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경기는 이겨야죠. 무조건 이길 겁니다." 다부진 얼굴에서 나온 목소리에 힘이 가득 실렸다. 제21회 국제핸드볼연맹(IHF) 남자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 중인 한국대표팀의 박중규(26. 두산)는 오는 30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자그레브 아레나에서 펼쳐질 마케도니아와의 11~12위 순위 결정전을 앞두고 필승을 다짐했다. 190cm, 105kg의 커다란 체구를 자랑하는 박중규는 이번 대회에 출전한 한국 남자대표팀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대회 기간 중 그가 맡은 포지션은 상대 수비수 틈에 끼어 공격을 이끌고 중앙에서 수비를 지휘하는 포스트백이었다. 소속팀 두산에서는 레프트백으로 활약했지만,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최태섭 대표팀 감독(47. 성균관대)은 그에게 궂은 일을 도맞아 해야 하는 마당쇠 역할을 맡겼다. 대회 기간 내내 박중규는 자신보다 많게는 10cm 이상 큰 상대 선수와 싸워야 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 싫은 표정은 찾아볼 수 없다. 상대와의 경합에서 주눅들지 않았고, 몸싸움 끝에 골을 성공시킬 때마다 두 팔을 하늘 높이 치켜들며 포효하는 그의 모습은 ´자신감´ 그 자체였다. 28일 오전 숙소에서 만난 박중규는 "모든 운동 선수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자신감은 천성인 것 같다"고 웃어보였다. 그는 "원래 경기를 하면 할수록 체력이 좋아지는 스타일이다"며 "몸싸움은 원래 즐긴다. 상대를 제압하고 골을 성공시킬 때의 성취감이 정말 좋다"고 밝혔다. 19세였던 2002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출전을 시작으로 대표생활 7년 째에 접어 든 박중규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역대 최약체 대표팀´이라는 말이 자존심 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실이 그랬다. 그동안 대표팀을 이끌었던 윤경신(36. 두산), 백원철(32. 일본 다이도스틸), 한경태(32. 스위스 오트마) 등이 빠져나간 대표팀은 국제무대 경험이 없는 어린 선수들로 채워졌다. "(대표팀 구성)당시에는 도대체 우리한테 왜 약하다는 말만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자존심이 상했다"는 박중규는 "두 달 간 훈련을 가진 뒤 대회 예선에 나서 막판 3연승으로 본선에 진출했을 때의 기분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고 말했다. 한국은 대회 예선에서 홈팀 크로아티아(26-27), 스웨덴(25-31)과 박빙의 승부를 벌이며 가능성을 보였고, 쿠웨이트(34-19), 쿠바(31-26), 스페인(24-23)에 잇따라 승리를 거두며 지난 2001년 프랑스대회 이후 8년 만에 대회 2라운드(12강 본선)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하지만 한국은 체력 저하와 경험 부족으로 슬로바키아(20-23), 프랑스(21-30), 헝가리(27-28)에 3연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그는 "개인 기량 면에서는 이전보다 약할지 몰라도 조직력과 체력은 오히려 더 좋아졌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동료들이 믿고 자주 공을 넘겨줘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본선 3경기 모두 이길 수 있는 경기였다. 우리도 지쳤지만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막판 경험부족이 문제였다"며 아쉬워 했다. 비록 본선 전적은 초라했지만, 예선과 본선을 지켜 본 핸드볼 관계자 및 해외 언론들은 한국 팀의 빠르고 조직적인 플레이에 찬사를 보냈다. 기량과 체격 등, 넘지 못할 것처럼 보였던 유럽 팀들과의 경기에서 엇비슷한 경기력을 보인 점은 지난 1988서울올림픽 은메달 획득 이후 침체됐던 한국 남자핸드볼이 더 이상 세계의 변방이 아님을 증명했다. 또한 박중규 외에도 오윤석(25. 두산), 윤시열(25. 하나은행), 유동근(24. 인천도시개발공사), 심재복(22. 한체대) 등 가능성 있는 신예들을 발견한 것도 이번 대회의 수확이다. 그동안 여자 핸드볼대표팀의 빛에 가렸던 남자대표팀은 이번 대회를 계기로 팬들의 관심 속에 ´제 2의 우생순 신화´의 서막을 알렸다. 박중규는 "이번 대회에 출전한 어린 선수들이 조금 더 기량을 쌓는다면 오는 2012런던올림픽에서 메달 획득도 가능하다"며 "마케도니아와의 마지막 경기는 이길 것이다. 무조건 이긴다"고 각오를 다졌다. 오는 31일 귀국하자마자 소속 팀 두산으로 복귀해 다음 달 8일 열리는 2009 SK핸드볼큰잔치를 준비해야 하는 박중규는 "소속팀에 돌아가면 대표팀에서보다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게 열심히 하겠다"며 "이번 대회에 관심을 가져주신 팬들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 나은 모습을 보이겠다. 지켜봐 달라"고 다짐했다. 3주 간의 크로아티아 원정을 통해 미완의 대기에서 주축으로 거듭난 박중규가 과연 앞으로 어떤 모습을 펼칠지 지켜 볼 일이다. 【자그레브(크로아티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