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피플]“박지성넘어설‘K리그희망’봤죠”

입력 2009-09-18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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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러스 웨이’와 컵 대회 우승을 포함한 시즌 3관왕 도전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포항의 김태만 사장이 2009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구단의 미래를 위한 청사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제공 | 포항스틸러스

피스컵품은김태만포항사장
“지금 K리그는 ‘박지성과의 싸움’이라고 봐요.” 가을의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 김태만(55) 사장의 첫 마디였다. 부정적 의미는 아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쏠리고 있는 팬들의 관심을 이젠 K리그에도 끌어와야 한다는 의미였다. 부산을 5-1로 꺾고 피스컵 우승컵을 품에 안은 16일 밤, 포항 포스코 청송대에서 만난 김 사장은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축하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건만 이미 기분좋은 취기가 오른 듯 했다. 김 사장과의 만남은 당초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고, 자정이 지나서야 끝났다. “제가 횡설수설하죠? 말이 정리가 잘 안되네요. 그래도 솔직히 이 느낌, 겨울까지 이어가고 싶어요.”

○‘스틸러스 웨이’, 박지성을 넘기 위한 이유 있는 시도

작년 2월 포항의 수장으로 부임한 김 사장이 K리그의 현실을 ‘박지성과의 싸움’으로 정리한 이유는 분명하다. 박지성으로 대변되는 프리미어리그의 인기를 K리그로 가져와야 한다는 것. “작년 TV 시청률을 비교해봤어요. 한낮 K리그 결승전은 1.2%%가 나왔는데, 새벽녘 EPL 경기는 1.4%%가 나왔죠. 아쉽죠. 하지만 오늘 같은 경기라면 희망은 분명 있어요.” 느슨한 플레이와 파울, 항의 등을 줄여 쓸데없이 버려지는 5분을 팬들에게 돌려주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게 근래 K리그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스틸러스 웨이(Steelers Way)’다.

“매너와 박진감, 두 가지에 방점을 찍어야죠. 팬들에 감동을 주고, 재미를 느끼게 해야죠. 이른바, 고객감동 서비스에요.” 쉽진 않았다. 처음 도입됐을 때 선수들은 여전히 ‘이기는 축구’에 몰입했다. 취지는 공감했지만 “성과가 먼저”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승리 수당을 없애고, 모든 보너스를 ‘스틸러스 웨이’ 요소별 채점에 의거했다. 이긴 뒤 100만원을 준 반면, 패한 뒤에도 내용에 따라 300만원을 지급했다. 실제경기시간(Actual Playing Time)이 늘자 성적도 따라왔다. 9월 기준 작년 대비, 평균 관중 1만1000명은 1만4000명으로 늘었고 승률도 52%%에서 71%%까지 증가했다.

득점은 2.19골로 0.6골이 올랐고, 실점은 1골로 0.7골 줄었다. “수원과 올 시즌 개막전은 지금도 뭉클해요. 리드하고 있을 때, 데닐손이 교체되며 100m를 뛰어 나오더라고요. 기대한 게 바로 이런 모습이었죠. 가슴으로 울었어요.” 여기서 김 사장은 한 가지 비밀을 털어놓았다. “사실 ‘스틸러스 웨이’는 성적에 자신이 없어 시작한 계획이에요. 전력상, K리그-FA컵을 석권한 과거 2시즌을 따라갈 것 같지 않았죠.”

○ ‘안정이 최우선’…내년 노장들도 함께 한다

“젊은 선수들에게 다가가려고 머리까지 심었어요. 돈 꽤 들었답니다.” 모든 기준을 선수단에 맞추는 김 사장이다. 농담처럼 얘기한 ‘머리 심기’였지만 조카뻘 되는 선수들과 가까워지기 위한 선택이었다. 비록 넉넉하진 않아도 할 수 있는 선에서 필요하다면 아낌없이 주머니를 풀었다. 지난 주말 제주전이 끝난 뒤 싱싱한 해산물 세트를 선수 명의로 선수 가족들에게 선물로 보내 선수단에 ‘우린 하나’란 인식을 심어줬다. 뿐만 아니라 문자 메시지도 종종 주고받으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또 1년 활약상을 모은 사진첩과 앨범을 제작하고 가족 초청 행사를 타 팀에 비해 많이 열어 ‘다가서는 구단’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은 정성이죠. 선수들은 필드에서 보여주면 됩니다. 나머지는 저와 프런트의 몫이죠.” 파리아스와 일찌감치 재계약을 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벤치가 안정돼야 선수들이 집중할 수 있다는 것. 2년 재계약 공식 발표는 8월에 했지만 이미 6월18일 계약을 완료했다. 5월 협상에 돌입할 때 파리아스는 일본 J리그 두 팀과 카타르에서 연락을 받은 상태였다. 당시 리그 성적은 12위. 그러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김 사장은 파리아스에게 ‘당신과 계속 함께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2주 뒤 ‘OK’ 사인을 받았다. 하지만 충분히 예우하지 못한 미안함은 남았다. “저희가 K리그 최초로 세계 최고 클럽에 선정됐잖아요. 사실은 작년과 같은 액수에 사인했는데, 파리아스는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미안했죠. 새 차를 제공한 것도 일종의 보상이었죠.”

김 사장은 선수들과의 재계약도 일찍 완료할 계획이다. 한해 농사를 갈음하는 가을잔치를 앞두고 계약 문제로 뒤숭숭한 상태를 지속하느니 선수들에게 빠른 안정을 주기 위함이다. 물론 파리아스의 판단이 최우선이지만 올해로 계약이 끝나는 김기동과 노병준, 김정겸 등 젊은 피 못잖은 활약을 보여 온 베테랑에게는 최대한의 예우를 해줄 생각이다. “전력에 필요한 선수들은 꼭 잡아야죠. 우리 노장들은 ‘열정’과 ‘투지’ 모든 면에서 최고 수준이에요. 120%%를 해주죠. 물론 어쩔 수 없이 짐을 꾸리는 선수들도 나올 겁니다. 군 입대도 그렇고요. 하지만 그들에게 새 팀을 찾아주는 것도 저희의 임무에요. 단, 할 수 있다면 모두와 함께 가고 싶어요.”

포항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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