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 인사이드] DNA 상속세 잔뜩 낸 야구인 2세, 벗겨지는 색안경이 반가운 이유

입력 2020-07-08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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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이정후-두산 박세혁-NC 강진성(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야구선수 아버지의 DNA라는 자산을 물려받기 위해선 상속세가 어마어마하다. 사실 부모의 일을 자식이 이어받는, 특정 직업을 ‘가업’으로 삼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물며 ‘핏줄’이 성적을 보장할 순 없는 스포츠의 경우 더욱 그렇다.

KBO리그가 39바퀴째 나이테를 그리는 올해, 비로소 ‘야구인 2세’ 농사 대풍이 들었다. 아들 선수들이 아버지가 씌울 수밖에 없던 색안경을 실력으로 벗겼기에 의미 있는 성과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표적인 야구인 2세를 꼽으라면 이정후(22·키움 히어로즈)와 박세혁(30·두산 베어스)의 이름만 도드라졌다. 이종범 주니치 드래건스 코치와 박철우 두산 2군 감독의 아들인 이들은 쟁쟁했던 아버지의 그림자를 성공적으로 지우고 있다.

몇 안 되던 야구인 2세는 올해 부쩍 늘었다. 강진성(NC 다이노스·강광회 심판 아들), 유원상(KT 위즈)-민상(KIA 타이거즈·이상 유승안 전 감독 아들) 형제, 이성곤(삼성 라이온즈·이순철 해설위원 아들), 정해영(KIA·정회열 코치 아들) 등이 1군에서 활약 중이다. 이정후나 박세혁과 달리 이들 모두 올 시즌 주전급으로 분류되지 않았기에 더욱 반전이다.

야구인 2세는 프로 초창기부터 종종 있었다. 김성근 전 감독의 아들인 김정준 해설위원을 비롯해 문희수, 박영태 등 쟁쟁한 1980~1990년대 스타의 자제들이 스파이크를 신었다. 하지만 성공사례는 많지 않다. 야구인 2세 A가 B보다 근소하게 실력이 앞설 때 감독이 A를 기용한다면, B의 학부모가 ‘특혜’를 따진다. 월등히 뛰어난 실력이 아닌 이상에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런 풍토는 프로 초창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프로에 입단한 선수들 중에는 이런 등살에 견디지 못하고 전학을 간 사례도 있다.

이호준 NC 타격코치의 아들 동훈 군(18·강릉고)은 그래서 아버지의 정체를 최대한 숨겼다. 이 코치는 “아빠의 존재가 도움은커녕 오히려 작아지게 만드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거듭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최근 박세혁은 “모든 야구인 2세는 잘돼야 한다. 아버지의 그늘이 정말 힘들다. 주위의 색안경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며 “앞으로 성공한 야구인 2세가 늘어난다면 야구계가 조금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존재가 씌운 색안경을 힘겹게 벗어던졌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이정후는 지난 시즌을 앞두고 “이제 ‘이종범 아들 이정후’가 아닌 ‘이정후 아빠 이종범’으로 만들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아버지의 그림자를 딛고 프로에서 인정받는 것 자체가 바늘귀 통과보다 어려운데, 이제는 아버지를 자신의 후광에 두겠다는 각오였다. 그리고 이정후는 이를 실현하고 있다. KBO리그 최고의 타자였던 ‘바람의 아들’이 이제는 이정후의 아빠가 된 것이다. 색안경을 지워가는 이들의 활약에 팬들이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인천|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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