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물개’조오련,天上의바다로…조오련씨타계

입력 2009-08-05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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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도 태극기 꽂으려 했는데….’ 1980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을 맞아 대한해협을 횡단한 조오련이 일본 노자키 등대섬에서 태극기와 동아일보 사기를 높이 치켜들고 있다. 조오련은 2010년 제2차 대한해협 횡단을 계획했으나 아쉽게 뜻을 이루지 못했다.스포츠동아DB

수영계큰별지다…내년2차대한해협횡단프로젝트스트레스-체중불리기등‘악영향’
한국수영의 큰 별이 졌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씨가 4일 고향인 전남 해남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주민등록상(1952년생)으로만 치자면 향년 57세. 하지만 고인은 평소 지인들에게 “1950년 생”이라고 말해왔다.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0·1974아시안게임에서 자유형400·1500m를 2연패하며 한국 체육계에 큰 획을 그었다. 선수 은퇴 뒤에도 대한해협을 횡단하는 등 도전정신을 잃지 않았다. 최근에는 2차 대한해협 횡단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었다.

고인은 2008년 4월,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좋은 피를 물려받아도 노력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면서 “무미건조하고 고통스러운 운동인 수영을 잘하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와 근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고인은 본인의 말대로 제주도에 캠프를 차리고 고된 훈련에 매진해 왔다. 고향인 전남 해남 자택에 머문 시점은 타계 불과 1주일 전. 고인은 평소 “환갑을 맞는 해이자 1차 대한해협횡단(1980년) 30주년인 2010년, 꼭 2차 대한해협 횡단에 성공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훈련비 등 2차 대한해협 횡단 후원금 모금은 뜻대로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한 지인은 “2008년, 독도 33바퀴 헤엄치기 프로젝트 때도 스폰서 문제로 힘들어 해 지인들이 십시일반 했었다”고 밝혔다.

고인은 타계 한 달 전 스포츠동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체중을 늘리니, 몸이 힘들다”고도 털어놓았다. 장시간 바다수영은 저체온증을 유발하기 쉽기 때문에 준비과정에서 체지방 축적은 필수. 고인은 이미 1980년 1차 대한해협 횡단 때도 70kg대 몸무게를 90kg대로 늘린 적이 있다. 도버해협 횡단 때 코치를 맡았던 김종구(56·성균관대스포츠단 총감독) 성균관대 겸임교수는 “젊었을 때는 모르겠지만, 50대 후반의 나이에 급격한 체중변화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2001년 부인과 사별한 고인은 한 때 자주 술을 입에 댔으나, 4월 지인의 여동생인 이성란 씨와 재혼한 뒤에는 술은 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4일 고인의 빈소로 이동하던 이성란 씨가 남편의 사망소식에 충격을 받아 음독,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 씨는 해남종합병원에서 위세척을 받았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해남 국제장례식장 1층 1호실. 발인은 6일 오전9시다. 한편 해남경찰서는 유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인의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시신 부검을 의뢰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시신에 대한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면 5일 오전 국과수 장성분소에서 부검할 계획이다.

“사흘전만 해도 건강하셨는데…”

○조성모(故조오련 씨 아들, 전 수영국가대표) =(조성모 씨는 서울에 머물다가 4일, 비보를 듣고 전남 해남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사흘 전만 해도 건강히 잘 계시다고 통화를 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2001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약주를 자주 드셨는데, 재혼하신 이후에는 약주도 안 하셨다. 내년에 대한해협을 한 번 더 건너시겠다고 수영훈련에만 매진하셨던 차라 충격이 더 크다. 경황이 없어 뭐라 더 할 말이 없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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