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명이 독인 것 같은 ‘설강화’, 방송하면 오해 풀릴까 [홍세영의 어쩌다]

입력 2021-12-16 16:44: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일단 방송을 봐달라고 말한다. 해명이 시원치 않다. JTBC 토일드라마 ‘설강화 : snowdrop’(극본 유현미 연출 조현탁, 약칭 설강화) 이야기다.

16일 오후 ‘설강화 : snowdrop’ 온라인 제작발표회가 진행됐다. 행사에는 정해인, 지수, 조현탁 감독이 참석했다.

‘설강화’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여자 기숙사에 피투성이로 뛰어든 명문대생 ‘수호’(정해인 분)와 그를 감추고 치료해준 여대생 ‘영로’(지수 분)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는다. ‘SKY 캐슬’ 유현미 작가와 조현탁 감독이 다시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이 작품은 방송 전부터 문제작으로 평가받는다. 간첩 미화, 민주화 운동 이미지 훼손 등 역사(현대사) 왜곡 의혹을 받는다. 정치적, 이념적 논쟁까지 더해진 상태다.

연출자 조현탁 감독은 “유현미 작가가 오랫동안 준비한 작품이다. 정치범 수용소에서 탈북자 수기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이야기가 확정됐고, 실제 유현미 작가가 대학생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겪은 경험을 더한 것”이라며 “(작품에서) 북한(간첩)에 대해 언급된다. 이는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것이 아니다. 북한 사람, 사람 그 자체 대한 것이다. 사람에 대한 밀도 깊은 이야기를 그리려는 의도다”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역사 왜곡 등 여러 논란에 대해서는 짜깁기로 이루어진 프레임을 강조했다. 조현탁 감독은 “작품 설명을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1987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가상의 창작물이다. 시대적인 배경 외에 가상의 설정에서 전체 이야기 중심은 청춘남녀의 애절한 사랑한 이야기다. 모든 장치는 이들 사랑을 위한 거다. 그렇기에 가상 작품 공간에서 모든 이야기가 리얼리티를 담는다. 그런데 문구 몇 개가 유출, 짜깁기돼 말도 안 되는 말이 기정사실화 되어 보도까지 됐다. 관리 소홀인 제작진 책임이 있지만, 알려진 것과 다르다. 방송을 통해 알려진 것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해 주셨으면 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국내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내 일처럼 기쁘다. 창작자들은 어떤 작품을 임할 때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 이 점을 꼭 알아줬으면 한다”며 “작품이 공개(방송)되기 전부터 논란이 되는 게 창작자에게는 큰 고통과 압박이 된다. 이 점 깊이 고려해 주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설강화’는 ‘부모 욕심이 자식과 가족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아 신드롬을 일으킨 ‘SKY 캐슬’ 유현미 작가가 집필한 작품. 유현미 작가와 재회한 조현탁 감독은 “너무 힘들어 죽을 뻔했다.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시대극이라서 전국을 돌았다. 유랑 극단 같았다. 과장이 아니라 죽다 살아 난 것 같다. 두 배우 덕분에 즐겁게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 시작했던 것보다 무지막지한 작품이더라. 내 역량을 고민하게 된 작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유현미 작가가 오랫동안 기획한 작품이다. ‘SKY 캐슬’ 이전부터 전해 들었다. 그만큼 유현미 작가 애정이 남다르다. 이런 작가의 신념에 감동받았다. 다만 이만큼 힘들지 몰랐다”며 “다행히 무시히 촬영을 마치고 지금은 편집을 마무리 중”이라고 이야기했다.

자신감이 넘친다. 조현탁 감독은 “최종 편집본을 보며 굉장히 놀라고 있다. 수호와 영로의 사랑 이야기가 1987년을 배경으로 담기며 그 안에 스릴러, 미스터리, 서스펜스, 액션, 코미디가 적재적소 잘 버무려져 있다. 최종 완성본을 보고 연출자로서도 굉장히 독특한 경험한 것 같다”라고 자신했다.

방송을 보면 알 것이라는 ‘설강화’ 연출자. 그러나 작품 전반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일단 초기 대응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인 시점을 시간적 배경과 인물 설정 일부에 녹여 놓고, ‘블랙 코미디’라는 소재를 운운하는 것이 논란 불씨를 키웠다.

당시 JTBC는 첫 해명 입장문에서 “올 하반기 방송 예정인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고 안기부와 간첩을 미화하는 드라마가 결코 아니다. ‘설강화’는 80년대 군사정권을 배경으로 남북 대치 상황에서의 대선정국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다. 그 회오리 속에 희생되는 청춘 남녀들의 멜로 드라마이기도 하다. 미완성 시놉시스의 일부가 온라인에 유출되면서 앞뒤 맥락 없는 특정 문장을 토대로 각종 비난이 이어졌지만, 이는 억측에 불과하다. 특히 ‘남파간첩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다’, ‘학생운동을 선도했던 특정 인물을 캐릭터에 반영했다’, ‘안기부를 미화한다’ 등은 ‘설강화’가 담고 있는 내용과 다를뿐더러 제작 의도와도 전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이어지고 있는 논란이 ‘설강화’의 내용 및 제작 의도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힌다. 아울러 공개되지 않은 드라마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을 자제해주시길 부탁한다”고 전했다.

이 해명문이 재차 논란을 키우자, JTBC는 또다시 2차 입장문을 내놨다. JTBC는 “드라마 ‘설강화’ 논란에 거듭 입장을 밝힌다. 본 방송사는 ‘설강화’에 대한 입장 발표 이후에도 여전히 이어지는 억측과 비난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재차 입장을 전한다”며 “현재 논란은 유출된 미완성 시놉시스와 캐릭터 소개 글 일부의 조합으로 구성된 단편적인 정보에서 비롯됐다. 파편화된 정보에 의혹이 더해져 사실이 아닌 내용이 사실로 포장되고 있다. 물론, 이는 정제되지 않은 자료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한 제작진 책임이다. 이에 본 방송사는 ‘설강화’의 내용 일부를 공개하며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고 운을 뗐다.

JTBC는 “민주화 운동 폄훼 논란에 대해 말한다.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다.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80년대 군부정권 하에 간첩으로 몰려 부당하게 탄압받았던 캐릭터가 등장한다. ‘설강화’ 극 중 배경과 주요 사건 모티브는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1987년 대선 정국’이다. 군부정권, 안기부 등 기득권 세력이 권력 유지를 위해 북한 독재 정권과 야합해 음모를 벌인다는 가상의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설명했다.

JTBC는 “이런 배경하에 남파 공작원과 그를 쫓는 안기부 요원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들은 각각 속한 정부나 조직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 부정한 권력욕,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안기부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부각하는 캐릭터들이다. 그러므로 간첩 활동이나 안기부가 미화된다는 지적도 ‘설강화’와 무관하다. 안기부 요원을 ‘대쪽 같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가 힘 있는 국내 파트 발령도 마다하고, ‘간첩을 잡는 게’ 아니라 ‘만들어내는’ 동료들에게 환멸을 느낀 뒤 해외 파트에 근무한 안기부 블랙 요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인물은 부패한 조직에 등을 돌리고 끝까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원칙주의자로 묘사된다”고 이야기했다.

JTBC는 “극 중 캐릭터의 이름 설정은 천영초 선생님과 무관하다. 하지만 선생님을 연상하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 만큼 관련 여주인공 이름은 수정하겠다”며 “이를 토대로 이 시간 이후부터는 미방영 드라마에 대한 허위 사실을 기정사실인양 포장해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를 자제해주시길 부탁한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하는 수많은 창작자를 위축하고 심각한 피해를 유발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인지해주셨으면 한다. 본 방송사는 완성된 드라마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어렵게 제작발표회까지 이어지면서 이제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만, 방송사부터 연출자까지 해명은 시원치 않다. 일반 ‘방송을 보고 판단하라’고 말한다. 조금 더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줬다면, 방송 전 이렇게까지 논란이 커지지 않았다. 가장 먼저 민주화 운동 단체들을 찾아 작품 기획 방향을 설명하고 그들이 먼저 동의했다면, 애초 민주화 운동 왜곡은 불거지지도 않았다. 특정 인물과 대학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창작은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다만, 그 책임도 뒤따른다. 창작으로 인한 사회적 논란 등은 오롯이 창작작가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도 ‘설강화’ 제작진과 JTBC는 이런 부분을 충분히 시청자에게 설득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짜깁기로 파생된 논란’으로 치부한다.

이제 제작진과 방송사 말대로 첫 방송만 남았다. 방송을 통해 오해인지, ‘미화·왜곡 환장 파티’인지 판가름 난다. 우려를 표하는 이들은 우리가 아팠던 시대적 상황이 두 남녀 사랑을 위한 설정값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반대로 걱정이 과하다는 이들은 방송을 보고 판단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전히 논쟁 거리를 많지만, 모든 판단은 이제 18일 밤 10시 30분 첫 방송 이후 시청자들 입에서 나올 전망이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