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크러쉬 “과거 무대 두렵고 소모품 같다 느껴”

입력 2019-12-07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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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인터뷰] 크러쉬 “과거 무대 두렵고 소모품 같다 느껴”

최근 음원차트를 둘러싼 일련의 잡음이 안타까운 까닭은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불이익을 받는다는 불쾌함에 있다. 여기에 하나의 이유를 더 하자면 이런 기현상으로 인해 대중이 서서히 그 누구의 음악도 믿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크러쉬의 음악은 다르다. 그는 꾸준히 차트에서, OST에서, 다른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그 가치를 증명해 왔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는 혼돈 속에서 크러쉬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5년 6개월 만에 정규 2집을 내게 됐어요. 싱글이나 EP 앨범과는 사이즈부터가 다르다 보니 부담이 좀 크네요. 지금도 긴장이 너무 심해서 위가 꼬일 것 만 같아요. 만감이 교차하네요.”


앨범 준비만 무려 3년, 크러쉬는 정규 2집 ‘프롬 미드나잇 투 선라이즈(From Midnight To Sunrise)’에 12곡을 눌러 담았다. 그는 “내 영혼을 갈아넣은 앨범”이라고 자신했다.

“구상은 3년 전에 시작했어요. 어느 날 여름에 반려견과 새벽 산책을 나갔어요. 아침 6시가 조금 못 됐을 때 동쪽에는 태양이 떴는데 서쪽에서는 아직 저녁 같더라고요. 그 중간에 서서 사색을 하면서 앨범에 대한 힌트를 얻었어요. 아주 이른 새벽부터 그 다음날 늦은 새벽까지 들을 수 있는 곡들을 배치했어요.”

이렇게 크러쉬는 확실한 주제를 정하고 앨범 제작에 돌입했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 실리지 못한, 그의 표현을 빌리면 ‘냉장고에 저장해 둔 곡들’이 한 가득이다. 그만큼 크러쉬의 고민과 생각이 많이 반영된 앨범이라는 의미다.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예전에는 다이나믹함을 주는 것에 신경을 못 쓴 것 같은데 이번엔 강약 조절을 잘 해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면서 많은 배움이 있었죠.”

실제로 크러쉬는 이번 앨범의 더블 타이틀곡 Alone(얼론)’과 ‘With You(위드 유)’에는 그런 그의 변화가 녹아있다. 90년대 감성에 흠뻑 젖은 크러쉬의 음악은 묘하게 파격적이다.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많이 했어요. 3년 전부터 LP(엘피) 판을 모았는데 아날로그한 매력뿐만 아니라 LP로 들었을 때만 건드려지는 감성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의 음악들은 어떻게 녹음했고 어떤 악기들을 썼는지 공부했어요. 그 때 당시 뮤지션들이 쓰던 신디사이저도 8개 정도 사고 적재적소에 하모니와 코러스를 쌓아 완성했죠.”

최근 가요계에는 90년대 음악 스타일은 요즘의 방식으로 녹여내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크러쉬 역시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가 서서히 올라오는 유행을 타려고 흉내에 집중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학습하고 고민하면서 크러쉬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특히 이번 크러쉬의 정규 2집이 완성되는 가운데 그에겐 몇 가지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싸이가 대표인 피네이션으로의 이적, 그리고 그의 말을 빌리면 “서서히 좋아지고 있다”는 마음의 병.

“싸이 님은 테크니컬한 부분을 짚어주기 보다 전체적인 밸런스를 맞추는데 큰 도움을 주셨어요. 오히려 저보다 큰 그림을 봐주시더라고요. 특히 사운드적인 부분의 이해도가 높아서 많은 도움을 받았죠. 이 앨범에 도움 주신 분 중에 또 홍소진 씨라고 건반 세션으로 유명한 분이 있는데 정말 음악적으로 많은 영감을 주고 받았어요. 이번 앨범이 완성되는데 일등공신이라고 봐야죠.”

이어 크러쉬는 한때 그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음을 고백했다. 그는 “특정 시기에 무대에 서는 것이 너무 무섭고 내가 소모품처럼 느껴지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부분이 음악적으로 전 아직 방황 중이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는 점이에요. 궁극적으로는 건강하게 오래토록 음악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됐어요. 이전의 가치관과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죠.”

이에 대해 크러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전에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았고 그렇게 음악을 했다. 지금은 목숨을 다하는 날까지 즐겁게 음악을 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이렇게 아프고, 고민하면서 대중의 곁에 음악을 들려주며 20대를 보냈다. 크러쉬가 20대의 끝자락에서 돌아본 그의 20대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 여행을 떠나기 전에 탑승 수속을 밟는 젊은이가 아닐까요.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르는 모습이요. 지금도 계속 답을 찾고 있고 뚜렷한 목표 의식도 없지만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올라온 것 같아요.”

사진=피네이션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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