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 “‘이브’=선물, 답답했던 내게 찾아온 신세계” (종합) [DA:인터뷰]

입력 2022-08-07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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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광기 어린 모습은 존재한다. 발현 지점에 따라 평가와 해석이 달라진다. 배우 유선에게 광기는 연기다. 집착하게 되고 잘하고 싶다. 배우로서의 쓰임이라는 연기는 유선이 대중에게 존재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쓰임을 다하고자 했던 tvN 수목드라마 ‘이브’(연출 박봉섭 극본 윤영미)는 유선에게 남다른 감정을 선사한다.

“‘이브’를 만난 것 자체가 제겐 선물이에요. 7~8개월 촬영하다가 마지막 촬영을 하고 마지막 방송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있었어요. 촬영은 끝났지만, 방송은 계속되고 있으니 한소라와 이별할 준비가 되지 않더라고요. 계속 한소라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아요. 한소라를 꺼내고 되짚어 보니 울컥하네요. (울먹이며) 아직 미련이 남아요.”

시원섭섭함보다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유선에게 ‘이브’는 드라마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유선의 답답함을 풀어준 명약이라고 해야 할까.

“언제부턴가 답답함이 있었어요. 정체된 느낌이요. 뭔가 뚫고 나가야 하는데 그 기회가 없더라고요. 연기에 대한 고민도 많았고요. 그래서 저를 되짚어 보기 위해 13년 만에 연극을 하게 됐어요. 연극 공연을 하는 동안 저를 재점검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때 ‘이브’가 절 찾아왔죠. 대본을 봤을 때 촬영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더라고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장면, 감정, 에너지가 ‘이브’와 한소라에게 있었어요. 지금껏 해보지 못한 캐릭터였어요. 설레더라고요. 신세계를 만난 느낌이었죠. 그래서 한소라를 잊지 못해요. 한소라가 되기 위한, 한소라로 보낸 시간이 아직 제게 남아 있어요.”

설레는 작품을 만났지만, 연극과 드라마를 병행하는 작업은 숨이 막힐 정도로 벅찼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두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며 에너지를 쏟는 게 힘들었어요. 13년 만의 연극인데다, 2인극으로 100분가량을 끌어가야 해요. 김신록, 김여진 배우와 함께 캐스팅돼 더 부담됐어요. 평일 5일은 연극 연습을, 주말에는 드라마를 준비했어요. 두 작품에 올인한 셈이죠. 몸무게도 4kg 정도 빠졌어요. 고시생처럼 대본을 공부했던 것 같아요. 자다가 벌떡 일어나 대본을 보기도 했어요. 정말 가족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어요. 남편에게 특히 감사해요.”




유선은 자신을 믿어준 박봉석 감독에 대한 감사함도 잊지 않았다. “누구나 하고 싶고 좋은 캐릭터였어요. 제게 출연 제안이 온 작품인지 의심됐어요. 회사에서 노력해 얻어낸 작품이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캐스팅된 이후에 감독님에게 물었죠. ‘이 작품이 제게 온 것이 맞아요?’라고요. 감독님이 제가 ‘원픽’이었다고 하세요. 1순위라고요. 다른 배우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뚝심 있게 저를 택했대요. ‘솔약국집 아들들’, ‘검은 집’, ‘어린 의뢰인’ 등 제 출연작을 보고 저와 작업하고 싶었다고 하세요. 한소라에게서 제가 떠올랐대요. 증명하고 싶었어요. 절 믿어주는 감독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요.”

이렇게 이를 악물고 악녀 한소라로 변신한 유선. 그 변신은 ‘성공’이었다. 정치계 최고 권력자의 외동딸이자 강윤겸(박병은 분) 아내이자 화려한 겉모습 속에 정서적 불안과 남편에 대한 집착을 지닌 한소라를 현실감 있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이브’ 마지막 회(16회)에서는 광기 어린 한소라 모습은 압권. ‘조커 소라’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너무 좋은 장면이고 잘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광기 어린 느낌을 살리면 섬뜩하게 보일 것 같았어요. 이혼 통보를 받은 한소라가 거울 속 자신이 초라하다고 생각해 더 광적으로 화장하는 모습이에요. 화도 나고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나는 온갖 감정이 교차하는 장면이죠. 최대한 감정에 집중해 연기했어요. 집에서 연습할 땐 펑펑 울기도 했어요.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촬영했는데 집에서 연습했던 감정이 똑같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또 똑같이 울었죠. (웃음)”

한소라는 여느 작품 속 악녀와 사뭇 다르다. 철없는 아이 느낌이랄까. 어떤 상황을 분석하기보단 감정에 치우친 분노를 표출한다.




“배우들 명연기로 탄생한 ‘레전드 악역’이 많아요. 한소라 만의 특색이 필요했어요. 지금껏 보지 못한 악역이요. 대본을 보는데 눈에 띈 점이 천진함이었어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아버지 한판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면서도 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딸이요. 순전히 아버지 한판로 목적에 키워진 딸이 한소라더라고요. 어른이지만 어른이 되지 못했어요. 아버지에게 학습되어 경쟁자를 짓밟고 무시하는 경향을 보여요.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친절하게 먼저 다가오는 이라엘(서예지 분)에 손쉽게 마음을 내어주죠. 아버지에게 폭행당하면서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아버지를 가장 먼저 찾아요. 아이 같은 어른이죠. 악인이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워요. 사랑받지 못한 어른의 모습.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그렇게 시작된 한소라예요.”

어떤 배우든 열정을 쏟은 캐릭터를 애정하기 마련이다. 유선도 그렇다. 작품에서 악인이지만, 유선에게는 인생 캐릭터인 동시에 최애(최고로 애정하고 아끼는, 애착하는) 캐릭터’다.

“이렇게 사랑한 캐릭터가 또 있을까 싶어요. 모든 캐릭터를 사랑하고 기억하지만, 한소라처럼 애정과 열정을 쏟은 캐릭터는 처음이에요. 현재 제 최애 캐릭터는 한소라예요. 배우로서 연기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았을 때 만난 캐릭터이고, 그 고민을 뚫고 나갈 수 있게 해줬어요. 비상구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니 더 애정이 갈 수밖에 없어요.”



유선은 ‘이브’를 통해 배우 전환점을 맞은 듯하다.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이들에게 보답의 연기를 하고 싶다. “배우는 가능성을 믿어주는 이들에 의해 발굴돼요. 지금껏 보여준 모습을 답습해 캐스팅됐지만, 보여주지 않은 제 가능성을 믿고 작품과 캐릭터를 맡겨준 이들에게 감사해요. ‘이브’를 통해 현장에서도 스태프들 응원을 가장 많이 받았어요. 이렇게 행복했던 촬영장이 있었을까 싶어요. 오랫동안 제 가슴으로 기억될 작품과 현장이에요. 한소라를 연기하면서 많은 에너지를 썼지만, 반대로 큰 힘도 얻었어요. 이 힘을 다음 작품에서 쏟아내야죠. 또 저를 믿어주는 이들을 위해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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