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미나 인터뷰①]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 그가 떠나야 했던 진짜 이유

입력 2020-10-14 13: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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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에세이 펴낸 손미나, “여행기 아니기에 사진은 한 장도 없죠”
태국에서 쿠바로, 코스타리카로, 이태리로, 다시 태국으로
번아웃 되어버린 마음을 달래기 위한 100일 간의 행복 찾기


“대학 시절 별명 중 하나는 ‘계획녀’였다”.

첫 문장에서부터 그만 ‘훅’ 빨려 들고 말았다. 마치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던 김훈의 ‘칼의 노래’ 첫 문장 같았다. 문장 자체가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것은 ‘계획’이란 단어가 가진 반어적 의미 탓이다. 누구나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계획을 세우고, 허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만은 계획 없이 살 줄 알았다. 아니, 계획은 있어도 잡혀 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획을 세워놓지 않고는 조바심에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니. 다음 날 할일의 목록부터 입을 옷까지 모두 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던 계획녀였다고? 그가? 그 사람이? 손미나가?

10년 간 잘 다니던 방송국에 장기 휴직계를 던지고 스페인으로 날아갔던 일은 지금 돌이켜보면 ‘신의 한수’ 못지않은 ‘손의 한수’였다. 귀국 후 바르셀로나에서의 유학 생활을 담은 책 ‘스페인, 너는 자유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아나운서 손미나’는 자연스럽게 ‘작가 손미나’로 전환되었다. 이후 휴직계는 사직서로 바뀌었고 손미나는 세계를 누비며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미나를 여행작가(본인은 여행가로 불리는 것을 선호한다)로만 묶어두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그가 갖고 있던 명함 리스트를 보면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서울교장’, ‘허핑턴포스트 코리아편집인’, ‘손미나앤컴퍼니 대표’, ‘소설가’ 등이 눈에 띈다. 지금까지 열 두 권의 책을 냈지만 여행 관련 책은 이중 절반 정도이다.



이 인터뷰에서는 이 많은 직함 중 ‘작가’ 하나를 꺼내어 쓰기로 한다.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

손미나 작가가 이번에 낸 책의 제목은 그대로 자신에 대한 처절한 고백이었다. 태국의 아름다운 리조트로 모처럼 휴가여행을 떠난 손미나는 마치 유체이탈을 경험하듯 제3자의 눈으로 자신의 무의식을 목격하게 된다. 그는 적막함으로 가득한 그곳에 한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고 썼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나와 내 삶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만큼 열심히 사는 것이 정도라고 믿었지만, 알고 보니 그것은 스스로를 괴롭히고 상처 주는 일이었다. 이 모든 사실을 깨닫는 과정은 너무나 아팠다.”

좋은 학교를 나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다녔고, 유명인이 되어 대중의 사랑과 인기를 얻었다. 전 세계를 누비며 여행을 다니고, 글을 쓰고, 사업가로서도 성공을 거뒀다. 사회적 나눔과 기여로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마음은 “불행하다” 하고 있었다.



이 책은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한 사람이 어느 날 문득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마음의 절규에 충격을 받고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찾아 떠난 100일 간의 여정을 담은 심리에세이다.

빈틈없는 완벽을 추구하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패턴에서 비로소 해방되기 위해, 눈앞에 놓인 시간에 집중하기 위해 손미나는 태국 리조트의 구루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쿠바, 코스타리카, 이탈리아를 거쳐 부메랑처럼 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행복이 커졌고, 마음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서울 충정로 스포츠동아 인터뷰실에서 만난 손미나 작가의 얼굴은 환하고 여유가 넘쳐 보였다. “정말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손 작가를 마지막으로 인터뷰 했던 것은 2010년 서울대 특강을 마치고나서였다. 당시 그는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고 있었고 여행가로서 작가로서 강연자로서 꽃을 한창 피울 무렵이었다. 첫 소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를 쓰기 1년 전. 그때도 그는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그 행복은 행복하지 않음의 시작이기도 했다.

양: 대학 시절 별명이 ‘계획녀’였다니 솔직히 충격이었습니다. 손미나 작가를 ‘자유로운 영혼의 대명사’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요. 지금까지 해온 많은 것들, 특히 그 자유로워보였던 여행들이 모두 철저한 계획에 따른 것이었나요. 실망하실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웃음).

손: 하하하! 그렇죠. 계획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것은 자유롭고 무절제한 생활을 말하는 게 아닐 겁니다. 제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자유는 생각의 자유, 상상력의 한계를 갖지 않는 거예요. 삶의 어떤 원칙이나 가치, 기준이 없이 끝까지 가보는, 그런 게 아니거든요.“

양: 그렇다면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또 철저히 완수하는 ….

손: 계획을 세우기는 하지만 못 지킨다고 괴로워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계획 안에서 항상 융통성을 가지려 하죠. 저는 굉장히 적응력이 좋은 편이거든요.

양: 적응력이 없다면 여행을 하기 어렵겠죠.

손: 그럼요. 요즘 주변 분들이 저한테 많이 물어보세요. 코로나19 때문에 여행을 하지 못하는 게 답답하지 않느냐고요.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사실 저도 저한테 놀라고 있어요. 여행가들의 특징이 있는데 어디든 새로운 데에 적응을 아주 잘 한다는 거죠. 카멜레온 같아죠. 요즘 집 생활에 굉장히 적응을 잘 하고 있어요. 평생 집에서 안 나간 사람처럼(웃음).

양: 이번 책은 여행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여행 책이 아니라면서요.

손: 이 책은 심리에세이로 썼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사진도 다 뺐어요.

양: 심리에세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개인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손: (구루와의) 개인적인 상담내용이 들어 있죠. 사실 이런 것은 대외적으로 얘기 안 해도 되는 것들인데, 왜 굳이 써야겠다고 생각했냐면요. 책에서 제 상황을 ‘어두운 터널’이라고 표현했는데, 번아웃(Burnout 증후군) 시간을 보내고 나서 비로소 태양 밖으로, 햇살 아래로 나와 봤더니 ‘이게 정말 내 개인 얘기가 아니구나’ 싶어진 거거든요. 누군가는 이런 얘기를 해야겠구나. ‘저런 사람도 고민이 있어?’ 하는 사람이 솔직하게 얘기 해줘야 도움이 되겠구나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양: 확실히 손 작가께서는 ‘저런 사람도 고민이 있어?’ 쪽에 속하는 인물이신 것 같습니다(웃음). 그렇긴 해도 굳이 이런 고백들을 숨기고 싶지는 않으셨나요.

손: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책을 썼는데, 그런 질문을 많이 받게 되네요. 아마 아직도 터널 속에 제가 있다면 이 얘기를 못 했을 거예요. 두려우니까. 사실 이 책에서 여행은 중요하지 않아요. 루드라(구루의 이름이다)라는 사람으로부터 상담을 받고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저에 대해 바라보게 되면서 제가 달라졌다는 게 중요하죠. 어린 시절 유쾌했던 나로 돌아왔고 마음과 정신, 몸을 구분해서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거니까요.

양: 어두운 터널을 벗어난다는 것은 그런 것이로군요.

손: 터널 안에서는 모든 게 두렵고 공포스럽지만 찬란한 태양 아래에서는 끌어안고 갈 수 있는 그림자 정도로 느껴지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자신있게 사람들에게, 아무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양: 그 ‘터널 속의 두려움’을 알 것도 같습니다.

손: 방송을 할 때에도, 책을 쓸 때에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국적, 나이, 직업 불문 정말 많은 사람들. 제가 알게 된 것은 태양 아래에서는 키가 크면 그림자도 크다는 거예요. 그건 어쩔 수 없죠.

양: 여담입니다만 사람들의 SNS를 보고 있으면 모두들 두려움 같은 건 갖고 있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손: 좋은 것만 올리고, 좋은 것만 보니까요. 사람들은 제 SNS를 보고 부러워할지 모르지만 솔직히 저도 다른 사람 SNS를 보고 있으면 우울해지거든요(웃음). 얘는 항상 좋은 것만 먹고 있고, 이 집은 늘 화목하고, 이 친구는 어디서 이런 예쁜 옷만 살까. 그런데 착각이거든요. SNS에 넘쳐 나는 행복, 기쁨보다는 부정적인 면들이 우리 인생에 훨씬 많으니까요. 그 사람이 자유의 상징이든 성공의 심볼이든 그 만큼 이루었으면 그만큼 그림자가 짙을 수밖에 없어요. 사람들이 얘기를 안 하는 것일 뿐이죠.

양: ‘살다보면 종종 우리 앞에 신호가 나타날 때가 있다. 대부분은 알아채기 못하거나, 무시하거나, 알아도 어쩔 도리없이 지나친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언젠가 파울로 코엘료의 책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런 인생의 신호를 알아챌 수만 있다면 삶이 훨씬 편해질 텐데요. 마치 인생의 네비게이션처럼 말이죠.

손: ‘전방 몇 키로에 뭐가 있으니 조심하세요’. 무시하면 사고가 나잖아요. 인생도 똑같은 거 같아요. 신호를 알아채는 방법이라면 …. 어떻게 보면 이 책의 결론에 해당하는 얘기가 될 것 같네요. 컨셔스니스(consciousness·의식)를 갖고, 의식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의식적인 삶’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순간을 집중하는 것. 의식이 깨어있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살게 되는 거니까요. 지나치게 워커홀릭이 되어서 정신이 시키는 대로 치닫다 보면 거의 습관처럼 중독이 되어 살아가게 돼요. 현재 순간에 있지 못하는 거죠. 의식적으로 살지 못하면 무슨 일이 앞에 놓여 있어도 모르게 됩니다. 지나치는 거죠. 정신이 못 보게 하기도 해요. ‘별 거 아냐’ 하고 무시하게 만드는 거죠.

양: 신호를 알아채는 것은 정신, 마음, 몸 중 어떤 걸까요.

손: 감성지능이라는 것이 있어요. 결국은 마음과 정신의 조화가 이루어졌을 때 신호를 캐치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거죠. 저에게도 신호가 많이 왔었어요. 사업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달리다가 큰일 나겠다’ 싶었던 순간들이죠.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이 몸에 나타날 때도 있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게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일 거예요. 뇌의 용량이 꽉 차 있었던 거죠.

양: 신호가 왔었는데 알아채지 못했던 거군요.

손: 하루는 후배들을 모아놓고 술 한 잔 사주면서 물어봤어요.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화 안 낼 테니 솔직하게 말해봐라. 다들 좋은 얘기만 해주더라고요. 너무 멋있는 선배, 뭐든지 하면 성공하는 사람, 열심히 사는 사람,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 그런데 굉장히 마음이 아팠어요. 잔잔한 일상생활의 경험이 공유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때 신호를 보고 슬로다운했어야 했는데 ….

양: 그때는 왜 신호를 알아채지 못했던 걸까요.

손: 정신이 힘이 너무 셌던 거죠. (정신, 마음, 몸의) 밸런스가 안 맞아 있으니까. 감성지능이 캐치해서 “워워”하면서 정신을 말리지 못한 것 같아요. 마음이 아팠고,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싶었지만 당시는 어쨌든 회사를 차려 놓았고, 직원들을 먹여 살려야 하고, 사회에도 의미가 있는 사업이고, 작가로서 칼을 뽑았는데 계약된 게 있으니 출판사와의 약속도 지켜야 하고. 책임을 다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밀려서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던 거죠.

(2편으로 이어집니다)

사진제공 | SOHN&CO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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