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의 새 태양이 떠오르던 1일 새벽. 두산 손시헌(29)은 강원도 인근의 한 바닷가에 서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신년 일출.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즌을 앞두고 몸과 마음을 새로 가다듬고 싶었다”고 했다.
그만큼 올 시즌을 앞둔 그의 마음가짐은 남다르다. 손시헌은 올 시즌을 야구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으로 여기고 있다. 신고선수로 입단해 처음 1군 무대를 밟았던 순간이 첫 번째였다면, 군복무를 마치고 치열한 경쟁 속에 새 출발하는 올해가 두 번째다. 예상보다 더 크고 단단한 각오로 무장한 손시헌. 그의 눈빛은 2년 전보다 더 깊고 창창했다.
○입대 전 ‘막내뻘’, 제대 후 ‘고참’
참 많이 어려졌다. 두산의 ‘평균 연령’ 얘기다. 입대 전 막내뻘이었던 손시헌조차 세월의 흐름을 체험해야만 했다. “2005년에는 주전 중에 20대가 저 하나뿐이었어요. 2006년에도 이종욱, 고영민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형들이었고요. 그런데 올해는 제가 팀에서 다섯 번째로 나이가 많네요.”
정말 그렇다. 손시헌보다 나이 많은 선수는 김동주, 김선우, 임재철, 정원석뿐. 상무 시절에도 이미 느꼈던 변화다. “두산 2군하고 경기를 할 때면, 선수들이 다 제게 인사를 하는 거예요. 그 전엔 제가 인사해야 할 형들이 훨씬 많았거든요. ‘아, 정말 달라졌구나’ 했죠.”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나면서 복귀 이후의 생활도 걱정되더란다. 그래서 매일같이 두산 경기 중계를 챙겨봤다. “평생 볼 야구를 다 본 것 같아요. 객관적으로 4년 전보다 월등히 수준이 높아진 것 같고, 눈에 띄는 선수들도 많더라고요. 내가 나중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죠.”
하지만 금세 적응이 돼 간다. 벌써 ‘집에 온 듯’ 편안한 느낌이다. 무엇보다 잘 따르는 후배들이 많아 기분이 좋다.
○손시헌을 키운 8할은 ‘노력’
그는 ‘노력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천재’ 소리는커녕 ‘유망주’ 소리조차 못 듣던 프로 입단 초기, 신고선수 손시헌을 키운 건 8할이 ‘노력’이었다. 스스로는 “운이 많이 따르기도 했고, 그런대로 적응을 잘 한 것 같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구단 관계자들은 “그라운드 안에서나 밖에서나 한결같이 성실한 선수”라고 입을 모으니 말이다.
그는 이마저도 “옆에서 본보기가 돼준 선배들 덕분”이라고 했다. “중·고교 시절, 1년 선배였던 김진호 형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성실한 선수가 되어야지’ 생각했어요. 지금은 야구를 그만뒀지만, 제가 졸업할 때까지 열심히 쫓아다니면서 운동했죠.” 그리고 1군에서 4년간 룸메이트였던 안경현(SK)에 대해서도 “경기가 끝나도 늘 웨이트트레이닝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서 훈련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후배들에게도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WBC 대표팀 탈락? “좌절 아닌 발판”
사실 시작부터 좌절인가 싶었다. 지난해 12월 1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1차 후보 명단에 포함됐던 손시헌은 20여일 뒤 발표된 2차 명단에서 빠졌다. 하지만 주변의 예상과 달리 그는 “사실 뽑혔어도 걱정이었다.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했다. 이유는 이랬다. “아무래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훈련량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잖아요.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느냐가 중요한 시기인데 말이죠. 그래서 ‘뽑아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나가자’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도 내심 불안한 마음도 컸죠.”
때문에 WBC 대표팀 탈락이 확정된 뒤에는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 시즌을 구상할 수 있게 됐다. 상무 시절에도 “훗날 두산에 복귀할 때를 대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는 손시헌이니, 이미 몸상태는 최고조에 올랐다.
○3할, 60타점 그리고 골든글러브
전경기 출장, 3할 타율, 60타점, 그리고 골든글러브. 올해 손시헌이 품고 있는 목표다. 그는 “마음을 비우고 ‘무조건 열심히’ 하던 예전과 달리 올해는 욕심도 많이 난다”고 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손시헌 외에 대안이 없던 2006년과 달리 올해는 이대수, 김재호, 이원석 등 경쟁자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라이벌이 한명이든 4-5명이든 중요한 건 ‘나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내가 못 하면 어쨌든 다른 선수가 뛰는 거니까요. 올해 확실히 두각을 나타내지 않으면 밀려나고 말 거라는 위기감이 있어요. 그래서 평소보다 높은 목표를 바라보면서 꼭 이루겠다는 마음으로 달리려고요.”
그래서 5년만의 해외전지훈련을 기다리는 설렘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병역비리에 적발된 직후인 2005년과 2006년, 홀로 국내에서 훈련하던 외로움을 아직도 못 잊는 그다. 손시헌은 “긴장도 되지만 준비도 더 많이 하게 된다”면서 “오버 페이스만 견제하면 될 것 같다. 1차 목표는 부상만 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예감도 좋다. 황금장갑을 낀 2005시즌을 떠올리던 손시헌은 “그 때도 준비가 참 잘 돼 있었다. 올해가 딱 그 때 같은 느낌이다”라며 활짝 웃었다.
잠실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