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간호중’ 민규동 감독 “고통 받는 AI, 가장 인간답다고 생각”

입력 2020-09-04 09: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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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간병로봇 이야기
학습된 인간성, 인간에 대한 집착과 오류
인간 : AI = 지배계급 : 피지배계급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간병로봇이 있다. 보호자를 꼭 닮은 AI ‘간호중’의 이야기다.

최근 MBC 시네마틱드라마 시리즈 ‘SF8’이 공개됐다. ‘SF8’은 민규동 감독의 ‘간호중’으로 그 포문을 열었다. ‘간호중’은 문숙과 딸 연정인(이유영 분)을 수년간 돌본 고급형 간병로봇 간호중(이유영 분)의 이야기를 담았다.

극중 간호중은 기계로 생을 연명 중인 문숙과 오랜 간병 생활에 지쳐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하는 연정인 중에 누구를 살릴지 고민에 빠진다. 이 과정에서 윤리의식과 감정, 애착까지 인간의 면모를 닮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변해가는 간호중을 통해 관객은 자연스럽게 간호중의 고민에 동화된다. 즉 SF 장르지만 과학적 상상력 보다는 철학적 고민을 더 깊게 들여다본 작품이다.

동아닷컴은 ‘간호중’ 연출을 맡은 민규동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연출 의도와 작품 속 상징 등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 ‘간호중’이 던지는 질문, 안락사와 인간의 착취
민규동 감독은 ‘간호중’을 통해 두 가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민 감독은 “가장 큰 이야기는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다. ‘생명을 거둘 수 있는 권한이 신의 영역에만 있는 문제인가?’,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할 거 같은데 그건 왜 비윤리적인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전했다.

그러면서 민 감독은 “인간에게 한낱 기계에 불과한 로봇에게 마음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생각했다. ‘로봇에게 인간성이 생긴다면 학습된 것일지라도 인간과 동등하게 인격을 부여하고 공생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들이 다른 종족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지배계급과 피지계급을 노예화하던 게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 있다. AI의 존재가 인간에게 그런 식으로 하층계급(일방적인 착취 대상)이 아닌가 하는 SF적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 보호자를 닮은 간호로봇, 人生을 돌아보는 자극제
‘간호중’은 소설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를 원작으로 한다. 다만 원작과는 간병인의 성별과 외모 설정이 다르다. 간병인은 여자에서 남자로, 간병로봇은 간병인의 외모와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민규동 감독은 “현실에서 돌봄 노동의 부담을 여성들이 훨씬 많이 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등장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간호중과 소통을 하는 사람도 수녀가 났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간호로봇이 환자의 보호자와 같은 외모를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민 감독은 “환자 입장에서 생각을 해봤을 때 기계가 자길 돌보는 반감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가족이 자길 간병해주는 거였다. 보호자 모습을 스캔해서 보호자가 원하는 스타일을 제공해준다는 설정이다”라고 답했다.

오랜 간병 기간 동안 보호자는 늙지만 간병로봇의 변함없이 젊은 외모를 유지한다. 민규동 감독은 “나이든 보호자는 로봇에게서 간병을 처음 시작했을 때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연정인은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로봇을 통해 자신은 나이만 들어가고 간병에 발목 잡힌 인생을 돌아본다. 즉 로봇의 외모가 인생을 돌아보는 자극제로 작용했다”고 상징성을 풀어냈다.

● 로봇의 감정선, 퀴어적 감정교류
로봇이 감정을 갖고, 돌봄 대상과 동성애적 감정을 나눈다는 점도 원작과는 두드러진 차이다. 민 감독은 “긴 시간동안 보호자가 로봇에게 의존을 하고 로봇은 감정을 학습한다. 로봇이 돌봄에 최선을 다 한다면 인간과 구분이 사라지는 시점이 온다고생각했다. 연정인이 ‘너밖에 없다’고 할 때 간호중은 묘하게 미소를 띈다. ‘내가 이 사람에게 유일한 존재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묘하게 인간을 닮기 위해 노력하는 로봇의 맥락에서 퀴어적 감정 교류가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민 감독은 간호중이 연정인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진 터닝 포인트로 “간호중의 이름을 불러줬을 때”를 꼽았다. 그는 “주로 모델명으로 불리는 기계에 불과한 간호중이 이름을 받는 순간부터 특별한 존재라고 느낀 거 같다. 그때부터 진심으로 연정인을 케어하려고 노력하고 딥러닝을 하려고 한 게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 간호중의 인간성과 오류
인간성을 학습한 간호중은 점차 고뇌에 빠졌고, 끝내 오류가 난다. 이때 간호중은 절규하고 고통에 몸부림친다. 인간성은 곧 AI에게 오류였다.

민규동 감독은 “인간다움을 가진 간호중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떤 지점이 인간과 가장 가까울까 생각했을 때 로봇도 고통을 가지면 인간과 가까울 거라 생각했다. 연정인의 배신에서 오는 가슴 아픈 느낌. ‘이게 고통이구나’ 깨닫는 장면. 그 고통이 너무 크고 숫자로 파악했던 고통과 다르게 사무치게 느끼는 고통의 영역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동아닷컴 함나얀 기자 nayamy9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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