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꽃뱀 공주, 부실 왕자…동심 파괴 주의보

입력 2016-03-17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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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난쟁이들’은 동화 속의 캐릭터들을 잔뜩 비틀어 웃음을 안겨주는 코믹극이다. 돈 많은 왕자를 만나기 위해 무도회장에 모인 백설공주, 인어공주, 신데렐라(맨 왼쪽부터)는 반전의 매력으로 관객을 즐겁게 해준다. 사진제공|PMC프러덕션

■ 뮤지컬 ‘난쟁이들’


원작 동화 속 캐릭터 비틀어 현실 풍자
신데렐라 역에 전역산…여장 연기 일품


‘어른이 뮤지컬’이란 타이틀이 눈길을 끈다.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다. 어린이들이 보기엔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작품이란 얘기다.

서울 대학로 티오엠 1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난쟁이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너무나도 친숙한 캐릭터들이다. 난쟁이들은 백설공주에 나오는 그 난쟁이들이다. 이 작품에는 백설공주 외에도 신데렐라, 인어공주가 나온다. 그런데 원작과는 사뭇 다르다. 너무나도 ‘친숙한’ 캐릭터들임에도 지독하게 ‘안 친숙한’ 공주들로 그려진다. 무도회에 모인 공주들은 질투의 여왕들이요 어떻게든 돈 많은 왕자를 꼬셔 팔자를 고쳐 보려는 ‘꽃뱀’들이다. 걸걸한 욕을 입에 달고 산다. 골초 백설공주는 어떠한가. 독 사과를 먹고 긴 잠에 빠진 백설공주가 왕자의 키스를 받고 깨어나 결혼을 하고, 유리구두 발 사이즈가 맞은 덕에 신데렐라가 역시 왕자와 결혼에 성공하고, 사랑하는 왕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어버린 훗날의 이야기. 난쟁이들은 광산에서 하루 종일 보석을 캐는 중노동에 시달리며 산다. 난쟁이 찰리는 동화나라에서 무도회가 열린다는 소문을 듣게 되고 “죽기 전 백설공주를 꼭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는 백설공주 일곱 난쟁이의 유일한 생존자인 노인 난쟁이 빅과 함께 마녀를 찾아가게 된다.

원작의 캐릭터들을 잔뜩 비틀었지만 어쩐지 얄밉지가 않다. 생뚱맞은 공주들조차 보고 있으면 공감이 간다. 왕자를 만나긴 했지만 빈털터리 왕자였던 탓에 재산 다 날리고 결혼반지에 차압딱지까지 붙어야 했던 신데렐라, 부실한 왕자를 만나는 바람에 언제나 뜨거운 육체적 욕망에 시달리는 백설공주, 왕자 살리려다 물거품이 되었다가 간신히 살아나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하며 입을 앙 다문 인어공주. 어떤가. 왠지 남 얘기라고만 하기엔 너무나도 현실적이지 않은가.

신나는 넘버 ‘끼리끼리’를 부르고 있는 왕자들.


배우들의 연기도 레전드급이다. 노래하는 모습이 예쁜 배우로 유명한 최유하는 그동안 보여 주었던 ‘여자 여자’한 모습을 단숨에 털어내고 터프하면서도 육체적 성숙미가 물씬한 백설공주로 변신했다. 쇼케이스 단계에서부터 참여한 유연은 청순가련하면서도 뇌 어딘가에 구멍이 뚫린 듯한 인어공주 역을 참 잘했다.

작곡가 황미나가 쓴 넘버들도 귀에 쫄깃쫄깃하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금수저는 금수저끼리 논다’는 가사의 넘버 ‘끼리끼리’는 중독성이 어마어마해 배우들이 부를 때 객석에서 따라 흥얼거리게 될 정도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세 명의 공주 중 유일하게 신데렐라는 남자배우인 전역산이 맡았다. 이렇게 품위 있게 얄미운 ‘여자’가 세상에 존재할까 싶다. 이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연기는 전역산 신데렐라가 우아하게(?) 소리 쳐서 (난쟁이 잡아가라고) 경비병을 부르는 것이었다. “기용비 비옹(경비병)∼”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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