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축구해외진출1호이진화“일어사전들고죽도록뛰었다”

입력 2009-03-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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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적지 않다. 한국 축구선수로는 처음으로 독일 분데스리가 무대를 밟은 차범근(56) 수원 감독은 “후배들의 길을 터놔야겠다는 생각에 단 한 순간도 훈련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무대 역시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1호 박지성(28)이 성공적으로 안착했기에 그 뒤 많은 한국 선수들이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비단, 남자축구 뿐만이 아니다. 2006년 초 일본 실업리그 고베 아이낙에 스카우트돼 여자 축구선수로는 해외진출 1호로 등록된 축구대표팀 수비수 이진화(23). 최근 안산에서 벌어진 ‘한중일 여자축구대회’ 참가 차 한국을 방문했다가 일본으로 떠나는 그녀를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났다. 일본 진출 초기 이진화가 가장 어려움을 겪은 부분은 역시 ‘언어’ 문제였다. 충주 예성여고 시절 이미애 코치가 선수들에게 외국어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해 따로 일본어를 배워뒀던 덕에 아예 백지 상태는 아니었지만 자유롭게 의사소통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잠깐씩 공부했던 게 처음에 큰 도움이 됐지만 많이 부족했다. 히라가나 가타가나만 아는 수준이었다”고 웃음을 지었다. 오히려 팀 동료들이 발 벗고 나섰다. 포지션이 수비수이기 때문에 경기 중 의사소통은 선택이 아닌 필수. “동료들이 오히려 한국말을 배워 저에게 ‘가, 와, 업(up), 다운(down)’ 등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서 말하는 진풍경이 벌어졌어요. 고맙기도 했지만 일본 선수들 영어 발음 정말 안 좋잖아요.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럴까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도 들었구요.” 이진화의 ‘독종’기가 발휘됐다. 통역을 쓰는 대신 직접 일본어를 배우기로 결심한 것. 대화 중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찾아볼 수 있도록 훈련 때마다 그녀의 손에는 항상 전자사전이 들려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피 나는 노력에 성과가 안 날 리 없는 법. 일본 동료들의 한국어 통역을 자처하는 수준이라니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대부분 여자 축구선수들이 그렇듯 이진화도 다른 운동을 하다가 전향한 케이스. 초등학교 시절 중장거리 육상선수로 도 대표로 전국대회까지 나갈 정도로 주목받았지만 ‘단순히 뛰기만 하는 게 힘들어’ 중학교에 올라가며 육상을 그만뒀다. 빠른 발을 가진 그녀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학교 체육선생님이 권유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게 됐다. 당시 그녀의 첫 마디는 “여자도 축구가 있어요?”였다. “선생님이 테스트를 받아보라고 하는데 계속 거절하다가 어쩔 수 없이 한 번 가봤죠. 선수들이 열심히 인스텝 킥을 연습 중이었는데 그 때는 인스텝이 뭔지도 몰랐어요. 어쨌든 있는 힘껏 공을 찼어요. 멀리 갔냐고요? 아뇨. 왜 선생님들이 저에게 축구를 시켰을까요. 아, 뛰는 거 하나는 자신 있어요.” 육상선수 출신답게 부지런한 플레이와 스피드가 그녀의 장점. 일본에서도 바로 주전을 꿰찼고 그녀가 입단하던 해 2부에서 1부로 승격했던 팀은 5위(2006년)-4위(2007년)-2위(2008년)로 꾸준한 상승세를 탔다. 그녀 역시 현재 연봉이 팀 내 톱레벨에 들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저, 아직 어리잖아요. 짧게 보는 게 크게 가는 길인 것 같아요.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소속팀에 필요한 선수가 되는 거구요. 우승이요? 당연히 욕심나죠. 언제 시간 되시면 일본으로 응원오세요.”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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