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四色)의 피아니스트’ 김정림 독주회 [리뷰]

입력 2022-09-05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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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四色)의 연주.

피아니스트 김정림의 손끝에서 바흐가 노래했고, 호흡에서 쇼팽이 숨을 쉬었다. 슈만이 춤을 추는가 하면 라벨은 눈부신 색채의 팔레트를 열어 보였다.

9월 3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김정림 독주회의 문은 J. S. 바흐의 ‘파르티타 No.1 B장조, BWV 825’로 열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본 노래하는 바흐, 따뜻한 온기의 바흐였다. 이렇게 재미있는 바흐를 들어본 것은 꽤 오랜만이지 싶다. 섬세한 터치에서 바흐의 우아함이 슥슥 묻어나왔다.

두 번째 연주곡은 표정을 싹 바꾸어버린 쇼팽의 ‘폴로네이즈 5번 올림f단조 Op.44’. 작곡자의 ‘불굴의 반항정신’이 담긴 대작이다. 쇼팽의 다른 폴로네이즈 작품들에 비해 더욱 다이내믹한 곡으로 시작부터 옥타브가 폭우처럼 쏟아져 내린다.

이 곡에서 김정림은 바흐와는 사뭇 다른 ‘근육질적인’ 타건을 보여준다. 쇼팽의 반항, 분노가 뜨겁게 분출하는 연주다.

2부는 슈만과 라벨.

‘나비 Papillons Op.2’는 20세 전후의 젊은 슈만을 대표하는 초기작이다. 짧은 길이의 12곡이 쉬지 않고 연주되는 연작 스타일의 곡으로 ‘슈만 피아노 음악의 출발점’이라 불리기도 한다.

슈만 특유의 다양한 표정을 김정림은 탁월한 테크닉으로 살려냈다. “슈만은 이렇게”라는 정형성이 보이지 않아 더욱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던 연주. 경직되지 않은 해석에서 나온 자유로운 발상이 나비처럼 건반 위를 날아다니는 느낌이다.

이날 독주회의 피날레는 라벨의 ‘라 발스(La Valse)’의 차지였다. 라벨은 스스로 “빈 왈츠에 대한 예찬”이라고 했지만, 말랑말랑한 슈트라우스풍의 왈츠를 기대한다면 당혹스러울 것이다.

누군가는 라 발스를 두고 “한번 신으면 죽을 때까지 춤을 추어야 하는 분홍신과 같은 왈츠”라고 했는데, 상당히 공감이 가는 표현이다. 특히 후반은 ‘광란의 왈츠’라 하기에 이견이 없을 정도로 휘몰아친다.

엄청난 에너지를 연주자에게 요구하는 이 곡을 김정림은 전사처럼 정면으로 충돌해 들어간다. 최후의 파열음이 무대와 객석을 산산조각 내어버리는 듯 강렬한 여운을 던진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 | 이든예술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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