 다녔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였습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담배를 피우면서 당구를 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물어물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우등생인줄로만 알았던 제 모습을 보시고는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그 날 집에 돌아가서는 “이럴 바에는 같이 죽자”며, “네가 이럴 줄 몰랐다”며 저를 힘껏 때리시다 나중에는 흐느껴 우셨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봤습니다. 그 땐 솔직히 아버지의 슬픔도, 왜 저에게 그토록 공부공부 하시는지도 그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입영열차에 올랐을 때 말없이 눈물을 쏟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그 어떤 매서운 회초리보다도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가난한 촌부의 아들로 태어나, 배움이 짧았던 아버지에게 세상은 참으로 비정했습니다. 한여름에도 열이 펄펄 나는 철공소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해도 아버지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너무도 적었습니다. 중학교 때, 수업이 일찍 끝나서 집에 왔는데, 우연히도 그날 아버지께서도 잠깐 볼 일이 있어서 작업복 차림으로 집에 들르셨습니다. 땀에 전 새까만 작업복과 모자, 검정 때가 묻은 검은 얼굴의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모습에 우리 아버지가 일터에서는 저런 행색으로 일을 하시는구나 싶었습니다. 한편으로 가난하고 못 배운 노동자의 아들이라는 것이 증명이라도 되는 것 같아 창피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분노 같은 게 끓어올랐습니다. 하지만 당시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면 “늬 아버지는 맨날 라면만 먹으면서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냐? 그 힘든 일을 군소리 없이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일을 끝내고 집에 오실 때면 늘 막걸리 한 잔씩을 하고 오셨습니다. 그 땐 왜 그렇게 술을 드시는 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 때 막걸리라도 한 잔 안 드셨으면 아마도 온 몸이 아파서 주무실 수도 없었을 겁니다. 저는 무사히 전역을 하고 철이 들었는지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선 5년 전 위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위의 대부분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으셨지만 2년 뒤에 다시 암이 재발했습니다. 지금은 힘든 항암치료를 받으시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계십니다. 평생을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오셨는데 왜 아버지께 이런 일이 생겼는지 그렇지만 제 힘으로는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어서 가슴이 아픕니다. 그럼에도 아버지께선 제가 얼마 전에 하던 가게가 잘 안돼서 빚을 지게 되자 그 빚은 아버지께서 다 갚고 가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른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시다는 말에 얼마 전에 인사시킨 여자와 내년쯤에는 결혼을 하려고 합니다. “아버지, 이대로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제가 결혼하는 것도 보시고 손주들 태어나는 것도 보셔야죠. 아직 못해드린 일이 더 많은데, 전 아직 아버지를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힘든 항암치료 이겨 내시고 부디 이 못난 아들 곁에 조금만 더 있어주십시오.” 대구 동구|고이식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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