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미나 인터뷰②] 우리의 마음과 몸은 더 이상 속아주지 않는다

입력 2020-10-14 1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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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 구루 “미나, 당신이 돌아올 줄 알았다”
대학생 독자의 SNS메시지에 정신이 번쩍
여행? 굳이 안 가도 됩니다!


(1편에서 이어집니다)

양: 갑자기 궁금해지는데요. 손 작가가 상담한 루드라씨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손: 처음 보고는 나이를 알 수가 없었어요. 첫 인상은 ‘역시 인도사람은 나이를 알 수가 없구나’였죠(웃음). 그런데 두 번 보고, 세 번 보니까 짐작은 가더라고요. 저와 비슷한 나이가 아닐까. 이런 사람은 수행자여서 그런지 얼굴이 … 보면 다들 깜짝 놀랄 거예요. 달이 하나 떠 있는 것 같거든요. 너무나 자유로운 얼굴이랄지. 종교적인 성직자는 아니지만 수행자예요. 일반 학교는 아니지만 수행자들이 다니는 학교를 다녔다고 했던 것 같아요. 동굴에 들어가 몇 년씩 수행을 하기도 하고.

양: 루드라씨는 손 작가가 책을 쓸 거라는 걸 알았을까요?

손: 사실 루드라씨를 만날 때는 책을 쓸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만났을 때 루드라씨가 그러더라고요. 만약 생각이 정리가 되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껏 자신의 얘기를 가져다 쓰라고. 자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사람인데, 제가 자신의 얘기를 갖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면 너무 기쁠 것 같다고 말이죠. 루드라씨는 한국을 무척 좋아해요. 인도가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을 한국은 갖고 있다는 거죠. 원래 계획대로라면 루드라씨가 올해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여행을 오기로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



양: 루드라씨와의 상담 후 손 작가는 ‘토라져버린 마음을 달래기 위해’ 쿠바로 떠났죠. 그런데 토라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누구나 쿠바로 달려갈 수는 없지 않나요.

손: 맞아요. 게다가 지금은 가고 싶다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죠. 책의 이태리 편에 이 얘기가 잠깐 나오기는 하는데 …. 이 여행이 끝날 때 즈음인 이태리에서 정신이 팍 든 거예요. 마치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에서 목동이 느꼈던 것처럼. ‘뭐야 이거, 내가 화해를 해야 할 대상은 내 마음이었는데 … 내 마음은 항상 나랑 같이 있었잖아? 내가 돌보지 않아서 그렇지’. 쿠바를 가고 코스타리카를 가고 이태리를 가고. 어디를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던 거죠. 사실 제 방에서도 할 수 있는 거였어요.

양: 굳이 어디론가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

손: 뭔가를 찾고, 찾기 위해서는 어딘가로 가야할 거 같고. 그런 생각을 저도 갖고 있었던 거죠. 여행을 마치고 다시 찾아가니 루드라씨가 “다시 돌아올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빨리 깨달을 사람으로 보였고, 자신의 계획대로라면 제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얘기였어요. 이제 결론을 말씀드릴 게요. 쿠바 안 가셔도 됩니다. 어디를 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양: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손: 너무 바깥세상으로 고개를 돌리다 보면 오히려 자기 안을 돌아보지 못해요. 결국은 내가 나에게 찾아와서 끌어 안아주고, 다독여주고, 화해하고, 얘기를 들어주어야 하는 거죠. 그 대상은 나의 마음이고요.

양: 내 자신을 안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군요.

손: 맞아요. 에고(EGO)가 나오니까요. ‘나는 나를 잘 알아’하는 사람이 알고 있는 ‘나’는 자신이 아닐 가능성이 높죠. 사실은 자기가 자신이라고 믿고 싶은 자기일 겁니다. 누군가와 트러블이 생겼을 때에도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니까 문제가 상대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자기 착각 속에 빠져 있는 거죠. 얼굴은 거울을 보면 되지만 객관적인 시각으로 자신을 보는 일은 굉장히 어려워요.



양: ‘내 병은 내가 잘 알아’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병을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겠죠.

손: 몸의 병은 부정한다고 되지는 않지만 마음의 병은 달라요. 마음의 병을 인정하는 사람은 없죠. 우울증 환자가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죠. 알코올 중독자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일 중독자도 역시 절대 아니라고 하죠. 제가 이 터널을 빠져나오고 보니까 ‘헉, 내가 예전엔 저랬겠구나. 저 친구 도와주고 싶은데 지금 말해도 소용없겠구나’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조용히 이 책을 내밀죠. “한번 읽어봐. 때가 되면 느낄 거야”하고요.

양: 지금은 확실히 보이시는군요.

손: 이제 보여요. 그런 길로 가고 있구나. 저러다 몸이든 마음이든 다칠 텐데. 그 친구들이 파업할 텐데. 그런데 본인은 몰라요. 절대 모르죠.

양: 그러고 보면 사회적으로 일종의 번아웃을 겪는 분들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평생 몸과 세월을 바쳐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하신 분들, 자식들 시집 장가보내고 허탈감에 빠진 어머니들 ….

손: 요즘은 육아하면서도 많이 온다고 하죠. 우리나라 어르신들 얼마나 열심히 사셨어요. 부모도 자식도 감정을 다 누르고 살았던 거죠. 지나친 책임감과 죄책감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한국사람이라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그러니까요. 자식이 자살하면서도 부모에게 ‘죄송하다’고 하잖아요. 부모도 마찬가지죠. 태어나게 해주고, 그만큼 가르치고 먹여주고 키웠는데 계속 자식에게 “미안하다”고 해요. 그 죄책감의 근저는 지나친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양: 역시 정신과 관련이 있을까요.

손: 정신이 우리를 지배하는 거죠. 정신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은 감정이 억눌려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이제 책임을 다했다’ 싶으니까 잠깐 멈추는 순간 폭발하는 거죠. 얼마 전 제 소셜미디어로 누군가가 개인 메시지를 보내 왔어요. 아주 장문의 글이었죠. 이 책을 읽고 너무 고마웠다는 거예요.

양: 요즘은 독자들이 작가에게 팬레터를 SNS 메시지로 보내는군요(웃음).

손: 네네. 그런데 이 학생이 번아웃이 심했다는 거예요. 이제 대학 3학년인데 번아웃이라니. 외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거든요. 자신의 번아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제목만 보고 책을 구입했다가 자신에게 딱 맞는 얘기를 찾았다고 했어요.

양: 제목 얘기가 나와서인데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라는 제목만 보면 ‘그래서 어쩌란 거냐’, ‘다 버려놓고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거냐’라는 사람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 같은데요.

손: 멈추란 얘기가 아니죠. 저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일에 대한 에너지가 좋아졌어요. 제가 생각해도 너무 즐거운데요. 주변 친구들도 느끼나 봐요. 예전에는 정신만 나서는 쪽이었다면, 이젠 얘(마음)가 튀어 나오니까 농담도 많이 하고, 같은 상황이라도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거죠.

양: 오히려 일을 더 잘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손: 그렇죠. 대신 예전처럼 격무에 시달리던 것들은 안 하려고 조절을 해요. 계획과 스케줄을 짜면서 한두 개씩은 무조건 뺍니다. 안 해도 되는 일, 못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은 이월시키거나 상대방에게 미리 얘기를 해요. 계획을 세울 때는 우선순위를 반드시 정하고요. “밥 먹고 반신욕 하는 건 무조건 한다”는 식이죠.



양: 일을 더 잘 할 수 있게 되었다기보다는 일을 줄인 것뿐 아닌가요.

손: 처음엔 업무량만 줄어든 것처럼 보이기도 했죠. 그런데 아니었어요. 효율이 너무 좋아지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해도 훨씬 더 잘 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일의 양뿐만 아니라 퀄리티가 높아졌어요. 만족스럽죠.

양: 일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특히 자신의 것을 먼저 빼놓는다는 것이 중요하군요. 사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다만 처음엔 집어넣었다가도 나중에 보면 밀려서 다 빠져버리게 되거든요.

손: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 볼게요. 무조건 시간을 정해놓고 ‘툭’ 내려놓습니다. 저도 손에서 떼기가 힘들어요. 이게 다니까. 그래도 하루 1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을 위해 내려놓죠. 가만히 소파에 앉아서 음악을 들으면서 저하고 얘기합니다. 아니, 얘기를 들어주는 거죠. 그게 별거 아닌 거 같은데 그렇지 않거든요. 사실 스마트폰에서 쓸데없는 뉴스 보고, 남의 생활 들여다보고, 게임하고, 쇼핑하고 …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데요. 하루 1시간만, 그조차 안 되면 30분만이라도 자신에게 할애하는 거죠. 그렇게 우선순위를 정해서 일을 하다보면 누구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더 잘 할 수 있게 되실 거예요.

양: 일상 속의 소소한 재충전과 같은 거군요.

손: 예전의 저는 재충전을 위해 1년씩 휴직도 하고,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그랬죠. 물론 그것도 좋았어요. 그런데 그건 완전히 번아웃으로 갔다가 완전히 오버차지(overcharge·과충전) 시키는 거였어요. 방전될 때까지 일을 하고,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놀고. 번아웃, 오버차지, 번아웃, 오버차지. 그러다보니 더 이상 충전이 안 되는 때가 오더라고요. 배터리도 오버차지를 자주 하면 망가지는 것처럼요.

양: 몸과 마음이 더 이상 속아주지 않는 거군요. 지금은 놀고 있지만 요 다음에 ‘유격훈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거죠.

손: (몸과 마음이) 알아요. 그런데 그런 분들 많으실 거예요. 아무리 자신을 위해 휴가를 가도 감정은 계속 죽어있는 거죠.

(3편으로 이어집니다)

사진제공 | SOHN&CO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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