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피플]무등벌슈퍼루키안치홍“내일은슈퍼스타”

입력 2009-07-24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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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신인사상첫올스타전베스트10에오른KIA안치홍
2000년 경기도 구리. 초등학교 4학년 안치홍은 동네에서 친구들과 테니스공으로 야구하며 신나게 놀았다. 마침 시에서 리틀야구팀을 창단한다며 부원을 모집했다. 안치홍은 망설임 없이 손을 번쩍 들었다. 또래에 비해 눈에 띄게 잘 치고 잘 던지는 그는 금세 이목을 끌었고, 2003년 구리 인창중학교에 입학해 정식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이후 서울고까지 야구선수 안치홍은 전국 최고였다. 고교 2학년 때 대통령배 타격 3관왕을 차지했고, 3학년 때는 손바닥 부상이 있었지만 5할 타율을 휘둘렀다. 그리고 2009년. 메이저리그 출신 용병도 울고 갈 정도로 수준이 높아진 국내프로야구. 신인이 1군 엔트리에서 풀타임을 소화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지만 안치홍은 고졸 신인으로는 사상 최초, 신인으로는 3번째로 올스타전 베스트10에 선정됐다.

인기구단 KIA의 후광. 게다가 2루는 상대적으로 경쟁자가 적은 포지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올스타전이 코앞으로 다가온 22일 광주 LG전. 안치홍은 1-1로 팽팽히 맞선 9회말 2사 후 정찬헌을 상대로 우중간 3루타를 쳤고, 폭투를 틈타 홈까지 파고들어 경기를 끝냈다. 열아홉 신인이지만 관중이 많을수록, 상대 투수가 에이스일수록 더 힘이 나는 자신감. 안치홍은 자신이 왜 올스타 베스트10인지 관중들 앞에서 실력으로 입증하고 있었다.

○“KIA, 너는 내 운명”

안치홍은 지난해 캐나다 세계청소년선수권 우승 주역이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 때 구리에서 서울로 전학하며 1차 지명 자격을 잃어, 서울팀이 먼저 선택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인연은 올해 신인 드래프트 2차 지명 전체 1순위로 KIA에 닿았다.

안치홍은 “솔직히 서울에서 학교 다니고 해서 어렸을 때는 LG 팬이었다”며 수줍게 웃었다. ‘혹시 아직도?’라고 질문을 던지자 “설마요. 이제 KIA 선수이자 진짜 팬이죠”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순전히 야구 때문에 중학교 시절 전학을 택했다. “서울에 있는 팀이 연습경기가 훨씬 많았어요. 더 많이 야구를 하고 싶어서 전학을 결정했죠. 아버지가 서울고등학교를 나오셨어요. 아버지 모교에서 뛰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그리고 서울고에서 안치홍은 KIA를 동경하기 시작했다. “조범현 감독님이 인스트럭터로 계셨었어요. 그 때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부터 KIA 스카우트들이 야구도 가르쳐주고 몸 관리하는 방법도 조언해주고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조금씩 KIA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KIA는 망설임 없이 2차 1순위로 안치홍을 택했다. 그리고 신인으로는 유일하게 스프링캠프 전 일정을 소화시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시범경기 때 안치홍의 타격실력은 형편없었다. 그래도 조범현 감독은 끝까지 믿고 기다렸다. 전반기가 끝날 무렵 안치홍은 신인왕 1순위까지 꼽히며 그 믿음에 보답했다. 올스타가 인기라면 신인왕은 실력이다. 벌써 이승엽의 데뷔 첫해 홈런에 1개 모자란 12개, 고졸 신인으로는 김태균 이후 8년 만에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며 신인왕 후보 자격을 갖췄다.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에서 무려 9차례 우승하며 그동안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하지만 신인왕은 1985년 이순철 단 한명뿐이다. KIA 팬들은 안치홍을 보며 24년 만에 신인왕이 탄생할 수 있을지 기대하고 있다.

○눈물 ‘펑펑’ 추억의 광주…“이쯤되면 인연”

유니폼을 입지 않은 안치홍은 깔끔한 외모에 예의바른 반듯한 열아홉 청년이다. 유니폼을 입었을 때도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귀여운 막내다. 광주 홈경기 때면 어김없이 덕아웃에 대기하고 있다가 타격연습이 끝나면 쏜살같이 달려 나가 공을 모은다. 선배들에게 시원한 얼음물을 돌리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러나 막상 주심이 플레이볼을 외치면 눈빛부터 달라진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언제나 야구 앞에서는 한없이 진지했다.

이제 홈구장이 된 광주구장은 안치홍에게 특별한 추억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주장이 된 후 무등기대회에서 광주일고와 맞붙었어요. 2학년 때 광주일고에 한번 졌기 때문에 ‘이번엔 꼭 이기자!’고 힘을 냈죠. 정말 자신 있었는데 제가 실책을 연이어 저지르며 졌어요. 너무 억울해서 화장실에서 괜한 세면대를 때리며 펑펑 울었었어요. 그랬던 광주가 이제 홈구장이죠. 그리고 올스타전도 광주에서 열리잖아요(웃음).”

○선배들 아낌없는 조언에 “음매∼ 기살어”

KIA는 전신 해태시절부터 군대보다 더하다는 엄격한 선후배 관계로 유명하다. 그 KIA의 막내로, 광주에서 선배들과 객지생활을 하고 있지만, 안치홍의 얼굴엔 구김이 없다. 안치홍은 선배들이 너무 잘 챙겨준다며 웃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금과 많이 달랐데요. 올해부터 이종범, 김상훈 선배님이 분위기를 밝게 바꾸려고 많이 노력하셨다고 들었어요.” 20년 차이가 나는 이종범도 안치홍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고, 최희섭은 친동생처럼 잘 챙긴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프로. 든든한 선배들은 큰 힘이다.

“4월 4일 개막전, 잠실에서 두산과 경기였어요. 8회까지 벤치에 앉아있었는데 대주자로 나가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쿵쾅쿵쾅 가슴이 떨리고 1루를 밝고 있는 발이 막 떨릴 정도였어요. 영원히 잊지 못하는 순간이죠. 하지만 이제 경기장에서 떨리지 않아요. 사랑하는 야구 최소 15년, 20년 더 하고 싶어요. 그리고 포스트시즌도 꼭 뛰어야죠!” 스스로 운이 좋아 1군에서 경기에 뛰고 있다며 겸손해했지만 안치홍의 꿈은 컸고, 앞으로 어떻게 그 꿈을 그라운드에서 그릴지 기대된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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