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800만 눈앞 ‘엑시트’ 이상근 감독 “인간애에 찬사 보내는 작품 하고 싶다”

입력 2019-08-21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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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영화 연출을 준비하며 자신의 경험을 녹여낸 ‘엑시트’의 이상근 감독은 “빠른 호흡과 리듬으로 여름시장을 격파한다”는 당초 목표를 흥행으로 성취했다. “매일 자조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밤”을 보내고서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데뷔작으로 대박…800만 눈앞 ‘엑시트’ 이상근 신인감독의 통쾌한 반란

20여 년간 품어온 영화감독 꿈
첫 작품 준비에 9년 세월 보내
청년들 현실 보여주고 싶었죠
요즘 ‘핵인싸’ 된듯…신나네요


지금까지 이런 성과는 없었다. 해마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여름 극장가에 대담하게 데뷔작을 내놓은 신인감독이 통쾌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800만 관객 동원을 앞둔 영화 ‘엑시트’의 이상근(41) 감독이다. 스무 살 때 감독이 되려 마음먹고 20년간 꿈을 포기하지 않은 끝에 거둔 값진 결실이다. 기록 행진이 이어지던 7일 오후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제작사 외유내강 사무실에서 만난 이 감독은 “비교할 만한 감정이나 대상이 없어서인지 지금은 그저 얼떨떨하다”며 웃었다.


● “‘감독 연습생’의 시간들…”

이상근 감독은 대학원을 졸업한 2010년 이후 본격적으로 상업영화 연출을 준비했다. 첫 작품을 내놓기까지 보낸 9년을 돌이키면서 “감독 연습생 같았다”고 말했다. 오디션프로그램 ‘프로듀스101’의 애시청자라는 그는 “매번 울먹거리면서 연습생의 경쟁을 봤다”고 했다.

“감독 준비하는 사람들끼리는 대부분 근황을 알거든요. 누가 데뷔했고, 누가 데뷔를 준비하다가 잘 안됐는지. 시기와 부러움, 질투가 뒤섞이는 과정이죠. 그래도 조급하진 않았어요. 다만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강했어요. 영화 하나만 봤어요. 부모님께 죄송해서 스스로 더 박하게, 냉정하게 굴었어요.”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는 주인공(조정석)이 어머니 칠순잔치 도중 닥친 유독가스 테러 상황을 뚫고 나가는 재난탈출극인 ‘엑시트’는 서사에 기댄 영화는 아니지만 짧고 빠르게 지나가는 상황과 인물들을 통해 뒷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미덕이 있다. 이른바 ‘유튜브 세대’에 맞춤한 영화적 감각,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 감독의 실력이 바탕이 됐다.

실제 이상근 감독은 중·고등학생 때부터 콩트를 쓰고 만화를 그리고 라디오 대본을 썼다. “친구들은 토익 공부하고 취업 준비하는 와중에도 감독이 되길 바랐다”는 그를 평생 지켜본 어머니는 때때로 “방문을 열고 ‘그때 영화과 가게 놔두는 게 아닌데!’라고 버럭 하실 때도 있었다”고 했다.

영화 ‘엑시트’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타고난 기질과 켜켜이 쌓은 재능은 대학과 대학원 때 만든 여러 단편영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실력을 먼저 알아본 이가 바로 ‘엑시트’의 제작자이기도 한 ‘베테랑’ 류승완 감독이다. 2012년 구상해 시나리오를 완성한 이 감독은 2015년 “용기를 내” 류 감독을 찾아가 평가를 부탁했다. ‘엑시트’의 시작이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사실 그보다 더 오래됐다. 류 감독은 2006년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이 감독의 단편 ‘베이베를 원하세요?’에 최우수상을 줬다. 당시 영화는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류 감독은 탈락한 작품들을 굳이 다시 살핀 끝에 이상근 감독의 영화를 찾아냈다. 이후 이 감독은 류 감독의 영화 ‘다찌마와 리-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연출부로 경험을 쌓았다.

“그때 촬영현장에서 류 감독님의 현장 장악력은 뛰어났어요. 용장 같고 맹장 같았죠. 저는 그게 너무 무서웠어요. 하하. 시나리오를 쓰고 절박했어요. 모니터를 부탁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고요.”

처음 ‘결혼 피로연’이란 제목이었던 ‘엑시트’는 피로연에서 벌어지는 젊은이들의 소동극이었다. 지금 상영 중인 영화와 비교하면 ‘도심에서 유독가스 재난 상황이 발생한다’는 콘셉트 외엔 전부 달라졌다. 선배 연출자이기도 한 류승완 감독의 현실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조언, 베테랑 제작자인 외유내강 강혜정 대표의 견고한 손길을 통해 완성도를 높였다.


● ‘효도영화’라는 평가 뜻밖…호평보다 혹평에 눈길

800만에 이르는 관객수가 증명하듯 ‘엑시트’는 혹평보다 호평을 더 많이 받고 있다. 가족이 함께 보는 영화, 무해한 ‘효도영화’라는 평가도 받는다. 매일 실시간으로 반응을 살피는 이상근 감독은 “공존하는 호평과 혹평 가운데 아무래도 혹평에 더 눈이 간다”고 했다.

“댓글의 대상화가 처음 돼 보잖아요. 상처가 크더라고요.(웃음) 혹평을 일부러 찾아봐요. 다음 성적을 위해서? 하하! 금기의 서적을 보고 싶은 마음 같기도 하고요.”

영화 ‘엑시트’ 이상근 감독.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그럼에도 ‘엑시트’는 청년세대의 ‘짠내 나는’ 분투가 자아내는 뭉클한 감동, 이들을 향한 응원의 움직임도 형성하고 있다. 관련한 해석도 다양하지만 감독은 “청춘이란 말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픔이나 성장, 참아야 한다는 프레임에 가둬두는 단어 같아요. 청춘은 늘 힘들어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도 ‘너흰 할 수 있어!’ 그런 위로는 쓸데없다고 봤어요. 단지 있는 그대로 현상을 말하고자 했죠.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달리는 모습을 통해 ‘열심히 뭔가를 하는 청년이 있다’는 걸 내보이고, 감정이 싹 씻겨나가는 듯한 해소를 주고 싶었습니다.”

의욕이 앞서는 취업준비생 조정석을 둘러싼 현실 공감 에피소드는 대부분 이상근 감독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됐다. 최소한의 밥값을 하기 위해 설거지나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애써 다듬은 머리카락 속으로 엄마의 손이 불쑥 들어와 가르마를 마음대로 바꾸는 장면까지 전부 경험담이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안 했을까…. 그건 아니에요. 오리지널에 대한 집착이 있어서 인지 창작자로서 나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인간성에 찬사를 보내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창작자로서 명예욕 비슷한 것도 있죠.(웃음) 약간 ‘핵인싸’가 되고 싶은? 하하!”


● 이상근

▲ 1978년생
▲ 1999년 성균관대 영상학과 입학
▲ 2004년 단편 ‘감상과 이해, 청산별곡’·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 2006년 단편 ‘베이베를 원하세요?’·미쟝센단편영화제 희극지왕 최우수작품상
▲ 201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전문사 연출 전공
▲ 2010년 단편 ‘간만에 나온 종각이’·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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