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①] 장덕철 “韓 정서 녹은 발라드 계속…쉽게 쓸 것”

입력 2019-10-19 1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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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인터뷰①] 장덕철 “韓 정서 녹은 발라드 계속…쉽게 쓸 것”

‘어느 날 깨어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 혹은 ‘벼락스타’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그런 사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나름대로의 노력을 해왔고 그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 대부분이다.

장중혁, 덕인, 임철로 이뤄진 보컬 그룹 장덕철 역시 이런 사례다. 그들은 스스로 정확한 횟수를 말할 수 없을 만큼의 버스킹과 무대를 거쳐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져왔다. 장덕철 ‘그날처럼’의 역주행 그리고 최근 발표곡 ‘있어줘요’의 성과는 그런 노력의 결과다.

“처음에 장덕철로 뭉치게 된 과정은 굉장히 우연이에요. 제가 ‘쇼미더머니’에 나간 걸 보고 장중혁 군이 먼저 연락을 해와 커피 한 잔 하면서 ‘같이 음악을 하자’가 시작이었죠.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자선공연에서 임철의 무대를 보게 됐어요. 또 ‘밥 한 번 먹자’고 해서 그 자리에 중혁 씨를 불렀죠. 장덕철을 결성하기까지 일주일이 안 걸렸던 것 같아요.” (덕인)

이후 이들은 각자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 장덕철이라는 독특한 그룹명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다. “솔로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그룹이라는 반전을 주고 싶었다”는 것이 장덕철이라는 이름을 짓게 된 이유라고.

이렇게 장덕철이 결성되고 이들은 수많은 버스킹과 무대에 섰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배고프고 힘든 시기였지만 가장 순수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서로 손발을 맞추기까지 충돌도 적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멤버들 자체가 개성이 워낙 강해요. 결성 초반에는 주먹다짐 직전까지 갈 정도로 징그럽게 싸웠죠. 임철 형은 맏형이고 중혁이는 본인만의 색깔이 강해요. 그러다 보니 박 터지게 싸우고 서로 기분 나쁘면 두 달 동안 안보기도 하고 그랬죠. 무슨 들개들처럼 싸웠어요.”(덕인)

그럼에도 장덕철은 현재까지 무사히 유지되고 있다. 오히려 같이 고생한 것을 수확하며 열매를 맛보는 중이다. 이 세 사람은 연결해 준 것은 음악 그리고 공연 무대였다.

“결성 후 몇 달 정도 지나고 나서 이 그룹은 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싸우면서도 버스킹을 하는 날은 꼭 지켰으니까요. 한 곳에만 한 게 아니라 하루에도 몇 군데를 옮기며 했었으니 300번은 넘게 했을걸요.” (임철)

“그 때는 목이 쉬어도 나가서 노래 부르고 그랬으니까요. 한 번은 겨울에 수십 년 만의 한파라는 뉴스가 나올 정도의 날씨였는데도 노래를 불렀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버스킹은 계속 하자는 게 우리가 정한 규칙이었으니까요.” (덕인)

그렇게 장덕철은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이름을 알려왔다. 또한, 무대를 찾아다닌 와중에도 장덕철표 음악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장덕철은 스스로 음악을 만들고 가사를 붙인다. 싱어송 라이터로서의 능력을 키운 것이다.

“최대한 쉽게 쓰려고 하는 편이에요, 가사를 쓰더라도 어려운 단어는 쓰지 않으려고 하죠. 10대가 들어도, 30대가 들어도 이해 가능하지만 가볍지 만은 않은 곡들을 쓰려고 해요. 음악적인 이견이요? 리더 권한으로 밀어붙이는 편이긴 한데 멤버 모두 듣는 귀가 비슷해요. (덕인)”


“셋이 만장일치로 나오면 잘 된다 이런 징크스는 없어요. ‘그날처럼’ 같은 경우도 저와 임철 씨 같은 경우는 처음 듣고 살짝 갸우뚱 했던 곡인데 잘 됐거든요. 그리고 또 어떤 곡은 셋이 ‘좋은 것 같다’고 일치를 봤는데 반응이 안 오기도 하고요. 잘 모르겠어요.” (장중혁)

장중혁의 말처럼 대중이란 변덕스러운 집단이다. 사실 대중이 변덕스러운 것인지, 대중의 기호가 변덕스러운 것인지 모르겠다. 이 곡은 왜 히트했는지, 이 그룹은 왜 국민 그룹이 되었는지에 대해 원인을 따지면 늘 미궁에 빠지기 때문.

“사실 지금도 실감을 잘 안나요, 방송 활동을 하지 않다 보니 TV 출연을 자주 하면 ‘아 내가 잘됐구나’ 할 텐데 그건 아니니까요. 다만 분명히 저희 노래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늘어난 만큼 해이해지려고 할 때마다 ‘까불지 마라. 이게 당연한 게 아니다’라는 말을 많이 나눠요.” (덕인)

“예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책임감이죠. 예전에는 돈을 안 받더라도 공연은 즐겁고 행복하게 했었는데 지금은 페이를 받으니 어쨌든 저희 몫은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드는 것 같아요. 부담도 느끼고요.” (임철)


그러나 처지가 변하고, 그들을 대하는 주변이 변해도 장덕철의 목표는 한 가지다. 이에 대해 묻자 덕인은 “1년에 한번은 잘 세공된 좋은 음악을 들려드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저희는 최대한 하루하루 곱씹으며 공감 가는 음악을 만들려고 해요. 누구나 느끼는 건 다르겠지만 한번쯤은 겪었을 법한 상황들을 소재로 곡을 만들죠. 아직 논란을 겪고 난 뒤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시기지만 언젠가 많은 분들에게 예쁨을 받을 때까지 한국 정서가 녹아있는 발라드에만 집중하려고요.”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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