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왕’ 딛고 ‘남산’으로, 우민호 감독 “모든 걸 갈아 넣었다”

입력 2020-01-28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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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은 “배우는 물론 스태프 모두 장인정신을 발휘해 완성했다”고 자부했다. 관객도 호응하며 27일 누적 300만 명을 돌파했다. 사진제공|쇼박스

■ 개봉 6일만에 300만 관객 쏜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동명 원작 읽고 영화화 결심…25년만에 결실
판권 구입 때부터 ‘이병헌 없인 접겠다’ 생각
최고 권력자들 초상화 그리듯 디테일한 연출
다음 작품은 순수한 상상력의 장르영화 고민


“모든 걸 갈아 넣었다”는 우민호 감독(49)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비극적 현대사에 얽힌 인물들의 내면을 파고드는 그의 영화 ‘남산의 부장들’(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이 설 연휴 극장가에서 개봉 6일 만인 27일 누적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대중과 통하고 있다. 극강의 섬세함을 과시하는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 역사적 사건에 대한 판단과 해석을 온전히 관객에 맡긴 감독의 선택 덕분이다.

우 감독은 군 복무를 마치고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복학한 1996년, 원작인 동명의 논픽션 베스트셀러를 읽고 “충격과 궁금증”에 이끌려 영화화를 결심한 지 꼬박 25년 만에 결실을 맺고 있다. “강박증에 시달리듯, 신경쇄약에 걸린 듯 작품을 완성했다”는 그는 “훗날 ‘남산의 부장들’의 연출자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우 감독과 만남은 설 연휴 흥행 성적표를 받아들기 전 이뤄졌다. 마침 개봉일인 22일이었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우 감독은 개봉 전부터 호평을 받는 상황을 애써 모르는 척했다. 전작인 ‘마약왕’의 “실패”로 얻은,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교훈이라고 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이병헌(왼쪽)과 곽도원. 사진제공|쇼박스




● “영화가 역사의 사건에 갇히기를 원하지 않았다”

우민호 감독은 “‘우리의 근현대사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를 빼놓고 논할 수 없다’는 말에 백번이고 동의한다”고 했다. 원작자 김충식 가천대 부총장을 인용한 말이다.

“‘내부자들’이나 ‘마약왕’을 찍을 때만 해도 뜨거운 피가 돌았어요. 이번엔 차갑게 누르면서 ‘반드시 잘 찍고 말리라!’ 그런 심정으로 줄다리기했습니다. 하하! 원작의 톤에 전적으로 공감해요. 흥분하지 않으면서도 냉정한 날카로움을 유지하려고 했어요.”

‘남산의 부장들’은 18년간 절대권력을 누린 대통령이 저격당한 사건을 전후한 40일간의 이야기다. 권력의 2인자로 군림한 전현직 중앙정부보장 김형욱과 김재규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을 모델 삼은 감독은 김규평(이병헌), 박용각(곽도원), ‘박통’(이성민) 등 인물을 통해 상상력을 확장했다. 시간차의 실제 사건도 같은 시기로 재구성해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영화가 역사적인 사건에만 갇혀있기를 바라지 않았다”는 감독은 “역사의 벽을 넘어 관객이 10·26사건을 좀 더 다른 시선으로 해석 할 수 있길 바랐다”고 말했다. 그만큼 설계는 치밀해야 했다.

“박용각의 파리 실종 사건과 김규평의 10·26사건을 전혀 별개로 여겼는데 불과 20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에요. 두 사건엔 중앙정보부가 깊이 개입돼 있고요. ‘각하’를 위한 ‘충성’이 며칠 만에 ‘총성’으로 바뀐 거죠.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바로 그 궁금증이 이 영화를 만들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감독은 디테일의 힘도 과시한다. 전현직 중앙정보부장을 마치 한 인물처럼 보이도록 한 설정 속에 의미도 숨겨 놨다. 파리에서 최후를 맞는 박용각은 왼쪽 구두가, 사건이 벌어진 ‘안가’ 속 김규평은 오른쪽 구두가 각각 벗겨지도록 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최고의 권력자들이 구두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가는구나, 그런 마음으로 찍었다”는 그는 “망자들을 불러오는 작업이기에 초상화를 그리듯 연출했다”고 말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감독 우민호. 사진제공|쇼박스




● “이병헌? 신이 준 선물!”

우민호 감독은 2010년 ‘파괴된 사나이’로 데뷔해 2012년 ‘간첩’을 내놓았다. “두 편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2015년 ‘내부자들’(900만여 명)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한국영화 최고 기록을 수립하면서 흥행감독이 됐지만, 2018년 ‘마약왕’으로 다시 고배를 마셨다. ‘남산의 부장들’은 다섯 번째 작품이다.

“전작들과 달리 이번엔 모든 걸 완벽하게 컨트롤하고 싶었어요. 10·26사건 자체가 강박적인 이야기인 만큼 찍는 동안 연출도 강박적으로 통제했습니다. 미리 약속한 톤과 색채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않도록, 배우들의 애드리브 한 마디도 허용하지 않았어요.”

얼마나 강박적이었는지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했다.

“비 오는 날 김규평이 안가로 잠입해 도청하는 장면은 4분 남짓이죠. 안경 밑에 붙은 물방울 하나가 떨어질까 말까 하는 긴장감이 중요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물방울이 떨어집니다. 그러면 ‘컷!’ 외치고 물방울 다시 붙여요. 이전과 다른 모양이면 다시, 또 다시.(웃음) 하루 종일 물방울과 배우의 예민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몰입했어요.”

‘내부자들’과 ‘남산의 부장들’을 함께 한 배우 이병헌은 우민호 감독의 생각을 현실로 구현한 인물이다. 두 사람의 시너지는 매번 폭발적이다.

“저에게 이병헌이란? 흠∼, 하∼. 신이 준 선물? 너무 갔나요? 하하하! ‘내부자들’이 안됐으면 제 영화 인생이 거기서 끝났을 수도 있어요. 20년 동안 꿈으로 품었던 이야기를 영화화하려고 판권을 구입할 때부터 ‘이병헌이 하지 않으면 접는다’는 마음이었어요. 이병헌 말곤 아무도 없다는 생각으로 캐스팅에 달려들었죠. 이병헌은 피부의 변화, 미세한 떨림으로 극단으로 소용돌이치는 인물의 내면까지 표현해냈어요.”

배수진을 치고 매달린 작업은 우 감독에게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그는 “감독의 위치나 역할, 역량이 뭔지, ‘남산’을 통해 구체화하고 있다”며 “고통을 감내할지언정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그림은 점차 선명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최근 세 편의 영화를 통해 현대사에 얽힌 인물, 사회적인 메시지나 정치적인 실화에 주력해온 감독은 “몇 년간 쉼 없이 달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다”고 토로하면서 “다음엔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순수한 장르영화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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