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조선의 4번타자] 늘 진심이었던 형, 형이 ‘이유’였던 동생…“또 볼 테지만, 내내 보고 싶을 대호 형”

입력 2022-10-08 06: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롯데 정훈. 스포츠동아DB

“(이)대호 형은 알거든요. 제가 너무 힘들게 야구해온 걸 아니까 동생이 그저 잘 살았으면 좋겠는 거예요.” 정훈(35)은 이대호(40·이상 롯데 자이언츠)와 우애를 느낀다. “형제 같다”고 할 정도다. 이대호가 2017년 국내무대로 복귀할 때, 정훈이 지난 시즌 뒤 생애 처음으로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었을 때, 이들 2명은 서로를 끌어당긴 큰 힘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함께 뛰는 것만 바라는 데 그치지 않았다. 정훈은 “형은 ‘더 나은 환경, 더 좋은 대우가 있는 곳에서 뛰길 바란다’고 했다. 동생을 정말 위하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진심이었다”고 말했다. 정훈이 이대호와 ‘마지막’을 더욱 아쉬워하는 이유다.


●“이대호라는 사람, 내가 야구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저도 처음에는 대호 형이 너무 어려웠죠.” 이대호를 롤모델로 삼는 후배는 많다. 그런데 선뜻 다가가기 어렵다. 연차가 크거나 그간 이룬 업적이 커 벽이 생긴 듯하다. 정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생각 차이다. 나는 단지 배우고 싶었다. 잘하는 사람에겐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최고 선수였으니 형이 더 궁금했다. 무서운 것보다 궁금한 게 더 컸다. 당당하게 다가가다 보니 일주일 만에 성격을 알았다. 절대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는다. 그 점이 야구에도 큰 영향을 미치더라. 형과 뛴 지 10년 넘었어도 늘 똑같다. 그래서 더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정훈은 이대호의 은퇴를 떠올리면 2017년 복귀 당시를 생각한다. 그는 “기억할 순간들은 무수히 많지만, 그 시기가 유독 떠오른다. 그때 형과 다시 함께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며 “내가 FA 자격을 얻은 뒤에도 많은 조언을 구했다. 형은 매일 같이 전화해 ‘밥 잘 챙겨 먹고 있나’라고 걱정해줬다. 첫 FA였으니 내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을지 다 알고 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도 형에게 더 많이 의지했다. 대호 형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대호라는 사람에게 많이 의지했다. 내가 지금도 야구할 수 있는 이유 중 형이 가장 큰 이유다”라고 전했다.

롯데 이대호. 사진제공 | 롯데 자이언츠



●“또 볼 테지만, 야구하며 사는 동안 내내 보고 싶을 형”

정훈은 이대호의 얼굴을 제대로 못 본다. 본 적 없는 표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퇴시즌까지 화려하게 장식해 아쉬움이 두 배다. 빈자리가 클 게 분명하다. 정훈은 지난해 이대호가 맡던 4번타자로 뛴 데다 고참 역할까지 해 이를 더 잘 이해한다. 그는 “누군가 채우겠지만, 모른다. 형은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화려하게 간다. 내년 되면 형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질 것 같다”며 “존재만으로도 엄청 큰 선수다. 경기장 안에서만 아니라 밖에서도 존재감이 컸다. 형에게 의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 무게를 나와 (전)준우 형이 나눠 짊어져야 하는데, 대호 형의 공백이 없을 순 없을 거다. 은퇴해도 자주 볼 테지만, 내가 야구하며 사는 동안 내내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할 형”이라고 말했다.

정훈은 이대호가 은퇴 이후 바쁘게 살길 바란다. 야구장 밖의 삶을 만끽하면 좋겠다는 뜻이다. 그는 “형이 ‘내년 시즌 중 영상통화를 걸겠다’고 하더라. ‘너는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나는 아이들과 바닷가에서 쉬고 있다’고 하겠단다(웃음). 형은 지금까지 그런 삶을 살아본 적이 없지 않나. 또 여기저기서 형을 찾는 사람도 많을 거다. 방송 출연도 많이 하지 않을까. 그러면 ‘첫 게스트는 무조건 너’라고 했다(웃음). 야구장에서 잘 못 봐도 TV로 질리게 보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며 웃었다.

김현세 기자 kkach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